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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Sep 25. 2022

새로운 가족, 전기 자전거

살림남의 방콕 일기 (#35)


태국에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바로 교통문제이다. 택시는 원하는 시간 호출이 잘되지 않고 버스는 언제 도착하는지 알 수 없고 오토바이는 위험하고 도시철도는 인근에 없어 이용할 수 없다. 오로지 믿을 것은 거칠고 튼튼한 발 밖에 없다.


몇 주 전 작은 아이가 식중독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택시도 잡히지 않는 거리라 아픈 아이를 업다시피 집에 온 적이 있은 후로 최소한 자전거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통근 및 통학할 때 이동수단이 없다 보니 가족 모두 불편함이 너무 크다. 아내는 버스나 택시를 타기 위해 큰 도로로 걸어 나와야 하는데 그 길이 너무 멀고,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이 너무 힘든 것이다.


자전거를 사자니 기동성이 떨어지고 오토바이를 타자니 면허가 필요했다. 절충되는 이동수단이 없을까 고민하다 전기 자전거가 범위 안에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에 전기자전거를 검색해보니 수많은 종류의 제품이 나온다. 나에게 맞는 전기바이크가 어떤 것인지 조건부터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아내와 함께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큰 도로까지 갈 수 있을 것, 두 번째, 아이들의 가방을 싣고 학교까지 갈 수 있는 크기일 것, 세 번째 도난, 고장에도 부담 없는 가격일 것. 이 세 가지 조건으로 검색해 보니 제품군이 좁혀진다. 멋으로 탈 것도 아니요. 고급스럽게 탈 것도 아니요. 오직 생존을 위해 필요하기에 가격과 기능만 중점을 두고 선택했다.


태국 인터넷 쇼핑을 이용해 본 적이 없어 비싼 제품을 구입해도 문제가 없을지 고민된다. 한국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 반품이나 취소가 어렵다. 리뷰를 보니 파손된 배송, 색상이 잘못된 배송, 누락된 배송으로 환불 요청 등 안 좋은 평가가 줄줄이다. 어쩔 수 없이 나보다 뽑기운이 좋은 아내에게 기능 등을 다 설명하고 원하는 색상과 제품을 선택하라고 부탁했다. 과연 우리에게 발이 되어 줄 전기자전거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주문하고 3일이 지났을까? 도착하기로 한날에 배송되지 않는다. 적 조회를 해보니 출고는 되었다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 아무리 저렴한 제품을 샀다지만 그래도 7,000밧(28만 원)이나 줬는데 첫 주문부터 성급했던 걸까. 매장에서 보고 사자는 아내의 충고를 듣지 않은 터라 혼자 속으로 전전긍긍이다.


다음날 오후, 다행히 목이 길어져라 기다렸자전거가 도착했다. 그런데 택배 배송을 하시는 분이 젊은 여성이다. 태국이 모계사회라 그런지 직업에 있어 남성과 여성 구분이 없다. 50킬로에 육박하는 박스를 혼자서 훌쩍 들고 집안까지 넣어 주신다. 다행히 박스는 파손되지 않고 무사하니 한숨 놓인다. 이제 아내의 뽑기 운을 확인할 차례. 그 운이 통했는지 박스를 뜯고 6시간 후, 우여곡절 끝에 조립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저녁 9시 첫 시동을 걸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이제 방콕도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선한 바람이 하루 종일 땀으로 흠뻑 젖은 나의 고생한 등판을 시원하게 토닥여 준다. 내일부터 당장 아내 통근과 아이들의 통학을 위해 발이 되어 줄 전기자전거를 새 가족으로 맞이했다. 자동차 핸들만 한 작은 바퀴로 거친 방콕 길바닥을 우리 대신 달려줄 자전거의 안전한 동행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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