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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Aug 08. 2023

태국 치앙라이, 택시기사와 카오소이

살림남의 방콕 일기 (#163)


말하기를 좋아하는 노인 택기사와, 조용함을 좋아하는 중년 남성 승객이 치앙라이 국경도시 치앙샌을 향해 어색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만 다정한 택시는 지나가는 곳곳 "유명한 관광장소인데 들어가 볼 테냐."라는 듯 끊임없이 호객을 한다. 택시를 탄 건지 여행 가이드 차량을 탄 건지 혼란스럽지만 "마이~마이~(노~노)"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 바쁘다.


기분이 나쁠 것 같았지만 아름다운 치앙라이를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호객'이 아닌 '호의'를 베푸는 것이리라. 늦은 점심시간 그 마음을 위로하듯 "런치"를 제안했고 노인기사은 "카오소이"로 화답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메콩강변을 따라 치앙샌 시내로 향했다.


치앙샌은 입지적으로 미얀마와 라오스 국경이 있어 여행자보다 국경을 오가는 현지인들의 비중이 높다. 강 건너편은 라오스로 태국 출입국사무소를 통해 배편으로 국경을 건너갈 수 있다. 국경도시는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로 어수선하지만 치앙샌은 육로로 통과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다.


치앙샌의 시내는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약 10km 떨어져 치앙라이를 건국한 멩라이 왕의 고대왕국 있는 곳이다. 천년의 고도 경주처럼 작은 시내 곳곳에 오래된 유적지가 눈에 들어온다. 뜨거운 오후보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 땅거미가 질 무렵 가장 아름다운 일몰과 야경을 선사한다. 시내지만 한적한 도로가에 치앙샌의 카오소이 국숫집이 위치한다.


태국 북부의 대표음식 중 하나인 카오소이. 카오소이는 태국식 카레음식으로 밥대신 에그누들(밀가루 면)을 사용한 면요리이다. 수프는 빨간 새눈고추를 빻아 강황과 카레를 섞어 페이스트로 만들 코코넛 밀크, 피시소스, 소이소스 등을 넣어 만든다. 토핑으로 튀긴 에그누들, 라임, 샬롯(미니양파), 머스터드 김치와 함께 먹는다.


카오소이는 식당마다 수프의 농도와 맵기가 다르고 고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주문 전 고수와 맵기 정도를 별도로 요청할 수 있다. 카오소이에 들어가는 고기는  닭고기와 소고기 두 종류. 닭고기는 부드럽고 담백해 카오소이 소스와 가장 잘 어울리며 푹 삶긴 닭다리를 통으로 또는 살코기를 발라 넣어주기도 한다. 소고기는 질긴 식감 탓에 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장조림처럼 푹 고아 부드러워진 살코기를 카오소이 안에 넣어준다.


치킨과 비프 카오소이를 하나씩 주문하고 기사님은 쉴 틈 없이 "카오소이 굿"하며 수다를 이어간다. 행히 바로 나온 카오소이 생각보다 큰 그릇에 놀라고 생각보다 많은 양에 놀랐다. 노란 에그누들은 일본 라멘집 생면같이 쫄깃하며 카레수프는 칼칼하며 걸쭉하다. 태국산 재스민 라이스를 비벼먹으면 좋겠지만 이미 배가 부르다.


카오소이는 카레와 고기국수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가격까지 저렴하다. 서둘러 카오소이 2그릇을 100밧(4,000원)에 계산하니 "왜 내 것까지 계산했냐?"는 듯 잔소리를 이어간다. 국수를 먹다 말고 차에 가서 많이 숙성되어 미지근해 보이는 파인애플을 먹으라며 내어온다. 레몬보다 시큼한 파인애플 한 조각으로 입가심까지 마무리했다.


배려를 받으면 감사로 표하니 서로 따뜻함을 주고받은 것일까. 이제는 외국인이 아닌 아들 마냥 대놓고 태국어로 말을 다. 짧은 동행이 끝나고 못내 아쉬워 보이는 택시 기사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듯 내 등을 두드린다. 상경하는 아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저랬을까. 헤어지고 나서도 노인의 택시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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