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먼저 떠나버리는 것일까. 집 근처에 있던 노점 과일가게가 문을 닫았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길가에 쳐놓았던 그늘 천막과 휴식을 위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어놓았던 해먹, 2~3평 크기의 창고 겸 그늘집이 사라져 버렸다. 외출할 때마다 들려 신기한 제철 열대과일들을 구경하고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입크기로 잘라놓은 파인애플을 더 이상 구입할 수 없게 되었다.
몇 달 전부터였을까. 과일가게 길 앞 공터에 포크레인과 덤프트럭들이 들어와 수풀이 우거진 땅을 헤치고 땅을 고르고 있었다. 설마 이런 외진 골목까지 건설 중장비가 들어와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이내 레미콘 차량이 들어와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철제 기둥을 올려 뚝딱뚝딱 무슨 건물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길 건너편 불구경하듯 과일가게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
하루종일 시끄러운 중장비 소음과 먼지들을 뒤집어쓰면서도 오히려 손님들이 더 많아질 거라며 행복해하던 노점 주인. 그 순박한 미소를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달콤한 파인애플을 사기 위해 과일가게에 들렀지만 천막이 굳게 내려져 있다. 과일이 없는지 휴가 기간인지 인기척은 있었지만 무거운 침묵 때문에 에둘러 물어보지 않고 돌아서기를 며칠째. 어느새 과일가게의 모든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집 근처 다양한 종류의 마트 과일이 있었지만 신선도와 품질이 떨어지는터라, 가격은 마트보다 비싸지만 달콤하고 튼실한 과일만 가져다 놓는 과일가게가 좋았다. 이래저래 과일을 상태를 살펴보지 않고도 봉지에 담겨있는 것들만 들고 올 만큼 신뢰가 쌓였고 덤까지 주는 인정까지 느낄 수 있는 노점은 과일을 좋아하는 나에게 소소한 태국 생활의 행복이었다.
4월이 되니 한낮의 온도가 37~38도씨까지 올라간다. 몬순의 영향인지 습도까지 높아져 주변의 과실수에서 열린 열매의 향기가 낮게 깔려 널리 퍼져나간다. 문 닫은 과일가게의 향기일까 싶어 들러보니 그 기억마저 포크레인의 거대한 삽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두리안의 꼬릿한 향기와 망고의 향긋한 향기가 뒤섞여 몽환적인 계절,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과일 노점이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