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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 수고한 나에게 안식을

살림남의 방콕 일기 (#72)

by 김자신감


태국에 온 뒤 한국만큼 바쁘게 살아간다. 그 바쁨의 강도는 비슷하지만 만족감은 극과 극이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결과를 목적하지 않고 과정을 즐기고 있으니 비정상이었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잃어버린 감각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다. 침침하던 시력, 잃어버렸던 목소리, 불룩하던 뱃살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힘든 수고로 남에게 받는 인정보다 나에게 스스로 안식을 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된다. 수고한 나에게 줄 수 있는 안식은 무엇이 있을까.


글을 쓴다.

중년이 되니 감수성이 터진다. 10대 소녀의 복잡하고 섬세한 감성이 40대 아저씨가 되니 공감되기 시작한다. 그렇다 보니 머릿속에는 차고 넘치는 감정과 지식들을 담아 놓지 못할 만큼 넘쳐흐른다. 내향적인 나에게 말은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할 뿐.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복잡한 머릿속을 텅텅 비우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 만성 위염과 십이지장 궤양, 불면증, 심지어 턱관절까지 낫게 하는 효능을 보인다.


수고한 나에게 안식년을

40대 중반이 넘도록 휴직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휴직을 권고하고 싶다. 휴직이란 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라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고양이에게 쫓기던 생쥐처럼 급하다 보니 시야는 좁아지며 꿈은 점점 멀어진다. 휴직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20년의 사회경험이 있지만 꾸준히 휴직 준비를 했다. 아내와의 대화 주제에 휴직이 안빠질 정도로 함께 고민했다. 오랜 기간 준비하다 보면 방법이 보이고 현실이 되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기보다 채워나간다.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돈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태국에 와서 10개의 버킷리스트 중 푸껫에서 석양 보는 것과 책 출간하기 2개의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었다. 혼자만의 버킷리스트였다면 채울 수 없었을 테지만 아내와 리스트를 공유하고 응원하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채워 갈 수 있었다. 아내는 아내의 꿈을 나는 나의 목표를 추구하지만 방향이 같다 보니 의견 충돌 없이 쉽게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남의 목소리보다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인생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 누구만큼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나를 위해 산적이 있었던가. 직장에서는 동료들에게 가정에서는 아내와 이이들을 위해 헌신하지만 당연시 치부되었다. 자리를 잘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좋은 동료고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라고 믿으며 마냥 참고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사회와 가정에 묻혀 목소리를 잃고 지내온지 20년이 넘었다. 나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언제 있었던가? 많은 짐들을 내려놓으니 들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아본 적이 10대 사춘기 외에 없었다. 하긴 40대를 중반을 지나고 있으니 진짜 사(십)춘기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철없이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2번의 이직과 2번의 휴직을 하며 멋대로 살고 있으니 이유 없는 반항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40부터 질풍노도를 즐겨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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