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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Oct 24. 2024

매파루앙의 기구한 이야기

치앙마이 옆 치앙라이_여행 편 (#20)


치앙라이에서 가장 기구한 곳은 어디일까? '매파루앙'은 시나카린 태후의 별칭으로 '하늘에서 온 어머니'란 뜻을 가지고 있다. 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이었던 라마 9세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치앙라이를 사랑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소수민족의 치유와 회복에 힘써 양지보다 음지를 위한 왕실의 노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매파루앙'은 1,000m 이상의 고산에 둘러싸여 미얀마와 경을 마주하고 있는 기구한 지역이다. 오갈 곳 없는 아카족, 카렌족, 몽족 등 다양한 부족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과거 양귀비 농장을 현재 왕실의 별장으로 만들고 계절마다 꽃피우는 아름다운 난을 심었다. 왕실의 거처가 자리 잡으니 화전 연기 대신 향 좋은 커피나무와 차밭이 자연스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쿤사의 올드캠프


그러나 아름다운 서사 뒤에는 비극이 존재하듯, '매파루앙'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간 한 사람이 있다. '쿤사(KhunSa)'는 골든트라이앵글의 아편 분쟁에서 핵심 인물로 '버마(현 미얀마) 샨(Shan)족'의 군부 지도자이자 무장단체 수장이었다. 그는 소수민족의 노동력을 이용해 많은 양귀비를 재배하고 아편을 생산해 밀수 경로를 장악하고자 했다. 1989년 쿤사는 미얀마 군부와 휴전협정을 맺어 자신의 영토에 대한 통제권과 합법적인 교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마약 밀수범으수배되었고 결국 미얀마 군부에 투항하게 된다.


모순적이게 쿤사가 머물던 '올드 캠프(용병 훈련소)'는 이름마저 향기로운 '매파루앙'에 있다. '도이퉁 빌라'에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숲이 우거진 날카로운 고갯길을 1시간여 달렸을까. 멀지 않은 거리지만 내비게이션도 끊기는 산속. 베테랑 택시 기사의 옛 기억으로 쿤사의 올드캠프가 있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사랑했던 마을은 기대와 달리 유유하고 평화롭다. 태국에서도 시골인 치앙라이, 오지인 이곳에 나름 규모 있는 학교와 병원이 있다. 라마 9세의 소수민족 재건사업인 '로열프로젝트'는 산골마을까지 삶의 질을 개선하였다.


반면 쿤사와 관련된 안내표지판이나 정보를 아는 사람이 없어 한참을 수소문한  올드캠프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뚝뚝(삼륜차) 한대가 지나갈법한 좁은 골목길을 통과해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니 은밀하게 자리 잡은 쿤사의 캠프와 마주한다. 힘들게 찾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을씨년스러운 터에 관리가 되지 않아 폐허로 남겨진 건물은 모두 폐쇄되어 있다.

폐허가 된 올드캠프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배회하고 있으니 마침 관리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다가와 문을 열어줄 테니 돈을 요구한다. 지방 정부로부터 사적지로 지정받지 못해 지원금도 없이 자체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건물을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먼지가 수북한 쿤사의 침실, 천장이 무너져 내린 집무실, 조명 없이 컴컴한 창고 같은 막사는 꽃으로 화려한 '도이퉁 빌라'와 대조적이다.


쿤사의 기억 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힘없는 소수 부족들은 아편 재배를 위한 노동착취의 노예가 될 뿐, 쿤사는 샨부족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총과 칼로 무장하고 훈련을 강화해야 했다. 또한 정글 속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돈벌이는 화전으로 산을 개간하고 양귀비를 재배해 아편으로 몰래 파는 것뿐이었다.


힘들게 생산한 아편을 밀수하기 위해 메콩강을 통과해야 했지만, 골든트라이앵글(태국-미얀마-라오스 접경지) 아편 루트를 장악한 중국 국민당(93사단) 과도한 통행료를 요구했다. 쿤사는 부당한 제안을 거부하고 800명의 무장 병력과 함께 아편을 라오스로 몰래 반입하고자 했다.


이를 눈치챈 중국 국민당(93사단)은 골든트라이앵글 라오스 접경지에서 쿤사의 무장단체와 수 주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라오스 군부는 아편 분쟁을 자국의 영토를 침범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압도적인 화력으로 두 세력을 공격하였다. 결국 쿤사의 군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라오스 군부에게 아편까지 압수당한 채 결국 와해되었다.

쿤사의 동상


'얼마나 싸워야 전쟁이 끝나는 것일까? 얼마나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까? 얼마나 도망쳐야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절규는 상실감과 좌절감이 섞인 채 언덕을 맴도는 듯하다. 


뿔뿔이 흩어진 민족을 통합하고 해방하고자 노력했지만, 주변국들에게 마약왕으로 낙인찍힌 반항아이자 방랑자로 생을 마감한다. 캠프 뒤편 위풍당당하게 말에 올라탄 쿤사의 동상에는 고뇌와 고독만이 느껴진다. 아무도 찾지 않는 기구한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만 무성한 쿤사의 올드캠프. 치앙라이는 처연함만 남은 이곳에도 이름 모를 야생화를 피워 품고 있었다.



태국 북부의 홍수피해가 심각합니다. 특히 치앙라이의 대규모 침수로 평화로운 일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전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서 빨리 복구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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