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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 미니멀 생활과 카페

살림남의 방콕 일기(#86)

by 김자신감


태국 방콕에 오면서 다짐했던 것 중 하나가 "최대한 최소 하게 살아보자."였습니다. 의도했다기보다 살 곳이 정해지지 않아 유목민처럼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히 살림살이가 줄어든 것입니다. 방 2개인 2층짜리 연립주택에 4인 가족이 살다 보니 잠은 큰아이와 같은 침대에 살을 맞대고 자야 하고, 좁은 1층 거실에 2m짜리 접이식 식탁 겸 책상에서 식사도 하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자기 방을 갖고 싶다는 사춘기 큰아이의 투정에 "옛날에는 3대가 한방에서 같이 잤다."라는 라테드립으로 대화를 원천 차단해 버립니다.


문제는 온 가족이 모이는 주말이면 작은 집안이 출퇴근 시간 막히는 도로처럼 북적북적거립니다. 조그만 식탁 겸 책상에는 아빠 엄마의 노트북들과 아이들의 태블릿, 너부러져있는 과자봉지와 식어버린 커피 등으로 앉을 공간까지 복잡해집니다. 어쩔 수 없이 주말이면 가족생활공간 밀도를 줄이기 위해 저부터 카페로 빠져나와야 합니다. 한 번씩 아이 친구들이 놀러 오는 날에는 좁은 집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져 주는 센스도 필요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곳이 바로 카페입니다. 아무도 없는 평일 낮 집을 나와 카페에 가는 것은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집이 복잡해질 때는 카페를 가야 하는 합리적인 명분이 생깁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떠나 집 근처 카페로 발길을 옮깁니다. 방콕 도심에는 많은 카페가 있지만 외곽지역의 카페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도심의 카페는 레스토랑처럼 잘 차려진 곳이라면 외곽의 카페는 사람 사는 로컬음식점처럼 친근한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방콕 도심으로 밀려드는 관광객에 비해 외곽의 로컬 카페는 현지 지역주민들만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며 간간히 지나다닐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가게들은 대부분 오후 4시만 되면 문을 닫습니다. 문제는 유동인구가 작다 보니 로컬 상점들만 점점 폐업하는 곳이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이지만 문을 닫거나 줄여나가는 곳이 생기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만, 썰물은 멀리 있는 곳부터 빠지고, 밀물은 가까운 곳부터 차오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 같습니다.


하지만 방콕 외곽 로컬은 미니멀 생활을 추구하는 살림남에게는 최고의 조건입니다. 방콕도심에는 라테 한잔이 100밧(4,000원)이 넘지만 외곽에는 60밧(2,400원)이면 먹을 수 있습니다. 또 갈 곳이 부족한 유목민들에게 장시간 머물러도 눈치 안 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동네 카페가 더 매력적입니다. 방콕의 카페는 도심이나 외곽과 상관없이 바리스타 사장님의 커피 자부심은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르바이트로 운영하는 도심 카페보다 바리스타 사장님이 운영하는 로컬카페가 더 향기롭습니다.


활기찬 미니멀 생활을 꿈꾸시는 분들은 방콕 도심이, 조용한 미니멀 생활을 꿈꾸시는 분들은 방콕 외곽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과 후 아이들의 오후 간식과 매일 무명작가의 점심식사와 커피를 책임져 주는 동네 카페는 어느새 방콕의 삶에 빠져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니멀 생활의 성공에는 합리적이고 저렴한 소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비록 사는 곳은 미니미니한 좁은 집이지만 마음이라도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로컬 카페가 있는 곳, 디지털 유목민이라면 정착할만한 푸른 초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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