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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Sep 29. 2022

태국 방콕의 적벽대전, 폭우 속 등교

살림남의 방콕 일기 (#37)


갑자기 대문 앞에 있는 종이 요란하게 울린다. 학교 가기 전 아침시간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다. 하늘을 보니 공명이 적벽에서 바람을 일으키듯 순식간에 까만 먹구름이 밀고 들어와 하늘을 덮는다.


밖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아이들은 조조처럼 잠이 깨지 않아 몽롱한 채 교복도 입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다. 괘심 하지만 방심한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 조만간 알게 되리라 화난 손권처럼 숨을 참아 삼킨다.


그래도 아비의 마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덕 같이 애처로워 애가 탄다. 하교할 때야 비가 쏟아져도 젖은 양말과 옷을 벗고 샤워하면 그만이지만 등교할 때는 흠뻑 젖은 신발을 신고 반나절을 학교에 앉아 있어야 하는 찝찝함과 불편함이 걱정된다.


특히 잦은 실수에 '실수뭉치', 의도적이진 않지만 일을 만드는 '사고뭉치', 주변정리가 되지 않아 '먼지뭉치'로 아빠에게 '뭉치'로 불리는 작은아이. 작은아이의 뭉치적인 불확실성이 근심을 뭉치게 만든다.


그 순간 분노한 조조가 활을 쏟아 붙는 것처럼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져 온 땅을 때린다. 우산을 방패 삼더라도 우산이 뚫릴 기세다. 학교 등교 시간은 점점 지나가지만 걸어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폭우의 기세에 명마 적토인 전기자전거도 무용지물이다.


그렇게 비가 잠잠해지기를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처음의 기세가 약간 꺾이자 운동화를 샌들로 바꿔 신고 용맹하게 학교로 향한다. 거리로 나서자 물은 배수되지 않고 고여 발목까지 차있다. 출근차량, 등교차량이 한 번에 뒤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풍경이 연출된다.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평소 학교 가는 길에는 유난히 벌레가 많아 작은아이가 항상 깜짝 놀라곤 한다. 송충이와 지네처럼 생긴 벌레가 길가로 나와 차에 깔린 흔적이 낭자한 이곳. 조조의 백만 군사가 수몰되어 물에 떠 다니는 듯 흘러간다.


침수로 정차된 차들과 벌레들로 가득 찬 물을 첨벙첨벙 헤치고 아이들과 험난한 학교로 걸어간다. 시체와 혈흔이 낭자한 적벽의 불바다를 건너야 하는 병사의 적벽가가 흘러나온다. 낯설 다 못해 생전 처음 보는 관경에 아이들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패배를 목전에 서 지켜보는 조조처럼 내가 위로받고 싶은 심정이다.


자세히 도로를 살펴보니 물이 역류되는 것이 아니라 배수구가 작다 보니 바로 배수되지 못하고 물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래도 한 걸음씩 헤치고 나가보니 어느덧 학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앞만 보고 걸어 온터라 작은아이의 표정까지 읽지 못했지만 눈치를 보니 말문이 막혀 할 말을 잃은 표정이다.


작은아이에게 마른 수건, 새양말, 운동화를 챙겨 잘 갈아 신으라 당부하고 방콕의 적벽, 폭우 속 등굣길은 역경 속에서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뒤늦게 학교로부터 '오늘은비로 인해 전교생에게 지각 처리를 하지 않으니 안전하게 등교하라.'는 문자가 왔다. 


눈앞에서 조조를 놓친 공명의 마음이 이랬을까. 상처뿐인 승리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만은 보내겠다는 맹부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만 고생한 거 아닌지 미안스럽다. 그래도 오늘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어떤 열악한 것을 보더라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담대함을 얻은 것이라 억지로 위안삼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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