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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Oct 09. 2024

시골 의사와 바리스타

치앙마이 옆 치앙라이_카페 편 (#10)


대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에서 병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치앙라이 전역에서 모여드는 환자로 도심인 시계탑 주변은 연중무휴 24시간 고막이 터질듯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앰뷸런스가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그래서일까. 치앙라이 도심 대형병원 앞은 제법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치앙라이 대형병원 앞 풍경


오전 8시 병원 주변은 환자와 출근하는 근로자들로 항상 붐빈다. 도로 양옆에 설치된 인도를 점포 삼아 길거리 식당이 펼쳐지며 병원 앞은 차와 사람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느긋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이 흘러 오전 9시, 사람들은 각자 자기 위치로 돌아간다. 병원 앞 인력거꾼도 모처럼 그늘에 앉아 마른 종아리를 주무르고, 새벽 일찍 찐빵을 팔던 상인도 텅 빈 큰 찜통을 가볍게 픽업용 트럭에 싣는다.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음식을 팔던 식당들도 약간의 여유가 있어 보인다. 분주함이 사라진 틈 사이로 비로소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치앙라이의 인기 많은 로스터리 숍에서 만든 병원 옆 작은 카페. 그곳의 안과 밖은 병원처럼 온통 하얀색이다. 약 20평 크기의 카페 공간 중 절반을 바리스타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바에는 3명의 숙련된 바리스타들이 쉴 틈과 빈틈없이 주문을 받고 완벽한 커피를 만들어 낸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맡은 주문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처리한다.


병원 옆이라 외국인들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병원을 위한 카페 같다. 몇 년 동안 유난히 힘들었던 의료진과 환자들의 피로를 풀어줄 커피는 저렴하고 신선하다. 로스팅 단계와 가공 상태를 선택할 수 있는 원두의 종류만 5가지가 넘는다. 생사의 경계의 틈을 메우기 위해 분주한 병원, 그리고 옆에 위치한 카페이기에 복잡한 메뉴보다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기본 메뉴들로 구성되어 기다림도 짧다.

치앙라이 인력거꾼


태국의 문화 수용성은 커피 메뉴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표적인 태국 현지식 커피인 Es-Yen과 호주에서 유래된 플랫 화이트, 이탈리아의 카푸치노, 미국의 아메리카노 등을 한 카페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방콕에서는 100밧(4,000원) 가까이하는 플랫 화이트를 50밧(2,000원)에 판매한다. 직접 로스팅하고 브랜딩 한 하우스 원두로 전문 바리스타가 만들어 내는 플랫 화이트를 기대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내부 공간에 비해 탁자와 의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등받이 없이 각진 의자는 안락함 보다 대기석 같아 평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주문한 플랫 화이트는 갖구워낸 카스텔라처럼 색깔과 향이 선명하다. 한 잔 가득 넘실거리지만 녹진해 유리잔과 받침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으니 그들의 성품과 많이 닮아 있다. 커피 속 화려한 꽃이 입맞춤에 질까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셔본다. 라테보다 묵직한 보디감의 플랫 화이트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처럼 감미롭고 차분하다.


오전 10시, 카페 앞 병원에서 의사들이 커피를 찾아 들어온다. 시골 소도시에 젊은 의사들의 등장이 신선하다. 꾸깃함에 피곤해 보이는 하얀 가운이지만 남루하지 않다. 월요일 아침 분주함 때문일까? 아니면 밤을 지새워서일까? 아마도 새벽 내내 드나든 앰뷸런스 소리로 간밤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일상의 바쁨이 있고, 고단함이 있고, 힘듦이 있는 곳에 항상 카페가 있다. 특히 북방의 작은 도시, 작은 로컬 카페는 하루 종일 헌신하며 수고하는 이에게 향기롭고 풍성한 커피 한 잔을 정성껏 대접하며 위로한다.

치앙라이 병원 옆 카페


작가의 시선

○ 태국의 이색적인 커피 문화

- 과도한 달달함 : 태국의 음료는 대부분 시럽이 들어간다. 당도가 너무 높아 얼음이 다 녹아도 먹지 못할 만큼 시럽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 항상 주문 전 기호에 맞는 시럽 양을 알려 주어야 한다.

- 잘못된 주문 : 핫 라테를 주문했지만 시럽이 들어간 아이스 라테가 나오기도 하고, 1잔을 주문했는데 2잔이 나오기도 하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지만 토스트가 함께 나오는 등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에 주문을 명확히 해야 한다.

- 불필요한 일회용품 : 대부분의 음료는 1회용 컵에 제공되며, 특히 편의점이나 노점 커피는 플라스틱 컵을 비닐봉지에 담아 주기도 한다. 심지어 커피 한 잔에 발생되는 1회 용품은 컵 외에 빨대, 비닐봉지, 1회용 설탕, 크리머가 추가로 발생되니 불필요한 일회용품이 과도하다.



태국 북부의 홍수피해가 심각합니다. 특히 치앙라이의 대규모 침수로 평화로운 일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서 빨리 복구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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