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하루 시간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 있다면 저녁 6시의 풍경이다. 뜨거웠던 태양의 열기가 턱까지 차올라 숨이 막히려던 찰나 나뭇가지에 빛이 걸려 그늘 사이로 썰물 빠지듯 사려져 간다. 한 낮 무더위에 사막처럼 조용했던 골목에 개미의 부지런한 발걸음, 친구들을 찾는 새들의 지저귐, 집안에 갇혀 방광이 터질 듯 오줌을 참았던 강아지들의 가벼운 발걸음 다양한 생명들이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글거렸던 해도 이제는 지쳤는지 서쪽 담장을 경계로 저 많이 빛을 잃어 가며 하늘의 양털 구름을 핑크 빛으로 물들어 갈 때 하루종일 수고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거워진 몸을 오토바이에 싣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한다. 부지런한 딜리버리 맨은 허기진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배달하지만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의 저녁끼니를 위해 또 다른 배고픈 고객들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해가 질 무렵, 후덥 한 공기가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밥 짓는 소리가 빈틈을 채우며 저녁의 공기로 환기된다. 문득 40여 년 전 즐겨 놀던 골목길과 데자뷔 되며 어디선가 밥 먹으러 오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맴돌아 다닌다. 하늘은 빛을 잃어 보랗게 물들어 가지만 낮에 놀지 못한 아이들의 아쉬움에 골목을 이리저리 방황한다.
무섭게 짖어대던 옆집 비글이 산책을 나왔지만 주인의 자전거 뒤에 숨어 있다. 작고 예쁜 아가씨가 무서워 큰 몸을 숨기는 모양새가 웃기다. 우렁찬 목소리와는 달리 수줍어하는 모습이 순수한 시골 총각과도 같다. 골목을 돌아 모퉁이 잔디에는 메시처럼 공을 모는 날렵한 비만 강아지가 숨을 헐떡거리며 결승골을 향해 공을 머리로 드리블해 나간다. 이렇듯 오후 6시는 모든 생명체가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다.
가벼워진 발걸음은 편안한 집으로 향하고 내일 아침 떠오를 태양이 두렵지만 오늘의 아름다운 석양만 생각하며 미소를 지어본다. 태국의 아름다운 미소는 정글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은 감사함의 인사이다. 이제 저 멀리 편의점 간판의 불이 들어오고 주변은 어두워졌다. 차분한 저녁의 고요함은 한낮의 더위속 고요함과 다르다. 저 멀리 들개들의 하울링 소리가 고독하게 퍼져 나갈 때 비로소 태국의 저녁은 시작된다. 힘겨웠던 하루를 보낸 만큼 저녁의 시간은 아름답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