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학교 수업에 필요한 스케이드보드를 사기 위해 메가방나란 쇼핑몰에 가보기로 했다. 이곳은 수완나품 공항 근처 대규모 쇼핑몰로 이케아, 빅씨, 홈프로 등 대형 마트가 모여있는 대형 아웃렛이다.
택시를 타고 가기엔 혼자라 가성비가 떨어지고, 도시철도는 주변에 없어 시내버스를 타기로 한다. 태국의 버스는 구글 지도 시간과 연동된다고 하지만 실제 버스정류장에 가보니 예정된 시간에 버스는 오지 않았다. 물론 시내 중심지의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도착시간이 모니터로 확인되지만 외곽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어 무작정 기다려야만 한다.
날씨도 좋고 버스정류장에서 20분 정도 기다리니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온다. 하지만 기분 좋게 손을 들었음에도 쌩 가버리는 버스. 바로 뒤에 우회해서 시간이 더 걸리는 버스가 오길래 그냥 타기로 한다.
요금징수원에게 목적지를 말하니 이 버스는 가지 않는단다. 바로 앞에 쌩 가버린 버스를 타라고 손짓으로 알려주더니 갑자기 크락션과 풀 액셀을 밟으며 앞선 버스를 추월해 앞을 막아주신다. 지금도 기사님이 어떤 의도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승객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아직까지 태국의 과도한 친절함은 적응하기 힘들다.
그렇게 마초적인 기사님의 무지막지한 추월전으로 쌩 가던 버스에 무사히 옮겨 타고 목적지인 메가방나로 향한다. 한국은 좌석버스와 일반버스로 구분되듯, 태국의 버스는 같은 노선의 버스라도 에어컨의 유무로 요금이 결정된다. 버스비는 대략 10~20밧(400~800원)으로 태국의 대중교통 중에 저렴한 교통수단이다.
태국 버스에는 교통카드가 없다. 정확히 카드는 있지만 카드단말기를 요금징수원이 들고 다니며 찍는다. 단말기를 운전석 옆에 설치해놓으면 간단할 것을 이해되지 않지만 불편한 문화라도 존중할 수밖에.
결재 방식은 요금징수원이 목적지를 묻고 구간별 요금대로 표를 끊어주는 방식. 아직 태국어 숫자가 낯설어 대충 20밧(약 800원) 지폐를 내미니 1밧과 표를 내어준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날씨도 좋고 외곽이라 차도 밀리지 않는다. 다행히 이곳에는 학교 준비물인 스케이드보드와 보호구가 있다. 생각보다 빨리 준비물을 찾은 덕분에 간단히 브런치를 먹어볼까 하는 여유가 생긴다.
대형 쇼핑몰은 다국적 기업이 들어와 있어 그런지 태국답지 않고 시스템화가 잘 되어있다. 불편함을 즐기는 성향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접하는 현대화된 문명이 편리하다.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먹고 힘이 생기니 다시 크고 무거운 짐을 메고 겁 없이 다시 버스를 정류장으로 향했다.
태국의 버스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손을 들었는데도 3대의 버스가 아무 이유 없이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이유야 있겠지만 모르니 답답하다. 옆에서 같은 버스를 기다리던 현지인 아저씨가 "버스 번호가 같아도 종점 가는 버스와 순환하는 버스가 있다."라고 불안한 나를 달래주듯 말해준다.
10분. 20분.. 30분... 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오기가 생겨 꼭 타고 말리라 다짐했지만 무려 1시간을 기다려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기다릴 수 없다면 이용할 수 없는 태국 버스를 몸소 체험한 하루. 이러한 불확실성이 아드레날린을 샘솟게 해 잠들어 있던 생존본능을 깨어나게 했다.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즐기면서 태국 버스를 계속 애용하리라.' 창문이 열린 채 에어컨도 없이 굉음과 매연을 내뿜는 흔들리는 태국 시내버스 안에서 그렇게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