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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 카페에서 먹는 해물국수

살림남의 방콕 일기(#88)

by 김자신감


매일 같은 음식, 장소, 노래, 생각 등... 익숙해져 편리하지만 함께 그림자 처럼 따라오는 게으름을 피할 순 없다. 반복되는 일상이 싫어 이곳으로 도망치듯 떠나왔지만 반복되는 루틴과 생활로 새로운 생각과 도전은 저 멀리 떠나버렸다. 귀찮음, 익숙함, 편리함 등은 방콕에서 미니멀 생활의 최대 위험요소. 작은 것부터 변화가 필요했다. 변화하기 가장 쉬운 것부터 정리하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는 피난처 카페는 바꿀 수는 없지만 아직 먹어보지 못한 다양한 메뉴가 있었고 이것들부터 시도해 보기로 한다.


오늘은 태국식 일본전골. 일본전골은 겨울에 즐겨 먹는 일본식 수프음식, 방콕 외곽 조그만 로컬 동네 카페에서 스키야키란 이름이 왠지 낯설다. 한국인이 일본음식인 스키야키를 태국, 그것도 카페에서 먹어볼 수 있는 것은 정말 기묘한 일이다. 의도했던 소소한 도전에 완벽한 음식 메뉴이다. 하지만 일본전골에는 소고기가 들어가야 제맛이지만 태국의 소고기는 질기고 맛이 없는 관계로 해산물로 정했다. 과연 어떻게 일본식 전골 요리를 단품 메뉴로 만들어 나올지 주방에선 달그락 거리는 웍질 소리가 더 궁금하게 만든다.


음료는 매일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보다 캐러멜 마키아토를 선택했다. 캐러멜 마키아토는 바닐라향 시럽과 우유, 에스프레소, 우유거품 위에 캐러멜 시럽을 뿌려 나오는 달달한 음료. 단음료를 즐기지 않지만 복잡한 머리와 더운 날씨로 처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당분이 필요했다.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시면서 시럽을 빼달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오늘은 달달함으로 혀를 마비시키고 말리라 다짐한다.

주문했던 태국식 해산물 스키야끼(수끼 남 탈레)가 모양을 드러냈다. 자작한 국물에 계란을 풀고 큰 새우(prawn) 2마리, 오징어와 배추, 모닝글로리 등 채소들이 제법 전골요리처럼 그럴싸하다. 함께 나오는 붉은색 소스는 묽은 쌈장 맛처럼 맵고 달고 고소함이 느껴져 새우와 오징어를 찍어 먹어도, 수프에 섞어 먹어도 맛을 해치지 않았다. 새우는 탱글하고 오징어는 쫄깃하고, 야채는 아삭하고 당면은 끈적해 맛도 맛이지만 입안의 식감이 재미있다. 국물은 해산물 베이스로 담백 깔끔하다.


수키의 양은 부족하지만 밥을 시키면 된다. 음식이 식기 전에 재스민 밥을 추가하여 계란과 당면으로 걸쭉해진 수프에 절반을 풍덩 국밥에 밥 말듯 휘휘 섞는다. 알랑미는 찰기가 없어 밥알 사이사이 소스가 잘 스며들어 볶음밥이나 라면에 말아먹기 최고다. 밥으로 싱거워졌을 수프에 함께 나온 매콤달콜한 소스를 넣고 수저 크게 한입 먹으니 전골의 진국에 밥을 넣고 먹는 해물 죽의 느낌이다. 밥을 다 말고 싶었지만 수프의 양이 부족해 남겨야 했다. 부족한 듯 먹는 음식은 항상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피난처 카페의 음식들은 한국음식의 맛이 느껴진다. 캐러멜 야끼야또는 우려와는 달리 캐러멜 시럽 외에 당류를 넣지 않아 부드러운 바닐라와 달콤한 캐러멜이 에스프레소와 섞여 후식으로 마시는 음료로 손색이 없다. 타이 수끼 남 탈레(85밧), 재스민 밥(15밧), 캐러멜 야끼야 또(65밧) 약 6,600원으로 훌륭한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슬럼프와 우울함이 찾아올 때, 오늘의 피난처 카페의 수끼 한 그릇은 복잡한 머리와 탈진된 기력을 회복해 주기 손색이 없다. 가까이 있는 훌륭한 피난처를 두고 멀리 있는 찬란한 피난처를 찾으려고만 했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리얼한 태국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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