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 먹을수록 돈 버는 과일

살림남의 방콕 일기 (#98)

by 김자신감


"이렇게 무더웠던 4월이 있었을까요?" 방콕에서 20년 넘게 생활하시는 지인의 말에 무릎을 탁 내려쳤다. 그래 유난히 힘들었던 4월의 방콕 생활이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태국의 4월은 연중 평균기온이 가장 더운 때임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나 할 정도로 무자비하다.


올해 1월부터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우기철 하늘이 뚫렸을 정도로 쏟아붓던 스콜성 폭우가 지금은 왜 그리 기다려지는지 부족한 인내심을 시험 들게 한다. 오후 12시 이후부터 걸어서 외출하는 사람은 '정신없는 사람'이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밖에 없다는 농담이 진담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오전에 잠시라도 게으름을 부리는 날이면 하루의 계획을 허탕 칠 수 있으므로 밖에서 처리할 일이 있다면 새벽부터 부지런히 준비해야 하고 오후에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건물사이로 그늘이 지는 오후 4시 이후 비로소 마트에 장과, 저녁거리를 사러 외출한다. 집 앞 조그만 슈퍼에도 무더워서 인지, 물건이 없어서인지 야채와 과일 등이 동이 나 걸어서 30~40분 떨어져 있는 대형마트에 배낭을 메고 장을 보러 가야 한다. 더위에 입맛이 떨어졌는지 새콤달콤한 과일만 찾게 되는 요즘 다행히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 4월의 대표적인 과일은 두리안과 망고. 특히 망고를 좋아하는 이에게 잔인한 4월의 달콤한 선물이다. 가격이 비쌀 때는 1kg당 150밧(6천 원)이었던 망고가 이제는 반값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에 4월부터 부지런히 망고를 먹어야 할 시기이다. 새콤함을 좋아해 샐러드로 사용하는 풋내 나는 그린 망고를 우적우적 씹어먹는 나에게 유독 눈에 띄는 대형 레드망고!


대형 레드망고는 태국의 중동부 지역에서 재배되며 빨간색과 녹색 껍질에 과육이 단단하다. 흔히 알고 있는 애플 망고로 껍질의 녹색 부분은 새콤하며 노란 속살은 달콤해 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망고의 종류이다. 일반적인 노란색 망고(남똑마이)는 껍질 부분에 섬유질 많아 질기고 씨는 넓고 두꺼워 과육보다 버려지는 부분이 많지만 레드 망고는 껍질에 섬유질이 작아 부드럽고 씨는 작고 부드러워 먹을 수 있는 과육이 많다.


맛은 노란 망고가 달콤함이 강했다면 레드 망고는 겉은 새콤하고 안은 달콤해 부위별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신맛과 단맛이 조화로운 아라비카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다. 또 노란 망고가 잘 익은 홍시의 식감이라면 레드망고는 겉은 단단하고 아삭하지만 안은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그래서 레드망고는 뛰어난 품질로 다른 망고 품종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한창 수확되는 4월~5월 kg당 75밧(3천 원)으로 태국에 있다면 무조건 맛봐야 하는 고급 망고이다.


다양한 과일을 종류별로 조금씩 바구니에 가득 채워 넣어도 200밧(약 8천 원)이 넘지 않는다.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상큼하고 신선한 제철 열대과일을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태국의 4월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약하게 만들지만 새콤달콤하고 저렴하기까지 한 시원한 망고 한입이 쌓였던 피로를 말끔히 각성시켜 준다. 당분간 식사는 제철 과일로 먹을 생각이다. 레드망고 하나만 사 먹어도 이익을 보는 기분, 이런 게 부자가 된 느낌이 아닐까. 어두워진 골목길 스쳐 지나가는 벤츠가 부럽지 않은 하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태국 방콕, 문 닫은 과일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