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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Aug 12. 2023

태국 방콕, 8밧 버스 속 개미

살림남의 방콕 일기 (#167)


집에서 방콕 도심으로 외출해야 하는 날에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집 근처 이용할 수 있는 도시철도가 없기도 하지만 목적지까지 역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택시나 버스로 갈아타야 하니 불편함은 같다. 다행히 환승 없이 한 번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택시를 타고 가면 간단할 일이지만 평일 도심정체는 상상을 초월한다.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서서 시간과 미터요금만 올라가는 기막힌 경험을 하고 난 후 마음 편한 버스만 이용하게 된다.


출근시간이 지난 오전 10시, 이미 차와 오토바이들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 도로에는 여전히 여파가 남아있다. 방콕 도심의 교통정체는 평일 오전 7시 ~ 오전 10시와 오후 4시 ~ 7시에 심하지만 특히 월요일 오전과 금요일 오후가 피크다. 시간대가 겹친다면 최소 1시간 이상 여유를 고 가까이 있는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간단한 서류 처리하나에도 반나절이상 소요되는 환경, 오후가 돼서야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늦은 점심과 커피 한잔으로 몽롱했던 정신을 깨우니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아차 싶다. 금요일은 오후 2시부터 퇴근길 정체가 시작되어 저녁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서둘러 정류장에 도착하니 버스도착예정 시간까지 20분여... 조급함 때문인지, 구름 없는 맑은 날씨 때문인지 오늘만은 에어컨 없는 8밧 버스를 피하고 싶다.


"태국에서 요행을 바라지 마라."는 경험에서 얻는 진리.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사이로 빨간색 골리앗 8밧 버스는 불구덩이에서 나오는 지옥행 버스처럼 보인다. 버스 안은 하교하는 학생들과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앉을자리 없이 빼곡하다. 그나마 달릴 때마다 들어오는 뜨거운 바람마저 정체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사람냄새로 숨이 막힌다. 고작 5km를 이동하는데 한 시간, 8밧 버스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다.


1시간여 제자리 서있다 보니 거꾸로 매달린 푸줏간의 돼지마냥 산송장이 따로 없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졌을까 피부가 간질간질하다. 하지만 땀이 송골송골 맺힌 팔뚝사이로 작은 개미 한 마리가 힘겹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기다리던 버스정류장에서 함께 올라탄 걸까? 버스에 집을 짓고 살아온 걸까? 개미의 작은 발걸음이 온몸을 간지럽히니 더 이상 동행할 수 없다.


손가락으로 쳐내자니 수많은 사람들에 밟힐 테고, 손가락으로 누르자니 살려고 발버둥 쳐 올라오는 개미의 모습이 안쓰럽다. 정체구간을 벗어난 버스는 화난 황소처럼 굉음을 내며 힘차게 달려 나간다. 팔로 기어올라왔던 개미가 방향을 잘못 잡은걸 눈치챘을까? 겨드랑이를 향해 기어들어간다. 아직 2개의 정류장이 남았지만 서둘러 하차벨을 눌러 도망치듯 내렸다.


내가 개미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자유밖에 없다. 인적이 드문 정류장의 사이로 개미를 조심스레 털어낸다. 개미 덕분일까? 지옥의 황소 같던 8밧 버스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가장 무더운 오후 4시, 마치 한겨울의 감기몸살처럼 온몸이 쑤시고 식은땀이 흐른다. 낯선 땅 태국, "이렇게까지 살아가야 하나?" 의문이 들 때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개미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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