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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Mar 10. 2020

그 엄마에 그 딸이지!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묘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아주 짧고 미묘해서 곱씹지 않으면 금세 잊혀진다. 시어머니가 시누이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 맞장구를 치며 들어주다가도 "며느리랑 딸이랑 싸우면 딸 편드는 게 당연하지."라고 심드렁하게 말하거나, 나의 아들딸과 영상통화를 할 때 "엄마 속 썩이지 말아라. 할머니 딸 힘들게 하지 말어, 응?"하고 훅 치고 들어올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워낙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엄마와 딸이라서 그런지 저런 딱딱한 표현에도 마음이 찌릿한다.

첫 번째 출산은 유도분만에 실패해 이틀 고생 끝에 제왕절개를 해야 했다. 질식 분만에 미련이 남은 나는 두 번째 출산은 꼭 브이백으로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고, 아기가 주수보다 커서 40주 0일 전에는 분만을 해야 브이백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사 소견에 따라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남편은 예정된 분만일 일주일 전부터 휴가를 내서 출산에 대비했지만 결국 진통은 40주 0일이 되어서도 오지 않았고 촉진제를 맞으며 씨름했지만 자궁문이 열리지 않아 또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별 탈 없이 출산은 했지만, 남편은 미리 쓴 출산휴가 덕에 아이를 낳은 지 이틀 만에 출근해야 했고 엄마에게 바통을 넘겼다.

군인인 남편은 주말에나 상부에 보고하고 집에 올 수 있어서, 엄마와 그때부터 이 주 정도를 함께 했다. 나는 엄마 아빠 없이 있어야 할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기어코 조리원에 가지 않았고, 엄마는 내 병원 수발을 들다가 집에 와서는 나는 물론 나의 아이들까지 돌봐야 했다. 엄마는 첫째, 둘째 때문에 쉬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워 잠시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짬이 없었다. 엄마는 낮에는 산후도우미에게, 밤에는 자신에게 막내를 맡기고 쉬라며 극구 나를 안방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도 말은 곱지 않았다.
"조리원에 가라니까는 안 가서 사람들을 다 고생시키고 난리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으이그, 저 고집불통! 나중에 아프다고 하기만 해 봐라!"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타박하는 말을 들으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아, 좀 냅둬!"라며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그날도 그랬다. 만류하는 엄마를 뒤로 하고, 기어이 엄마하고 목욕을 해야겠다는 첫째와 둘째를 씻기고 나서 옷이 젖은 채로 아이들을 재우려고 같이 누웠는데 갑자기 발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전기가 찌르르 흐르더니 미친 듯이 오한이 들었다. 이가 딱딱 부딪치고 몸이 벌벌 떨렸다. 옷을 급히 갈아입고 수면 양말을 두 개 신고 양털 후드 집업까지 뒤집어썼는데도 추웠다. 혼자 둘째를 끌어안고 아이의 체온으로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고 했지만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덜덜덜 떨며 거실에서 막내를 재우고 있는 엄마에게 갔다.
"엄마, 너무 추워. 왜 이러지?"
오들오들 떨면서 발 끝까지 오그라드는 나를 보더니 엄마는 깜짝 놀라는 듯했지만, 이내 뜨겁게 달군 수건 몇 장을 가져와서 나를 덮어주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왔다. "있어보고 못 견디겠으면 다시 불러라. 막내 봐야 해서 거실에 가 있을게."
그게 전부였다. 괜찮냐는 물음 한 번 없이.

다행히 나는 이내 괜찮아졌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고 남편이 왔다. 엄마는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을 쏟아냈다.
"쟤가 어제 많이 아팠다. 죽다 살아났어. 무서워서 혼났네. 얼른 병원 데리고 가봐."
의외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정작 어제는 별 반응 없더니?"라고 하자, "내가 놀라면 너 더 당황할 거 아냐. 아이 셋 데리고 다 같이 119 타고 갈 수도 없고."라는 엄마의 대답. 순간 마음이 찌릿, 뭉클해졌다.

그런데, 역시나. 그 순간은 너무 짧다. 그 날 이후에도 엄마가 시어머니와 바통 터치하기 전까지 사사건건 얼마나 많이 서로 날을 세우고 욕을 퍼붓고 신경전을 펼쳤는지! 엄마가 집에 돌아가는 날이 되어서야 아이 셋만 집에 둘 수도, 모두 데리고 나갈 수도 없어서 집 문 앞에서 배웅하고 창문으로 엄마 뒷모습을 좇으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엄마는 홀로 택시를 타고, 4시간 버스를 타고, 또 택시를 타서야 집에 도착했단다. "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버스에서 한 번을 안 깨고 잤다. 아이고, 두 번 다시 못 한다. 이제 나 부르지 마라."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고생했다는 말 대신 "엄마 잔소리 무서워서 다신 안 불러."라고 대답하는 우리만큼 무뚝뚝한 모녀가 또 있을까.

그리고 일주일 후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산후보약 한 첩과 꿀에 잰 마늘 두 통. 엄마의 사랑 표현은 그렇게 늘 훅 들어온다.

<출처 : unsplash.com/photos/yiU8G1K8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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