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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Sep 27. 2022

태국, 익숙할 때 찾아오는 게으름

살림남의 방콕 일기 (#36)


나에게 게으름과 실패는 동의어다. 오늘 게으름을 부리다 유심히 봐 놓았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일정을 놓치고 말았다. 구글 지도의 시간만 믿고 게으름을 피운 대가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소중한 시간 그리고 갈 곳이 마땅지 않아 아침에 들렸던 피난처 카페에 또 들러 마셨던 모카 값.


'성공하고 싶다면 꾸준하면 된다.'라는 흔한 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진리이다. 집에 있으면 먹고 싶고, 먹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우리네 본능이니 10분, 20분, 30분..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오늘 예정된 일정을 다 날려 버렸다. 이럴 때 서둘러 나의 게으름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얼마 걸리지 않아 그럴듯한 사유를 발견했고 그 내용은 이러하다.


"새로운 식구인 전기자전거가 생긴 후로 나의 아침과 저녁은 바빠졌어. 아침 6시 일어나 아내를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고, 7시에 큰아이의 픽업, 7시 10분에 작은 아이의 픽업을 해야 해. 오후에는 반대로 작은아이, 큰아이, 아내를 차례대로 데리고 와야 하기 때문에 대기시간까지 합하면 총 3시간 정도가 사라 지는 셈이야.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는 나의 피로를 유발시켰고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쉴 수밖에 없었어. 즉 오늘의 게으름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발생한 것이야.'


아주 그럴듯한 이유 아닌가? 이 정도면 누가 보더라도 "게을러서가 아니라 피곤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구나." 공감해줄 법도 하다. 세상을 살아보니 이런 핑곗거리만 늘어 가는 것 같다. '나의 잘못은 없고 주변의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당위성을 부여한다.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자기 합리화의 오류. 이제 태국 생활이 익숙해져 가는 지금, 나에게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실책인 셈이다.


아이들에게는 부지런함을 요구하면서 진정 본인은 나태함을 즐기고 있으니 전혀 공정하지가 않다. 항상 지인들에게 태국에서는 약속시간보다 최소 1~2시간 일찍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고 얘기하지만 정작 본인은 잊어버리고 지각하고 만다. 살림남으로 해야 하는 본연의 일은 가정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것, 이 목적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하고 그 외의 일들은 핑계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구차한 변명도 젊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40대 중반, 몸은 점점 무거워져 침대만 보면 눕고 싶다. 정말 바닥에 누워 쉬어야만 움직일 수 있기에 자신이 길가에 누워있는 나이 든 들개가 되어가는 기분마저 든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칠 때면 후반전이 시작되는데 짬짬이 쉬어놓지 않으면 경기를 뛸만한 체력이 남아 있지 않는다. 이제는 구차한 변명보다 서러운 동정을 구해야 하는 나이라 생각하니 괜스레 서글퍼진다.


그래도 피곤함을 이겨내고 주어진 책무를 지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이곳에서 제2막을 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목적이다. 성공적인 태국 생활을 완성시키기 위해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내일의 변화된 모습을 그려봐야겠다. 현재의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변화에 도전하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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