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한 동생이 연락이 왔습니다. "행님, 살만한교? 뭐 하고 지내는교?" 반갑게 통화를 마쳤지만 요즘 뭐하고 지내냐는 질문에는 답을 못해 주었습니다. 40대 회사원이 갑자기 휴직하고 태국에서 돌아올 기약도 없이 지내니 제 소식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아내가 일하고 제가 살림 살고 있지만 "살림 하고 지낸다."라 말하려니 모양이 안 삽니다. 살림을 살더라도 명목상 작가라는 명함 하나는 있어야겠습니다.
요즘 저의 일상은 카페 - 집 - 수영장의 루틴입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세수와 양치를 하고 아이들의 밥을 챙겨 줍니다. 아이들이 남긴 밥은 제 아침이 되고 없으면 딱히 챙겨 먹을 여유가 없어 생략합니다. 오전 7시부터 큰아이를 7시 30분에 작은아이를 순서대로 전기자전거로 데려주고 학교 옆 카페에 들어가 아이들이 마치는 오후 3~4시까지 원고를 씁니다. 아이들과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설거지, 청소 등 정리한 후 저녁 8시 수영을 하고 10시에 하루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글이 마무리될 때까지 당분간 이 루틴으로 지내야 하지만 이런 일상이 나름 즐겁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카페 이야기를 많이 적고 있는데 처음에는 한국보다 약간 싼 가격이라 부담 없이 사 먹었지만 태국 물가에 익숙해지다 보니 다른 물가에 비해 비싸다고 느껴집니다. 단골 카페의 아메리카노 가격이 55밧(약 2,200원) 핫 라테가 60밧(2,400원)입니다. 물론 방콕에서는 저렴한 커피 가격입니다.
태국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한잔이 115밧(약 4,600원) 정도이니 한국보다 결코 싸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곳 방콕 사람들은 스타벅스를 많이 애용합니다. 태국의 저렴한 물가가 스타벅스 기본 메뉴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가격을 자연스레 수용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케이크와 같이 사 먹는다면 300밧(12,000원)은 쉽게 지갑에서 사라지는데 말이죠. 물론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이거나 돈 많은 태국인입니다.
왜 이렇게 커피 가격만 비싼 것일까요? 그것은 커피는 대부분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음료이기 때문입니다. 태국 현지인이 즐겨 마시는 음료는 타이티 또는 밀크티입니다. 밀크티는 얼음과 유우에 연유 등 시럽을 넣은 달달한 음료입니다. 가격은 30밧(1,200원) 정도로 직장인들이 아침이나 점심때 봉지에 들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콕에서 커피는 다른 음료보다 비쌉니다.
최근 태국으로 한국분들의 여행 수요가 많이 늘었습니다. 한국보다 저렴한 물가를 찾아 쇼핑과 호캉스 등 귀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여유를 즐기러 오시는 것이죠. 최근 방콕의 물가가 많이 올라 한국과 별 차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만 가기 때문입니다. 저렴한 물가를 찾으신다면 태국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로컬 마켓으로 가신다면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방콕의 커피는 비싸지만 슬기롭게 잘 활용한다면 가격 이상의 가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장시간 업무를 봐야 한다던지, 안전하고 느긋한 휴식이 필요하다면 카페는 충분한 대안이 될 것입니다. 단지 커피만 테이크 아웃 한다면 비싼 카페보다 편의점이나 원두커피 자판기를 이용하면 40밧(1,600원)으로 괜찮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죠.
방콕에 있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커피는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잠시 들어온 카페에서 즐겼던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햄&치즈 토스트입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젖은 몸과 마음을 피난처로 위로한 카페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태국 방콕의 커피는 비싸지만 여전히 카페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