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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Mar 15. 2020

아이들은 동생을 원했던 적이 없었다.

외출 한 번 없이, 오로지 집 안에서만 세 아이들과 복작대며 생활한 지 3주가 지나고 있다. 처음 며칠은 할 만 했고 그다음 며칠은 힘들었고 또 그다음 며칠은 미칠 것 같더니 요 며칠 동안은 엄마력이 조금 상승했는지 관성처럼 하루가 흘러간다. '이대로 쭉 가정 보육해도 할 만하겠는데?' 하는 자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고, 아이들이 서로 자기와 놀자고 어깨를 흔들며 징징대도 이불 뒤집어쓰고 홀로 낮잠 자는 쿨함이 뿜뿜하기도 한다. (물론, 개학까지는 아직도 1주 넘게 남았다는 건 안 비밀. 그 개학도 연장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는 것도 안 비밀. 나 살려!)

그럼에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아이들을 불러놓고 야단을 칠 일이 생긴다. 특히 막내가 첫째와 둘째 놀이에 끼어들었다든지, 책을 찢었다든지 하는 일로 소리 지르며 짜증을 낼 때, 첫째와 둘째가 서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꼬투리 잡다가 결국 울면서 "엄마~"하며 고자질하러 왔을 때, 그리고 어질러진 장난감과 책 때문에 셋 중 한 명이 다쳤을 때에는 어김없이 내 언성이 높아진다. 매서운 눈초리로 아이들을 후려 잡고 뾰족한 말로 아이들의 마음을 후벼 파놓는다. 그 걸로도 끝나지 않으면 우리 집 공식 맴매인 노랑 옷걸이를 가져다 놓고 바닥을 때리면서 복식호흡으로 소리를 끌어올려 화를 내기도 한다. 울고 불며 매달리거나 그러지도 못해서 기죽어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내가 미친년이지.' 하는 후회와 반성이 절로 들지만, 또 비슷한 상황이 되면 나는 어느새 미간이 좁아지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오늘은 대체적으로 일상이 순조로웠다. 아침, 점심 먹이는 전쟁도 없었고 텔레비전 보여달라는 떼 부림도 없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우당탕탕 뛰어놀다가 엉뚱한 이유로 싸웠다가 또 금세 킬킬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주 좋았다. 일은 늦은 오후에 터졌다. 첫째 아이는 나무블록으로 집을 만들고 둘째 아이는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이제 11개월이 되어 가는 막내는 알록달록한 나무블록도, 퍼즐도 마음에 들었는지 순식간에 나무집을 부수고 퍼즐을 휘저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고 잠시 집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는 둘 다 짜증을 내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속상해서 어떡해. 아기가 아직 몰라서 그래. 같이 놀자고 그런 건데 다 망쳐버렸네. 다시 하자. 다시 하면 되지. 응?"하고 달래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한참을 다독여봤지만 아이들의 짜증과 울음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슬슬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아이를 달랜다는 말이 점점 훈계와 한탄으로 변해갔다.
"동생이 더 중요해, 장난감이 더 중요해! 다시 만들면 되지 지금 몇 분째 짜증이야!"
"하아, 그만 울어. 계속 듣고 있으려니 엄마도 힘들고 기분이 나빠진다. 에휴."

계속 붙어있다간 단전에서 끌어낸 목소리로 애를 혼낼 것 같아 막내를 둘러업고는 부엌으로 피했다. 별 일 아닌데 울고 부는 아이들이 짜증스러웠고, 그 별 일 아닌 일에 아이들에게 화낸 스스로가 싫었다. 마음을 좀 진정시켜 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동생을 원했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

셋째를 낳고 싶어 한 건 나였다. 내가 셋째 아이를 원했을 때, 남편은 '굳이?'라는 반응이었고 아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선택권이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갑자기 뚝 떨어진 동생이었다. 뱃속에 동생이 있어서 힘들다는 이유로 언젠가부터 엄마가 많이 안아주지 않았고, 동생을 낳으러 갔다며 며칠 동안 엄마가 집에 오지 않았고, 처음 보는 동생과 함께 집에 돌아온 엄마는 동생을 돌보느라 예전처럼 놀아주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막내는 작고 귀엽고 우리 가족이라니까 좋기는 한데, 왠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빼앗긴 것만 같고 자꾸 뭔가 양보하고 이해해주기만 하라니까 조금은 싫기도 한 존재가 아닐까. 그런데도 엄마 아빠는 자꾸 동생 편만 드니, 얼마나 억울하고 짜증 날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아이가 하나였으면 사랑을 담뿍 받으며 자랐을 텐데' 싶은 생각에 마음이 짠해졌다. 내 욕심에 셋을 낳아놓고는 내 체력이 부족해서, 내 인내심이 부족해서, 내 지혜가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무거웠다. 나중에는 아이들 셋이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아이들의 우애가 돈독하려면 부모의 지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어깨마저 무겁기까지 하다.

어렵다, 부모 됨이.

"첫째는 쌍둥이라 그렇다 치지만 셋째까지? 어쩌려고 그래?" 라던 회사 선배의 말이,

"둘로는 만족이 안 돼?"라던 지인의 말이 이제야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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