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있는 시간보다 글과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일까. 집보다 카페가 좋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카페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글쓰기 필요한 3요소 올드팝, 은은한 촛불 색 조명, 커피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카페에서 글과 함께 있으라 한다면 며칠이고 있을 수 있다. 오전 7시 30분까지 작은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주고 학교와 집 사이에 있는 단골 카페가 문이 열려 있다면 아이가 학교 마치는 오후 4시까지 앉아 있다. 우연일까? 카페의 영업시간도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다.
카페 사장님은 30대 초반 태국인 남성이지만 하얀색 피부와 양쪽 귀에는 조그만 귀걸이를 하고 밝은 브라운으로 염색한 투블럭 댄디컷의 깔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작은 체구지만 얼굴과 체형의 발란스가 잘 맞아 옷까지 맞춰 입으면 한국의 MZ세대 스타일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아침 시간부터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아침 시간이 남는 엄마들의 만담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태국 엄마들도 모이니 회이팅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주변 이야기는 백색소음 일뿐 글쓰기에 지장 없다.
스타일리시한 사장님은 손님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이다. 40대 엄마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잘 끼어들며 한참을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이 태국어를 하지 못하는 것에 가장 큰 아쉬움을 느끼는 때이다. 저 대화에 낄 수만 있다면 수많은 재미있는 글감들을 얻어갈 수 있을 텐데. 매일 보는 엄마들의 수다는 어떤 내용일까. 매일 2시간씩 쉬지 않고 얘기를 하면서 무슨 주제로 저렇게 재미있게 하는 대화를 하는 걸까. 친구들과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고도 헤어질 때 집에서 전화로 다시 얘기하자는 아내의 상황과 비슷하다.
평일, 카페의 아침시간은 분주하다. 카페니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커피맛은 라테를 기준해서 40밧(1,500원) 짜리 편의점 커피와 한국의 이디야커피 사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가격은 핫 라테 기준으로 60밧(2,400원)으로 태국의 중저가 카페 브랜드인 아마존의 맛보다는 우위에 있다. 그 가격이면 충분히 수용 가능한 맛이다.
댄디한 태국의 MZ세대 사장님은 본인 스타일 외에도 카페 관리에도 진심이다. 11월 말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혼자서 며칠 동안 부지런이다. 20평 남짓의 홀에 2m가 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위해 2인용 테이블을 홀에서 빼버리는 손해도 감수한다. 그리고 테이블 다리와 전등의 등마다 반짝거리는 데코와 스노볼, 꽃장식 등 빈틈없이 장식해놓았다. 음악은 80~90년대 올드 캐럴을 틀어놓으니 하와이안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만 진실인 줄 알았지만 뜨거운 바람과 함께하는 끈적한 크리스마스도 나름 이색적이다.
그렇게 오전 10시. 엄마들의 귀가로 분주했던 카페가 갑자기 차분해진다. 이제 글쓰기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어느새 비어있는 핫 라테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분위기를 바꾼다. 부드러운 라테는 머리를 예열하기 위한 애피타이저였다면 메인은 아메리카노. 차갑고 직설적인 카페인은 머릿속에 바로 들어가 각성시킨다. 카페의 반복되는 올드한 캐럴의 순서를 외울 정도지만 맨 구석 조그만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