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 지내다 보니 식사보다 즐겨 찾는 것이 음료이다. 날씨가 더워 활동량이 적고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제대로 된 3찬 이하의 식사는 저녁 한 끼 정도지만 시원한 음료는 3잔 이상 찾게 된다. 음료는 주로 편의점 카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비싼 아라비카 원두 보다 카페인의 함유량이 높고 저렴한 로부스타 원두를 블랜드 하기 때문에 커피는 2잔 이하로 마시고, 나머지 한잔은 비커피 종류인 타이 밀크티로 선택한다.
외출을 하는 날이면 집 앞 편의점 카페는 필수 코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22oz 큰 사이즈 컵을 봉지에 담아 손목에 걸고 우산을 펼쳐 들면 외출 준비는 완료된다. 태국의 더운 한낮의 골목을 걸어가면서 마시는 커피는 섬세한 풍미의 아라비카 커피보다, 쓴맛이 강하고 스모키 한 로부스타 커피가 잘 어울린다. 진한 풍미에 얼음을 천천히 녹여가며 마시기 적합하고 강한 카페인이 무더위에 쉽게 지친 체력을 빨리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외출을 마치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디저트 카페에 들러 풍성한 맛의 아라비카 커피와 달콤한 도넛이나 케이크를 곁들여 부족한 당을 보충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하지만 카페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귀갓길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오후 4시부터 무시무시한 퇴근길 교통정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특히 8밧짜리 에어컨이 없는 시내버스에 앉을자리가 없다든지, 오후의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는 좌석에 앉을 경우를 대비해 시원한 타이밀크티 한잔을 준비해야 한다. 10km도 안 되는 거리지만 길이 막히면 1시간 넘게 꼼짝없이 갇혀버리는 상황을 겪고 나니 외출 시 아이스 음료는 필수 준비물이 되어버렸다.
태국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는 '달달하다.'는 것과 '시원하다.'는 특징이 있다. 달달함은 우리가 상상하는 정도를 벗어나 입이 마비될 정도의 당도이며 시원함은 컵에 얼음을 가득 채울 만큼의 많은 양이다. 설탕은 지친 체력을 회복시키기 가장 저렴하며 빠른 효과를 주기 때문에 비싼 원두커피의 카페인 보다 벌크로 만든 달달하고 저렴한 캔커피나 타이티를 선택한다. 거대한 컵에 한가득 넣어 주는 아이스는 뜨거운 야외에서도 1시간은 거뜬히 시원함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그들의 오토바이나 자전거 핸들에는 음료를 담은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다. 그저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고, 뜨거운 것을 싫어하는 거라 추측했을 뿐 그들과 함께 생각하고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태국에는 맛있는 로컬 음식이 많아 여행 오면 맛집을 즐겨 찾지만 태국의 음료는 음식만큼 주목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곳의 로컬 식사는 1찬 1식의 40~50밧(약 1,800원) 치킨라이스 또는 향신료에 조린 돼지고기나 생선 조림에 비벼 먹는 덮밥이며, 음료는 달달한 15밧(약 600원) 짜리 타이티 한잔이 고작이다. 무더운 오후의 햇살이 자비 없이 내려 째는 거리. 그들의 밥벌이인 오토바이를 나무 그늘 밑에 세워두고 그늘이 길어질 때까지 시원한 음료 한잔과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밥처럼 귀한 태국의 냉차 속에는 태국인들이 살아가는 애환이 잘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