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신감 Oct 21. 2024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덕

치앙마이 옆 치앙라이_여행 편 (#19)


'라마 9세'는 치앙라이 주민들이 가장 친애하는 짜끄리 왕조(태국의 집권 왕조)의 이다. 그러나 그 사랑뒤에는 '시나카린'이라는 한 여인의 노력이 숨어 있다. 그녀는 '라마 9세'의 태후(母)로 매파루앙 지역 도이퉁 빌라에 머물면서 소외받는 소수민족들의 신분보장 및 인권 강화, 빈곤 퇴치를 위해 ‘로열 프로젝트’를 지원하였다. '시나카린'과 '라마 9세'를 기리는 사진은 치앙라이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어, 사후(死後)에도 변함없는 시민들의 존경심을 확인할 수 있다.

시나카린 태후


도이퉁 빌라는 1988년 '도이퉁 로열 프로젝트'가 시작될 무렵 시나카린이 거주하던 왕실 별장이다. 스위스와 란나 전통양식을 혼합한 건축물로 남쪽 입구에는 작은 정원과 뒤편 북쪽 발코니에서 멀리 라오스까지 바라볼 수 있다. 빌라 내부는 비공개 구역과 공개 구역으로 나뉜다. 비공개 구역은 왕실의 사유공간으로 이용되어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고, 공개 구역은 생전 태후가 소장했던 유품 및 회화, 사진과 접견실, 부속실(식당, 의료실) 등을 전시하고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검소하고 실용적인 그녀의 생활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도이퉁 빌라로 향하는 진입로에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우거진 숲이 산책로의 그늘을 만들고 우측에는 형형색색 들꽃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산아래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이마의 땀을 노란 손수건 마냥 스치듯 훔쳐 간다. 익숙한 저음의 매미소리, 고음의 풀벌레 소리가 합주를 이루고, 숨이 절정에 오를 때 비로소 지중해 작은 섬의 바다색처럼 깊고 푸른 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


태후도 사랑했을 아름다운 언덕을 보고 싶었던 마음에 험한 도이퉁 산 중턱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구불하고 가파른 산길을 1시간여 달려왔을까. 얼굴이 창백해진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면 나아질 거란 믿음에 매표를 서두른다. 외국인에게 입장료가 비싼 태국 답게 도이퉁 빌라와 정원 2곳의 입장료가 180밧(7,000원)이지만, 태국인들도 생전 꼭 한번 방문하고 싶어 하는 장소 중 한 곳이라는 이야기에 주저 없이 지갑을 연다.

도이퉁 빌라 언덕길


무사히 언덕길에 도착해 마음이 놓이는 찰나, 갑작스러운 현기증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도이퉁 빌라의 풍경이 순간 까맣게 불타버리듯 시야가 흐려져 더욱 당황스럽다. 조금 앉아 쉬면 괜찮아질 거라 가볍게 여긴 탓일까. 점점 몸은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비스듬한 지면을 침대 삼아 완전히 기울인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를 뚫고 나온 오후의 강한 햇발이 얼굴을 비추니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아름다운 언덕에 몸져누워 '다시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에 서럽다.


정신을 차리고 경사를 네발로 기어올라 겨우 별장 앞에 도착했다. 입구에 있던 직원들이 기묘한 자세의 외국인을 매섭게 노려본다. 오전에 아침식사로 먹은 카오소이가 탈이 난 모양이다. 체기가 있어 화장실을 찾았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 나가야 한다는 도이퉁 빌라 직원의 단호함에 진퇴양난이다. 별장은 보안구역으로 총을 멘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왕실의 위엄에 냉정해 보이는 관리 직원들은 고립된 이방인을 유심히 감시하고 있었다. 초췌한 몰골의 절박함이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고심 끝에 빌라의 비공개 구역 안 화장실로 긴급히 안내한다.


태국은 왕실의 권한이 막강하여, 왕실소유의 시설에는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그러나 시나카린의 어진 마음이 이 자리에 머물러서일까. 굳게 잠긴 문을 선뜻 열어주었을 때 그녀의 이심이 전심으로 전해진다. 차량 진입이 되지 않는 별장 입구까지 전기 카트를 끌고 와 안전하게 매표소 앞까지 호송하고, 택시 기사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긴급히 후송될 수 있도록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 구불한 산길을 빠르고 편안하게 운전하는 기사의 노력까지 더해져 응급처치는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도이퉁 빌라 입구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덕이 어디일까? 단연코 도이퉁 빌라의 언덕길이다. 아편을 위한 양귀비 밭을 개간하여 일 년 내내 꽃이 피고 지는 정원으로 가꾸고, 고립된 소수민족의 자립을 후원했던 시나카린의 헌신만으로 충분히 아름답지만, 고통 속 이웃을 외면하지 않았던 치앙라이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위로가 있는 곳, 이웃을 위한 존중과 배려가 있는 곳, 치앙라이는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작가의 시선

○ 치앙라이 여행의 성수기와 비수기

- 방문하기 좋은 시기 : 치앙라이의 하이시즌은 건기인 11월~2월 사이로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이 시기에 다양한 지역 행사가 열려 관광수요가 높아져 여행 비용이 1.5~2배 이상 상승하기도 한다.

- 피해야 할 시기 : 치앙라이의 3월~5월은 도시 전체가 미세먼지로 가득하다. 산간지역에서 개간을 목적으로 화전을 하기 때문에 매캐한 연기가 정체되어 태국 북부지역 대기 환경이 좋지 않으며, 혹서기로 연중 가장 무더운 시기이다.



태국 북부의 홍수피해가 심각합니다. 특히 치앙라이의 대규모 침수로 평화로운 일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전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서 빨리 복구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