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람남꼭국립공원은 커피 생산지로 유명한 도이창과 팡콘지역을 품고 있어 뛰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산이 높고 능선이 고개마다 이어져 국제 트래킹 대회가 수일에 걸쳐 열리기도 한다. 특히 쿤꼰둘레길은 태국의 국왕 라마 10세가 자연보호구역 지정하여 치앙라이 내에서도 잘 가꾸어진 둘레길이다. 도심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서너 곳의 작은 마을을 지나 나지막한 산길을 올라가면 람남꼭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
람남꼭국립공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두려움과 기대감을 함께 선사한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산행, 특히 정글 같은 열대우림이라면 괜한 불안감이 앞선다. 입구부터 뱀을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인사 대신 맞이한다.
온몸이 푸르러 독까지 푸른 풀뱀과 오만한 머리를 흔들며 까만 독을 내뿜는 킹코브라의 순간적인 고통은 인내할 수 있다. 하지만 제 몸이 칭칭 감긴 채 무기력하게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아나콘다와 마주한다는 생각에 닭살 돋듯 소름이 오른다. 하지만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제법 근사한 폭포를 만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그 두근거림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겨우 달래 본다.
그러나 갑자기 풀잎사이를 스치는 소리에 발걸음은 이내 경직된다. 다시 돌아가도 늦지 않은 거리. 발길을 돌릴까 망설이는 순간 바람이 불어와 얼어붙은 몸을 어루만지고서야 다시 출발한다. 산행이 깊어질수록 공기는 빙하가 녹은 물처럼 차가워지고, 계곡의 물소리는 점점 거칠어져 바위를 맴돌아 메아리친다.
쿤꼰둘레길과 뱀주의표지판
걸어오는 내내 수상한 소리가 미행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차가운 비늘이 몸통을 감아 숨을 조여 올 것만 같다. 표지판도 지도도 없는 곳에 난데없는 갈림길. 이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제발 폭포가 앞에 있다면 거대한 아나콘다를 껴 안은채 뛰어내려 숭고한 죽음을 맞이할 텐데. 그 순간 차갑고 작은 물방울이 콧잔등에 묻어 식은땀이 되어 흘러내린다.
이슬이 꽃잎에 이끌리듯 발걸음은 방울꽃이 날아온 쪽으로 곧장 향한다. 메말랐던 땅은 점점 질척거리고, 구름같이 미세한 입자는 희뿌연 안개로 두꺼워진다. 걸음은 느려지고 뒤를 쫓는 소리는 점점 커져간다. 길을 잘못 든 걸까. 믿음이 흔들린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굵은 물방울로 가려진 안경을 벗었을 때, 폭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제야 뒤돌아서 심중에 외친다. "더 이상 마음속 아나콘다 따위에 겁먹지 않으리!"
쿤꼰폭포는 치앙라이에서 가장 높은 폭포로 그 높이가 약 70m, 수량도 풍부하여 낙하하는 물줄기는 위풍당당하다. 고도 약 800m 산에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폭포는 바리톤처럼 중후한 목소리로 산을 울린다. 물은 낭떠러지에 부딪히며 증발되었다가 바닥에 닿으면 응축되어 폭발하듯 이는 물폭풍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폭포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폭포들이 떠 오른다.
쿤콘폭포
아이슬란드는 얼음과 불의 나라지만 화산에 녹은 빙하의 푸른물들은 바다로 향하며 곳곳에 수많은 폭포를 만들어 낸다. 깊은 협곡을 따라 약 30m의 높이에서 최대 초당 2,000톤을 쏟아내는 거대한 굴포스와 높이 60m, 폭 25m의 안정적인 비율에서 수직으로 곧게 낙하하는 잘생긴 스코가포스는 최고의 인기명소다.
그러나 자동차로 목적지까지 이동해 편안히 볼 수 있는 이들과 달리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을 약 1시간가량 힘들게 올라야 만날 수 있었던 높이 20m의 왜소한 스바르티포스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쿤꼰은 평범한 크기의 폭포지만, 자유낙하하는 물의 강한 떨림은 온몸을 전율케 하고, 태양의 눈부심처럼 강렬한 하얀 물보라는 마음을 삼켜버린 아나콘다를 떨쳐내기 충분했다.
하산길, 두려움이 사리지니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가득하다. 좁은 햇살을 홀로 받기 위해 하늘 끝까지 자라나는 거인나무는 교활한 숲 속의 나르시시스트다. 그 거인나무를 숙주 삼아 줄기를 칭칭 감고 기생하는 반얀나무는 은밀한 숲 속의 살인자다. 불꽃 튀는 생존경쟁 틈에서 물을 가득 머금고 화전으로 인한 산불을 진화하는 키 작은 바나나나무는 고귀한 숲 속의 소방수이다.
쿤꼰계곡
폭포 하류의 계곡은 물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 얕고 물살도 약하다. 그나마 큰 물길도 곁길로 개울 되어 흘러가니 그 길을 따라 자생하는 대나무로 엮어 다리를 이어 놓았다. 냇물은 몽돌을 실로폰처럼 두드리며 수백 년 동안 경쾌하게 메콩강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산행이 시작이라면 폭포는 전환점이 되고 출발 전 가졌던 두려움은 성취감으로 바뀌어진다. 조물주는 치앙라이를 사랑해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폭포를 보물처럼 숨겨두었다.
태국 북부의 홍수피해가 심각합니다. 특히 치앙라이의 대규모 침수로 평화로운 일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전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서 빨리 복구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