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하던 피난처 카페가 문을 닫았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으로 더우면 파라솔로 갈 곳 없는 저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그 카페가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직장 없이 방콕에서 살림 살며, 의미 없는 글을 쓰고 있는 가장에게 훌륭한 사무실이 되어주었기에 더욱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잘생긴 태국의 30대 사장님한테 그동안 고생했다는 인사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날 이상한 느낌은 있었습니다. 낯선 노부부가 오셔서 가게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식사도 하며 4시간을 넘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지인분이 오셨나 싶었지만,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문을 닫는다.'는 표지판만 붙어 있었습니다. 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나 안타까운 적이 없었습니다. 직원만 남겨놓고 야반도주하는 사장님처럼 그렇게 피난처 카페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훌륭한 작업실을 잃어버린 저에게는 당장 마땅한 곳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방콕 외곽 거주지라 향기로운 커피와 맛있는 음식, 주전부리들을 먹으며 편안히 일할 곳이 거의 없습니다. 버스를 타고 20분 넘게 걸리는 스타벅스를 매일 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영하 30도를 넘긴다는 한국과는 달리 방콕은 여전히 영상 30도를 넘어가 무덥고,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졸지에 사무실 잃은 실업자가 된 저에게 실업급여와 같은 힘이 되는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매일 가는 길에만 익숙해져 반대쪽 길은 찾아볼 생각을 못했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기존의 피난처 카페와 비슷한 거리에 새로운 피난처 카페를 찾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스터디 카페와 비슷한 이곳은 Co-Working Space란 업무용 공간을 별도로 운영하는 카페입니다. 1층은 카페로 2층은 Co-Working Space입니다.
비용은 4시간에 200밧(8,000원), 8시간에 350밧(14,000원)으로 식사와 커피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조금 비싼 느낌은 있지만 식사와 커피, 인터넷만 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대규모 주택단지에 위치해 유동인구가 적다 보니 2층 Co-Working Space는 널찍한 사장실 마냥 혼자 사용합니다. 평소 농담을 자주 하는 아내가 제 이야기를 듣고 거기도 조만간 문 닫는 거 아니냐며 쿨하게 웃어버렸지만 저에게 왜 이렇게 진지하게 들려오는지요.
아내의 말대로 폐업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동안 그 힘든 팬데믹 시기도 잘 견뎠으니 점점 회복되리라 생각하며, 그리고 제가 애용해 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단지 글을 쓰는 공간만 있으면 된다라고 생각하지만 소심한 저에게 아내의 폐업전문가란 말이 자꾸 눈앳가시처럼 머릿속에 콕콕 찌르며 돌아다닙니다. 예상치 못하게 새로운 작업실로 옮기게 되었고 이곳에서 부디 좋은 영감이 떠오르길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