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방콕 살림은 아빠가 해야 제 맛 (#3)

by 김자신감


방콕에 도착한 첫날. 날씨가 흐리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예약한 가성비 좋아 보이는 레지던스. 사진과 달리 딱 돈값하는 허름한 숙소였다. 그래도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니 안도감에 급히 피곤해진다. 걸어서 10분 거리 가까운 마트에 장을 보고 간단히 저녁을 때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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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태국 사람은 매끼를 사 먹는다고 들은 터라 숙소 주변부터 길가 노점이 많다. 거리에서는 꼬치구이의 달콤하고 매캐한 숯 냄새가 거리에 진동하며 애피타이저처럼 식욕을 돋운다. 아직까지는 무덥고 습한 날씨 신선도와 원산지가 검증되지 않은 길거리 음식을 도전하고 싶은 용기가 없다.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없어 길 건너 마트를 가려해도 육교가 있는 곳까지 돌아서 걸어가야 했다. 길만 건너면 5분인 거리를 10분을 더 걸어 15분이 걸린다. 오토바이와 차량의 소음, 매연과 섞인 습한 공기, 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거대한 들개 한 마리를 피해 걸으려니 5분도 안돼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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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이 나란히 걸어가기도 좁은 인도를 무사히 통과했지만 큰 들개라도 마주친다면 순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된다. 아무래도 우리가 한국에서 너무 편하게 살았던 걸까? 과연 아이들과 이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첫날부터 도전이다.


맥스밸류 마트에는 직접 조리한 태국 음식들을 먹기 좋게 도시락으로 팔고 있었다. 가격은 20밧(700원)에서 70밧(2,500원)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대략 50밧(1,850원) 정도면 한 끼는 해결할 수 있어 보인다. 아이들은 닭튀김이 토핑 된 노란 카레, 나는 알 수 없는 녹색 수프를 골라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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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무모한 도전에는 실패가 따르는 법. 아이들이 선택한 카레는 3분 카레에 여들여들한 프라이드치킨을 올린 익숙한 맛, 하지만 내가 선택한 그린커리(깽키여우완)는 우유, 식초, 산초를 넣은 오묘한 맛이라 절반도 못 먹고 수저를 놓았다. 변화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지만 특유의 향신료 맛은 아직 낯설다.


이른 저녁을 마치니 밖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 주변이 번쩍거리더니 곧이어 천둥소리가 이어진다. 잠시 뿌리다 말겠지 생각하고 내일 일정을 아내와 계획한 후에도,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그치지 않고 밤새 번개가 내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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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랫동안 치는 번개를 생전 본 적이 있었던가? 모든 것이 두렵고 경이롭다. "오늘 밤은 무사히 보낼 수는 있겠지? 설마 번개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아내의 어처구니없는 걱정에도 선뜻 확신할 수가 없는 방콕의 첫날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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