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커피 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규모와 품질이 높아지고 있다. 도심뿐만 아니라 외곽에도 스페셜티 카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자체적으로 브랜딩 한 하우스 커피도 쉽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고품질의 커피 시장에서 촌스러운 맛으로 소외되어 가는 태국의 전통 커피를 발견하였다.
블랙커피보다 더 검은 색깔로 커피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커피의 은은한 향과 섬세한 맛이 전혀 나지 않아 커피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마시면 마실수록 어릴 적 냉장고에 들어가 있던 시원한 옥수수 보리차가 생각난다. 달큼한 옥수수향과 구수한 보리향이 주던 청량감에 마음 깊숙이 망각의 지평선에 걸쳐 있던 향수를 불러온다.
오리앙(O-Liang) 커피는 곡물을 로스팅해 로부스타 원두와 블랜딩 하여 만든 태국의 고전적인 커피이다. 옥수수, 보리, 콩 등 혼합하여 고소함을 넘어서는 스모키 한 맛이 특징인 태국 전통 커피는 끝에 로부스타의 쓰고 떫은맛이 숨을 쉴 때마다 향이 코로 전해져 '그래도 나는 커피다.'라고 희미하게 존재감을 알린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도 없는 태국식 커피 오리앙. 갈증을 해소할 음료가 귀한 시절 저렴한 곡물을 모아 구워 인스턴트커피와 섞어 우려내었다. 풍미가 좋은 아라비카 커피보다 저렴한 로부스타 커피 중에도 떫고 흙맛이 나는 저품질 커피의 향을 감추기 위해 곡물의 고소함을 넣었지만 씁쓸한 피니쉬를 감출 수 없다.
지금 마시는 오리앙(O-Liang) 커피는 아마도 품질 좋은 로부스타와 곡물을 갈아 추출해 과거보다 부드러운 향을 가진 커피일 것이다. 하지만 더 부드럽고 풍미가 뛰어난 타이밀크티에 밀려 오리앙 커피는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길거리나 카페 등 어디든지 만나볼 수 있는 밀크티와는 달리 오리앙 커피는 길거리에도 파는 곳을 찾기 어렵다.
고유의 향을 느끼기 위해 시럽을 넣지 않았지만 오리지널 오리앙 커피는 0~130%까지 시럽의 단계 중 100% 이상의 당도로 만들어진다. 아마도 설탕의 단맛이 있다면 떫고 쓴 끝맛을 잡아 주었을 것이다. 오리앙 커피는 영국의 티룸에서 천천히 즐기며 마시는 귀족스런 커피가 아닌 이탈리아 카페바에서 서서 한입에 털어 넣듯 삼키는 노동자의 에스프레소 같다.
오리앙(O-Liang) 커피 속에는 시끄러운 8밧짜리 버스와, 덜컹이는 3등석 기차, 흔들리는 롱테일 보트의 서민 감성이 잘 녹아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보다 습한 선풍기 바람이 어울리며,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우아한 스팀소리가 아닌 유리잔에 커피를 섞을 때 딸랑거리는 숟가락소리가 더 정겹다.
귀한 오리앙 커피를 한잔 사서 8밧 버스에서 맛보기로 한다. 예상대로 버스의 거친 소음과 매연이 오리앙의 거친 맛과 향이 묘하게 어울린다. 8밧 버스에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태국의 고전 커피 오리앙 한잔은 태국의 애환이 담긴 리얼 커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