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목적지를 잃고 방향을 잃어버릴 때, 위로가 소용없이 혼자 있고 싶을 때, 슬럼프이다. 꿈을 가지고 왔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고 원하는 피드백이 오지 않으니 자존감은 낮아지고 우울감은 커져간다. 나 스스로의 문제이니 나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 휴일이지만 갑갑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땀을 흘리며 걷다 쉬다 걷다 쉬다를 반복한다.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학교를 결석해 버린 학생처럼 소심한 반항에 죄책감이 들지만 무언가에 이유 없이 대들고 싶어 지는 요즘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카페이다. 자주 가는 집 근처 카페를 떠나 버스를 타고 길을 한참 걸어 마주하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맛본다. 이때 마시는 커피는 지치고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
사람 많은 도심이 아닌 차만 많이 지나다니는 대도로, 이런 자리에도 제법 큰 카페가 있다. 카페라기보다 공장 같은 인더스트리얼 분위기에 내부가 넓다. 30평 정도의 홀에 20평의 넓은 주방이 있다. 베이커리형 카페로 빵과 커피가 주력인 카페이다. 2층은 코워킹스페이스로 10평 가량의 회의실이 위치해 아마도 제빵기술을 교육하는 학원을 겸하는 듯 하다. 저스틴비버의 노래가 이 카페의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일요일 오후라 지나다니는 사람보다 차가 많아 노래가 진한 엔진 소음에 묻혀 리듬만 들릴 뿐이다.
음료는 커피와 비커피 음료로 구분되고 메뉴의 맨 앞에 나와 있는 시그니처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선택했다. 앞서 브라우니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터라 브런치 생각은 없었지만 메뉴에서 파니니를 보니 바삭한 번에 고소한 치즈가 그리워 함께 주문해 본다. 8개의 2인 테이블이 벽에 일렬로 위치하고 편안한 1~2인용 소파도 가운데 탁자와 배치되어 있다. 테이블에는 혼자서 온 손님들이 앉아 지루한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먼저 나온다. 맛을 보니 다크 한 맛에 새콤한 과일향이 올라온다. 태국의 아라비카는 새콤한 과일향과 끝에 매운 향이 약하게 올라오는 특징이 있다. 아마도 태국 북부 치앙마이나 치앙라이 미디엄 원두를 추출한 시그니처 아메리카노처럼 느껴진다. 너무 가볍지고 않고 적당히 바디감도 느껴지니 커피 같은 느낌도 나니 60밧(2,400원) 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품질치고 만족스럽다.
곧이어 투나치츠 파니니가 나온다. 예상했던 쫀득하고 얇은 도우의 번이 아닌 식빵을 이용해 파니니처럼 구운 샌드위치다. 작은 파니니를 예상했지만 대형 식빵에 참치와 치즈가 두툼하다. 참지를 양파와 마요네즈에 함께 샐러드처럼 만들었지만 그 위에 치즈를 올리니 느끼함과 퍽퍽함이 함께 밀려온다.
뜬금없이 직접 만든 머핀도 함께 내어온다. 주문이 잘못되었나 물어보니 150밧(6,000원) 이상 주문 시 머핀을 서비스로 제공한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샌드위치 보다 갖 구워낸 머핀이 더 맛있어 보이지만 이미 브라우니를 1차로 먹었던 터라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작은아이를 위해 따로 챙겨놓는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아이로 부터의 연락. 왜 집에 없냐고 다짜고짜 따지듯 묻는다. 말도 없이 나왔던 터라 커피 한잔 먹고 싶어 나왔다고 급히 답장을 보낸다. 그래도 별 볼일 없는 아빠에게 안부를 물어주니 고맙다. 아이들이 자라며 나의 영역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많은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온 태국이지만 적응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단기간에 이룰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지 고민된다.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심란하게 엉켜있지만 카페에서 글로써 복잡함을 풀어본다. 태국에서 카페는 갈 곳 없는 이를 당위적으로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다행히 방콕에는 방문할 카페가 수없이 많다. 아직 내가 버틸 수 있게 힘이 되어주는 카페가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