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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Oct 18. 2022

방콕, 태국 남부식 로컬 덮밥집 (까오랏깽)

방콕의 먹거리 (#16)


3일째 하늘이 잔뜩 흐리며 비가 온다. 9월 말 방콕은 잦은 침수로 외출을 하고 싶어도 멀리 나갈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은 기간이 지나버린 휴대폰 탑업을 위해 비가 와도 외출을 해야만 한다. 이왕 나간 김에 점심 계획까지 세워본다.


나의 식당 선택 기준은 단 2가지, 위생적이고 로컬적인 곳이다. 위생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고, 로컬적이란 표현을 부연하자면 태국은 동남아 관광대국으로 태국 국내총생산의 15%를 관광수입으로 벌어들인다. 태국 방콕의 중심지는 외국인이 차지하며 원주민들은 자연히 외곽으로 밀려 나올 수밖에 없다. 현지인들이 많은 외곽 식당들을 로컬이라 부르고 선호하는 편이다.


오늘 맛볼 메뉴는 태국 남부 지방 음식. 태국 남부지방은 해안가에 인접하여 해산물 요리가 많고 맛이 대체로 맵고 자극적인 특징이 있다. 음식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씩 들어 봤을 만한 게살커리(뿌팟퐁커리), 그린커리(캥끼여우완 까이)가 대표적 타이 남부 음식이다.



분위기

구글 평점 4.2점 리뷰가 90여 개로 무난해 보인다. 가게 운영시간이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로 주로 현지 가게들은 아침과 점심만 운영하기 때문에 여유 있는 시간인 오전 11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한다.


가게의 입지는 주도로에서 5분 정도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무반(주택) 단지들의  입구에 위치한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식당이 바로 눈에 띄지 않아 한참을 방황했다. 이런 곳에 과연 찾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생겼지만 점심때가 되니 인근 직장인이나 현지 사람들이 테이크아웃으로 주문을 하는 듯 배달 물량이 엄청나다. 


입구 전면에 미리 만들어 놓은 십여 가지의 소스와 반찬들이 위풍당당하게 전시되어 있다. 주인아주머니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매서운 눈에서 느껴지며 가게의 기세가 등등하다. 이곳은 뷔페식으로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원하는 반찬을 기본 한 가지 선택할 수 있으며 추가로 구입할 수 있다.



메뉴 & 맛

음식 종류가 워낙 많고 태국어로만 적혀있으니 어떻게 음식을 선택해야 할지 처음부터 난관이다. 어쩔 수 없이 앞사람이 선택한 메뉴를 보고 따라 주문을 한 가지 해보았다. 주인아주머니가 어리바리한 손님을 보고 돼지고기 간장 조림을 국자로 가리키며 넌지시 하나 더 추천해 주신다.


그렇게 1식 2찬으로 주문 완료. 테이블 위에는 오이와 그린빈스와 함께 남프릭까피라는 소스가 기본 제공된다. 우리의 고추장에 쌈장을 섞어 액젓을 넣은 맛으로 기대 이상이다. 남프릭까피 소스만으로 밥 한 끼는 해치울 맛이다.



▶ 매운 돼지고기 커리 (파냉무)

수십 가지의 메뉴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내 앞의 젊은 태국 여성 손님이 선택한 메뉴가 파냉무였다. 눈으로 대충 봐도 빨간 고추와 파란 고추가 '엄청 매워'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태국 남부지역이 중북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더 더워 떨어진 입맛을 자극하기 위해 맵고 시고 짠 음식들이 많은 듯하다. 밥에 쓱 비벼 돼지고기 한 점과 맛보니 코코넛 밀크와 돼지고기의 조화가 낯설지 않다. 별로 안 맵다고 생각할 때 한국의 청양처럼 은근하고 묵직하게 퍼져온다.


돼지고기 간장 조림

사장님이 외국인들에게 추천해  가장 무난한 기본 메뉴이다. 파냉무에 달궈진 입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한입 맛보니 딱 한국의 장조림이다. 아이들도 무난히 먹을 수 있는 익숙한 간장 장조림 맛이 오히려 너무 심심하다.


그린커리

사장님이 치킨그린커리와 태국식 고등어조림을 시그니처 메뉴라며 별도로 그릇에 조금 담아 주신다. 방콕에 첫날밤, 마트에서 사 먹었던 그린커리의 기묘하고 오묘맛이 각인되었던 터라 조심스럽다.


그린커리에는 치킨과 죽순, 라임 등 비주얼이 낯설어 밥을 조금 떠 비벼 먹어보니, 걱정이 기우였던가. 맛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향신료의 매콤함과 코코넛 밀크의 부드러움 라임의 신맛과 닭의 담백함 죽순의 달콤함이 조화를 이룬다.


태국식 고등어조림

한국의 고등어조림과 유사한 모양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라임, 죽순, 토란 등 여려 재료들이 들어가 있다. 고등어조림에 라임은 왠지 뜬금없지만 맛을 보면 고등어의 비린맛을 확실히 잡아주며 적당히 신맛이 오히려 입맛을 자극한다.


오늘 맛본 4가지 메뉴 중 하나를 고른다면 이 태국식 고등어조림이 입맛에 가장 잘 맞았다. 배가 불러 끝까지 먹지 못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다음날에도 생각 나는 맛이다.



1식 1찬에 간단한 수프가 기본 제공된다. 밥의 양은 한국 백반집 스텐 공깃밥의 1.5배 정도. 찰기가 없는 미지근한 알랑미로 포만감이 크지 않지만 소스가 밥에 잘 스며들며 비벼먹기 알맞다. 반찬을 1~2개 추가해 먹다 보면 배가 불러 남길 수 있으므로 2개(고등어자반, 계란 장조림 등) 정도의 반찬만 추가해도 충분하다.



가격

태국은 대체로 밥 요리가 면요리보다 20% 정도 저렴한 것 같다. 기본은 밥과 반찬 1개 선택 시 40밧, 밥과 반찬 2개 선택 시 50밧, 반찬 3개에 60밧. 소스가 하나씩 추가될수록 10밧씩 추가된다. 하지만 이곳은 기본 소스에 밥만 주문하면 40밧(1,6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로컬을 다시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위생

태국의 식당은 입구에 주방이 같이 위치하지만 남부 음식 식당 특성상 입구에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을 바로 파는 방식이라 주방은 홀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바로 조리되는 음식보다 위생이 떨어질 수 있으나 당일 만들어 그날 소진한다고 하니 높은 판매 회전율을 짐작하게 한다.



마무리

이른 점심을 먹다 보니 홀 손님보다 포장해 가는 손님이 절대적이다. 현지인들 대부분 10밧을 주고 메뉴 하나를 포장해 가기도 하고 밥에 소스 하나만 골라 40밧의 저렴한 식사를 한다. 하지만 가격이 싸다고 음식의 품질을 결코 싸지 않다.


카오팟, 팟타이, 똠 양, 꾸웨이띠여우 등 비슷한 모양과 맛에 지겨워질 때쯤 태국 남부 음식 덮밥 까오랏깽을 맛보러 오면 묵었던 입맛이 박하사탕 한 알을 먹는 것처럼 개운해진다. 표준화되지 않고 거친 태국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태국식 덮밥 까오랏깽은 훌륭한 대안이다.


대충 보이는 종류만 20가지 이상, 정해진 메뉴 없이 하루마다 바뀐다고 하니 매일 먹더라도 지겨울 틈 없다. 음식 하나만 요리해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하루에 수십 가지 음식을 아들과 함께 만들고 저렴한 가격에 파는 아름다운 모자 식당. 이 식당의 모든 메뉴는 맛볼 가치가 있어, 한낮 무더위 입맛 없을 때 한 번씩 몰래 아껴두고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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