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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Mar 07. 2020

결국 닮고 말았다.

하루에 몇 번이나 바닥을 닦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와의 놀이에 집중하고 싶은데, 어느새 내 눈길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향해 있다. 한 개 두 개 집어 올려 한 곳에 모아 두고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면 돼.’라고 눈을 돌려보지만, 그것들을 아이들이 밞아 흩어질까 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이가 하는 말에는 건성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아이에게 “엄마 잠깐만 바닥 좀 닦고.”라고 말하고는 걸레를 꺼내 들고 바닥을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닦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바닥 닦기’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강박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닦고 있다. 아이들이 밥 먹다가 떨어뜨린 숟가락을 집어 들다가도 청소를 하고, 아이와 블록 놀이를 하다가도 블록 상자를 뒤집어엎어 닦아야 직성이 풀렸다. 더러운 곳만 얼른 닦으려던 계획은 닦을수록 보이는 먼지들에 집 전체로 확장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기분상 하루 종일 걸레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현관 앞에 놓인 쓰레기통에 걸레의 먼지를 털어내느라 거의 백 번쯤 왔다 갔다 했을 때쯤, 문득, ‘아, 이런 나를 내 아이들이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어지르면서 노는 게 당연한데도 그 옆에 앉아 왜 이렇게 어지르냐며 한숨 쉬며 타박다. 아이들이 만든 종이집을 보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 그 옆에 널브러진 색종이들과 바닥에 덕지덕지 붙은 풀과 테이프들을 치우느라 더 많은 시간을 다. 세 아이가 어지르는 속도는 너무 빨랐고,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청소와 씨름다. 제 풀에 지쳐 화도 내고 소리도 질렀다. 힘들다, 지친다, 끝이 없다.. 입에 달고 다니며 걸레질을 했다. 한숨을 내쉬며 ‘제발 가지고 놀았으면 제자리에 둬라’부터 ‘엄마가 니들 시녀냐.’까지 잔소리 레퍼토리는 끝이 없었다.


아이들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들을 리 없었다. 치워도 치워도 다시 어질러지는 공간에 질려서, 막내를 이불 위에 눕히고 나도 같이 벌러덩 누워 버렸다. 이가 졸졸 따라 들어와서는 천진한 얼굴로 "엄마, 왜 힘들어?"라고 물었고, 나는 그 질문조차 짜증스러워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그럼 힘들지 안 힘들겠어? 집 치우다 늙어 죽겠다!"라고 소리 질렀다.


아들의 풀 죽은 어깨와  불안한 눈빛안 봐도 비디오였다. 잠시 동안 내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아이는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장난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레미콘 자동차 놀이를 하느라 방바닥에 쏟아져 있던 검은콩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나하나 집어서 병에 넣으며 ‘하나, 둘, 셋, 넷..’ 하고 숫자를 헤아렸다. 백 개도 넘어 보이는 그 콩을 줍느라 아이는 바닥에 쪼그려 무릎으로 기어 다녔다. “엄마가 좋아하겠지?”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울고 싶어졌다.

청소 때문에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윽박지르고.

그깟 청소가 뭐라고.

스스로 깨우쳐가고 배워가기를 바랐지, 내 눈치 보기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시녀처럼 사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싫다 진짜." 자책하며 돌아본 나의 모습에서 친정 엄마가 보였다.



친정엄마가 그랬다. 집에 먼지가 너무 많아서 살 수가 없다고. 엄마야말로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청소 강박이 제일 심한 사람이다. 하루 종일 걸레를 옆에 두고 방을 닦고 닦고 또 닦았다. 선반은 물론 화초에도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걸레질을 하고 심지어 창틀도 매일 닦았다. 세수와 양치를 하면서 화장실을 청소했고, 빨래를 돌리고 나서 세탁실을 닦았다. 나에게는 제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내가 돌아다닐 때마다 머리카락이 떨어진다나 뭐라나. 집을 치우고 정리하느라 피곤한 엄마는 늘 지쳐 있었고, 그 때문인지 우리에게 가시가 돋아 있었다.


그 모습을 지금의 내가 꼭 닮아 있다. 하지 말라면 꼭 하고, 배우지 말라면 더 빨리 배운다더니, 내가 그 짝이다.

하루 종일 걸레를 들고 다니며 바닥을 닦으면서 나에게 어지르지 마라 타박하던, 내 눈보다 바닥의 먼지에 더 많은 시선을 두던, 늘 지치고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던 친정 엄마를 내가 꼭 빼닮아 있었다. 그 모습만은 닮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닮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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