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는 보물섬. 산중 마을은 보물상자. 밭은 꽃향을 머금은 채 이랑 사이로 유유히 흘러간다. 누구를 위해 피었는지 무명절색의 야생화, 누구를 위해 맺었는지 삭정이 없이 한아름 과실들로 넉넉하다. 바람 소리, 흘러가는 구름, 비에 젖은 흙냄새,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평화로움이 호흡에 묻어난다. 그 순수함이 살아 숨 쉬는 공간. 치열한 도시 속 상처 입은 폐는 그들이 내뿜는 신선한 공기로 치유받는다. 이것이 치앙라이가 주는 선물이다.
도이창 마을의 과실수
태국 커피의 성지 도이창. 태국 소수민족의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도이창은 치앙라이 주 매쑤어이 지방에 위치한 제법 규모 있는 마을로, 아카 부족을 중심으로 약 500여 가구에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치앙마이와 치앙라이 사이에 위치해 커피재배지로 최적의 장소지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렌터카나 택시뿐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방문하기 쉽지 않다.
도이창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도이란. 전망 좋은 카페가 도로를 따라 지천이다. 지금도 새로운 카페와 홈스테이 건물을 공사 중인 곳이 많아 굳이 오지 마을까지 들어갈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서로의 말과 문화는 다르지만 커피로 하나 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매력이 이곳까지 이끌게 한다. 도이창마을은 고도 1,000m 이상의 산 중턱, 매싸이 파히마을 보다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해 제법 마을같이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침 7시, 어김없이 커피를 찾아 마을로 들어선다. 아침부터 낯선 외국인의 등장에 키 작은 아카 사람들이 경계하는 눈치다. 하지만 무도하지 않게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공손히 인사를 건네자 이내 수줍은 미소로 응대한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을 따라 계속 걸어보아도 여행자 없는 시골 마을에 카페가 있을 리 없다. 어쩔 수 없이 문이 열린 작은 점방에 들어가 커피를 찾아보지만 예전 방문했던 파히마을의 점포처럼 믹스커피가 고작이다. 빈 손으로 나오기 미안해 5밧 커피 한 잔을 들고 마을을 조금 더 구경해 보기로 한다.
도이창 마을의 운무
마을 아래 너울너울 운무가 보드라운 신비감에 가득 찬 도이창. 그 안에 서너 명의 아낙네들이 마을 회관 같은 곳에 모여 있다. 마침 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카 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안으로 들어오라며 무색하게 손짓한다. 마을 회관처럼 생겼지만 출하 전 커피콩을 선별하는 공동 작업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간단한 목례를 하니 무춤히 종이컵에 커피 메이커에서 우려낸 커피와 함께 바나나까지 내어준다. 소외된 이웃에 대한 도량이 커서일까? 낯선이라도 정성껏 대접하는 부족 사람들의 정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가공된 커피가 아닌 자연 속 커피를 발견했다는 반가운 마음에 "코쿤캅!" 인사가 저절로 인다. 다크와 미디엄 사이 묵직한 보디감의 도이창 커피, 컵 아래 깔린 거친 원두 찌꺼기가 필터로 우려낸 진정한 도이창 커피임을 말해준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고마운 마음에 마을 입구 구멍가게로 올라가 커피와 함께 먹기 좋은 빵과 도넛을 사서 가져다주었다. 커피 선별 작업에 누가 될까 눈빛만으로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받은 것이 많기에 여전히 미안함과 감사함의 감정이 교차된다.
태국 커피의 본향 도이창. 원주민들이 커피농장에서 일할 때 마시는 커피는 믹스커피 대신 상품으로 판매할 수 없는 못난이 원두였지만, 그 커피는 향이 구수하고 정까지 묵직한 진짜 커피였다. 숨만 쉬어도, 걸어만 다녀도, 바라만 보아도 치유가 되는 산중 마을. 치앙라이 매쑤어이는 매(Mae)라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따뜻함으로 품는 산이 있는 곳이다.
도이창 마을의 여인들
작가의 시선
○ 태국의 커피 이야기
태국은 아라비카 및 로부스타 커피 산지지만 증가하는 커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 세계 주요 산지에서 원두를 수입한다. 태국에서 수입되는 커피는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등의 아라비카 품종이다. 그 외 블렌딩을 위해 태국과 인접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로부스타 원두도 수입한다.
아라비카 원두는 섬세하고 복잡한 풍미를 특징으로 선호도가 높아 가격이 비싸다. 반면 로부스타 원두는 쓴맛이 강해 아라비카에 비해 선호도가 낮으며 생산량도 많아 가격도 낮다.
태국 북부의 홍수피해가 심각합니다. 특히 치앙라이의 대규모 침수로 평화로운 일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름다운 예전의 모습으로 어서 빨리 복구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