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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습장

태국 방콕, 똠얌 소스의 비밀

살림남의 방콕 일기 (#100)

by 김자신감


세계 5대 수프에 매년 랭크되는 태국 음식은 똠얌이다. '똠'은 끓이다, '얌'은 (맵고 신맛) 섞다의 뜻으로 맵고 신맛이 나는 재료를 이것저것 섞어 끓인 수프로 한국의 된장찌개 같이 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대표 음식이다. 똠얌은 무더운 날씨에 자주 찾게 되는 매콤 새콤 달콤한 비빔국수처럼 더위에 잃어버린 입맛을 자극시키기 충분하지만 뜨거운 수프로 먹기에는 쉽지 않았다.


태국에 와서 가장 먹기 힘들었던 음식은 똠얌이었다. 알 수 없는 향신료 향이 코를 찌르고 맵고 신맛을 따뜻한 국물로 먹으니 적응될 리 없었다. 그래도 태국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링 푸드인 똠얌을 한번 맛보고 덮어 자니 아쉬운 마음에 마트에서 파는 똠얌맛 라면, 똠얌맛 과자, 똠얌맛 빵, 똠얌맛 샐러드까지 도전해 보았지만 특유의 큼큼한 향에 지워지지 않는 두리안처럼 친해지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똠얌과의 거리가 멀어진 채 몇 달이 흘렀을까. 냉장고를 정리하던 중 구석 서랍에 들어 있는 똠얌 소스를 발견했다. 예전 마트 푸드코트에서 점심으로 새우볶음밥(카오팟꿍)을 먹기 위해 식권카드를 구입할 때 행사 선물로 받아왔던 똠얌소스였다. 선물로 받았지만 난처했던 기억과 함께 뚜껑도 열어보지 않은 채 쓸쓸히 냉장고 안에 방치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통기한이 2달 정도 남은 채 눈에 띈 것이다.


아무리 행사용 선물이긴 하지만 맛도 안 보고 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뚜껑을 열고 조금 찍어 맛을 보니 어디선가 익숙해진 냄새와 맛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이렇게 위대한 것일까. 방콕의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똠얌의 향기가 머리와 몸에 배어 거부감이 사라진 모양이다. 왠지 똠얌과 친해질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손은 머리보다 빠르게 냄비에 물을 끓여 소면을 삶고 있었다.


입맛이 없을 때마다 삶아 먹던 한국식 비빔국수에 고추장 대신 똠얌소스를 넣어 보았다. 이왕 똠얌과 궁합이 잘 맞는 냉동새우(꿍)도 면과 함께 삶아 토핑으로 준비하고, 간장, 피시소스, 식초, 설탕에 똠얌소스를 고추장 대신 넣어 섞어(얌) 본다. 똠얌소스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고추는 새눈고추(프릭키누), 한국의 청양고추와 비슷한 매운 단계로 맵다 못해 쓴맛이 강하지만 매운맛이 오래가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한 가지 빠진 고소한 맛에 진한 향의 참기름보다 태국 남부 특산품인 캐슈너트 몇 조각을 빻아 넣으니, 한국의 비빔국수와 태국의 똠얌소스가 퓨전 되어 새로운 똠얌꿍 비빔국수로 완성되었다. 한국적인 매콤 새콤 달콤함과 태국의 레몬그라스, 양강근, 카피르 라임 잎, 고수, 샬롯, 라임 주스 등 복합적인 향신료의 맛이 추가되니 가벼웠던 맛이 한층 풍부해졌다.


아이들도 똠얌비빔국수를 자주 만들어 먹는 모습이 신기한지 맛을 연신 물어본다. 나에게 익숙했던 맛이 최고의 음식이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 맛없는 음식이라는 편견이 깨어졌다. 어느새 공짜 똠얌소스는 바닥을 보였고, 똠얌에 길들여진 모습을 발견했다. 익숙함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것이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확실한 생존 전략이라는 것을 행사 선물로 받은 공짜 똠얌 소스가 알려주는 값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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