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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Mar 16. 2020

엄마의 결정적 한 마디

1년 전, 친정엄마가 이사를 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인가에 이사한 후로 쭉 살던 집이었다. 이사를 결정하기 몇 년 전부터 엄마는 집이 지겹다고 노래를 불렀다. 걸레로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20년 넘는 시간의 흔적을 모두 닦아낼 수는 없었다. 사는 중간 도배도 하고 화장실과 부엌도 리모델링하고 가구와 가전도 몇 번 바꿔가며 말끔하게 사려고 애썼지만, 유행 따라 바꾼 벽지는 누래지고 냉장고는 딱딱 소리를 내고 세탁기는 바닥에 녹이 슬었다.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 엄마는 새로운 가구와 가전제품들을 발이 닳도록 알아보고 다녔다. 인근 가구점은 물론이고 차로 한두 시간 운전해서 가야 하는 곳까지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큰돈 나가는 것들만 바꾸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불, 그릇, 심지어 수저 세트까지도 모두 새것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정말 오랜만에 하는 이사이니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전부 새 물건으로 들이고 싶은 마음이겠거니 이해가 되면서도 어쩐지 그런 엄마가 조금 못마땅했다. 삐걱거리는 가구나 고장 직전인 가전은 그렇다 치지만 멀쩡한 물건까지 전부 새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괜한 돈 낭비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휴일을 잊은 채 일하시는, 은퇴가 코앞에 있는 아빠의 굽은 어깨가 엄마의 들뜬 표정 위로 어른거렸다.

신나게 이사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입을 싸매고 있었지만, 매일 엄마의 구매 희망 리스트들을 비교 견적 내줘야 하는 일은 머리도 마음도 편치 않은 일이었다. 특히 이미 마음을 정해놓고 어떤 것이 더 낫냐 물어볼 때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잘 참았다. 아빠가 당신은 이사 가기 싫다고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결국 내 입의 봉인이 풀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로 살 거냐고, 쓸만한 것들인데 아깝다고, 땅 파면 돈이 나오냐고 툴툴거렸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침대 한편에 앉아 뜨개질을 하던 엄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좋은 거 사야지, 이번이 마지막일 텐데. 내가 죽기 전에 새 거 살 일이 또 있겠냐?"

말문이 턱 막혔다. 엄마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내 앞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쿵 떨어졌다.
아니지, 엄마는 이제 곧 예순이다. 백 세도 모자라, 백십, 백이십 세 세상인데, 예순이면 그의 절반일 뿐인데 죽음이 머지않았기는 무슨.

그런데도 엄마의 죽음은 늘 가깝게 느껴진다. "죽을 때 되면 다 가는 거지, 뭐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라는 말을 늘 달고 다니는 엄마라서 일까.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것이 전부였고, 대학교 때에는 방학 때나 되어야 만날 수 있었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시집을 가서 1년에 한두 번 명절에나 겨우 만나게 되는 엄마라서 일까. 앞으로도 명절 때만 만난다면,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100세에 돌아가신다고 해도 80번 남았다. 1년 365일 중 1/4도 안 되는 일수이다. 그마저도 깎아먹는 일들이 부지기수겠지, 나 살기 바쁠 테니까.

엄마의 한 마디에 내 입에는 다시 자물쇠가 채워졌다. 최대한 좋은 걸로, 최대한 엄마 마음에 꼭 드는 걸로 손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아주 생뚱맞은, 엄청나게 큰 그네 의자가 거실 한편에 떡 하니 자리 잡았고 아빠는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끌끌 찼지만 엄마가 그 의자에 앉아 행복해하니 그걸로 되었다. (돌이켜보니 아빠께 죄송하다. 아빠는 무엇에 행복해하실까.)

엄마만 행복하다면, 뭐든 괜찮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 괜찮겠다.


둥근 그네 의자에 앉아 아이처럼 흔들거리며 "참 좋다." 하던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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