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 고산과 미얀마 국경으로 고립된 파히(PhaHee)는 아카족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다. 태국에서 아카부족은 커피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아편을 위해 양귀비를 재배했지만 라마 9세의 로열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커피나무를 가꾸게 되었다. 산비탈에 위치한 파히마을은 현지인들 사이에 커피 재배지로 유명하다. 커피는 1,000m 이상 높은 서늘한 산지에서 강수량이 적고 배수가 잘 되는 지형에서 자란다. 마을로 불어오는 계곡바람은 시원하고 급경사로 배수가 잘되는 환경이다.
파히마을 풍경
운무가 아름다운 산중 카페가 있는 마을. 구름도 잠시 쉬어 가듯 매싸이로 넘어가는 정상에 많은 사람들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다들 잠시 스쳐 지나가기 아쉬운 마음일까? 고산마을에는 카페나 식당에서 홈스테이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 있다. 비수기에도 당일 홈스테이는 구하기 어려워 사전 예약은 필수인 곳이지만 운 좋게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파히마을의 커피 향에 이끌려 잠시 들어왔다 마을의 향기에 취해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간밤 하늘을 울려대던 오케스트라 속 무거운 팀파니 소리처럼 ‘둥둥’ 거리는 천둥소리에 밤잠을 설쳤지만 이곳의 아침 풍경을 놓칠 수 없다. 밀려오는 고단함을 이기려 커피를 찾아 나선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며 둘러보아도 아직 문을 연 카페는 없다. 아침 식사와 등교 준비로 바쁜지 느긋한 커피향보다 아궁이 연기가 분주한 아침 분위기를 대신한다.
파히마을의 아침 풍경
때마침 마을 시골 점방 앞에 보온병이 보인다. 아카족으로 보이는 30대 주인에게 "커피?"라고 물었더니 5밧짜리 인스턴스 커피를 내민다. 커피 마을에 인스턴스 커피라니. 망설였지만 이탈리아 여행에서 줄 서 먹었던 수제 화덕피자보다, 배고플 때 허겁지겁 먹었던 냉동피자를 떠올리며 5밧(200원) 짜리 믹스커피 한 개를 손에 쥐었다.
보온병에 담긴 미지근한 물을 유리잔에 부어 잘 풀리지 않는 분말을 휘휘 저어가며 마시니 예전 자판기에서 마셨던 익숙한 맛이다. 역시 노동에는 달고 부드러운 믹스커피가 태국 시골 마을에서도 통용되는 모양이다. 커피 한 잔을 쓴 약을 삼키듯 입안에 훌훌 털어 넣고 다른 포트에 담긴 우롱차를 조금 부어 마시니 달달해진 입맛은 차향으로 이내 상쾌하다.
태국 북부 커피 마을에서 5밧짜리 커피믹스를 예상하지 못했다. 치앙라이산 우롱차가 허전한 입맛을 달래 주었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와인보다 소주 한잔이 어울리고, 향기로운 자연커피보다 카페인 많고 달달한 인공커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나른하고 두통 오는 오후의 고단함을 이기기 위해 습관처럼 마셨던 노란색 커피믹스처럼 그들의 일상도 우리와 닮아 있다.
커피마을에서 마시는 커피
작가의 시선
○ 인스턴스 커피 종류
태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인스턴스 커피를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3 IN 1으로 표시된 크림+설탕+커피 제품으로, 정작 설탕과 프림 없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찾기 어렵다. 원하는 믹스 커피를 찾기 위해 포장지 전면 좌측 하단에 영양성분표를 참조할 수 있다.
영양성분표란? 하루 최대 소비량을 백분율로 표시한 정보로, 좌측부터 칼로리-설탕-지방-나트륨 순으로 모든 제품에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설탕이 빠진 커피를 찾는다면 좌측 두 번째 설탕 정보가 0%인 제품을 선택하고, 프림이 빠진 커피를 찾는다면 좌측 세 번째 지방 정보가 0%인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태국 북부의 홍수피해가 심각합니다. 특히 치앙라이의 대규모 침수로 평화로운 일상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름다운 예전의 모습으로 어서 빨리 복구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