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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Jun 08. 2020

작고 고소한 튀밥 한 바가지의 추억

집에서 노는 것이 지겨워 몸서리를 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앞 마트에 과자를 사러 나섰다. 언제 봄이 왔었는지도 모르게 가고 벌써 여름이다. 봄의 푸르름과는 달리 여름의 색은 싱그러웠고 햇빛은 밝다 못해 눈이 부셨다. 양 손에 아이들 손을 잡고 장난스레 휘휘 저으니 까르륵 웃음이 터졌다. 100m 앞에 있는 마트에 도착하기까지 관문이 많다. 인도 곳곳에 놓인 벤치에도 전부 한 번씩 앉아보고, 지나가는 개미와 콩벌레를 관찰하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들도 냄새고,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를 북극곰이 먹으면 어쩌냐는 질문폭탄을 이어가느라 바쁘다. 오늘은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모퉁이에 뻥튀기 과자를 파는 트럭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과자들에 눈이 팔렸다.

"이건 쌀로 만든 과자야. 튀밥. 트럭 위에 있는 저 기계 보여? 저기에 쌀을 넣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뜨겁게 해 주면 쌀이 뻥 하고 부풀어. 그럼 이렇게 되는 거야."

이건 옥수수, 이건 떡, 이건 글쎄, 엄마도 잘 모르겠다, 하하.

아이들은 '튀밥'이라는 단어가 웃겼는지 몇 번이고 튀밥, 튀밥 거리며 큭큭거렸다. 한 봉지 사줄까 생각하다가 이내 그만 가자며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믿을 만한 쌀일까, 저 봉지에는 얼마 동안 들어있었을까 의심만 가득한 못된 마음이 스물거렸다. 아저씨에게 쌀 받아서 직접 튀기는 건 안 하시느냐 물을까 하다가 관두었다. 기계에는 이미 먼지가 소복했다. 내 추억도 거무티티한 먼지만큼 오랜 옛날 것 같이 느껴져 조금 울적해졌다.

동시에 다행이었다. 꺼내어볼 일 없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 아직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나만큼 자라면 저 뻥튀기 기계도 박물관에 가있게 될까? 민속촌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엿가락처럼 어울리는 듯 겉도는 듯하게 될까?




엄마는 가끔 떡국떡을 널찍한 쟁반에 펼쳐 바짝 말렸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동네에 오는 뻥튀기 아저씨한테서 떡을 튀겨오려고 미리부터 준비하는 것이다. 하얗게 줄지어 널어져 있는 떡을 보면 설레었다. 바삭하고 고소하고 조금은 달기도 한 뻥튀기를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뻥튀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뻥튀기 아저씨가 신기한 기계를 들고 와서 아파트 입구에 펼쳐 놓으면 동네 아줌마들이 쌀이나 떡, 때로는 검은콩 따위의 것들을 봉지 같은데 담아 왔다. 아저씨가 그것을 받아 까맣고 길쭉한 기계에 넣고 빙글빙글 돌리면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 나 포함해서 -은 언제 뻥 소리가 날지 몰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귀를 꽉 틀어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저씨가 "뻥이요~"하고 외치면  진짜 뻥! 소리와 함께 하얗고 뜨거운 튀밥이 소쿠리에 쏟아져 나왔다. 가져왔던 것보다 훨씬 많고 가벼워진 뻥튀기를 받아 들고도 다른 사람들의 뻥튀기가 다 만들어질 때까지 보고 또 보고! 언제 보아도 심장이 콩닥콩닥 해지는, 즐거운 쇼였다.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던 동네에는 5일장이 열렸다. 장날이 되면 한 번씩 할머니는 하얀 쌀과 꼬들꼬들 잘 말린 떡국떡을 쟁반에 올리고 보자기로 야무지게 싸맸다. 그리고 머리에는 천으로 만든 똬리를 올려 보자기에 싼 쌀과 떡국떡을 이었다. 당신 머리보다 큰 짐을 이고도 휘적휘적 걷는 할머니 뒤를, 나는 세발자전거 타고 열심히 뒤따랐다. 읍내 시장 구석진 곳에 뻥튀기 집이 있었다. 작은 백열등 하나뿐이라 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에서는 까만 기계가 쉭쉭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그 앞에는 자기 쌀이 얼른 튀밥이 되어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 바글거렸다. 가져온 쌀과 떡국떡을 분유통만 한 깡통에 부어 놓고 기다리면 끝! 사전 예고도 없이 "뻥!" 소리가 나면 심장이 땅바닥에 떨어진 듯 놀랐다가 곧이어 웃음보가 터져 나는 연신 깔깔거렸고, 할머니도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뻥튀기 소리가 재미있었을까, 할머니의 웃음이 좋았을까. 할머니가 떡볶이 사준다고 꼬시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하루 해가 넘어갈 때까지 뻥튀기 가게를 나서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쌀을 튀기고 떡볶이를 먹고 장까지 보고 나면 해가 뉘엿뉘엿 기울었다. 할머니는 보자기 가득 장 본 것들을 싸매서 머리에 다시 이었고 나는 나보다 큰 튀밥 봉지를 세발자전거 뒷칸에 실었다. 얼른 집에 가서 튀밥을 먹을 욕심에 이번에는 내가 앞장섰다. 튀밥에 가려 뒤따라오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나는 매번 자전거를 돌려 할머니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해야 했다. 할머니는 뒤뚱거리며 걸으면서도 걱정 말고 어서 가라고 연신 손을 휘저었다.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엉덩이 붙일 새 없이 바로 부엌으로 가서 빨간 바가지를 깨끗이 씻어 내오셨고, 나는 바가지 가득 아직도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튀밥을 퍼냈다. 처음에는 한 손으로 주워 먹다가 나중에는 양손도 모라자 바가지에 얼굴을 파묻고 퍼먹었다. 그러다 콧구멍에 튀밥이 들어가기도 하고 입에 넣은 채로 말이라도 할라 치면 튀밥이 우수수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재미있고 웃기기만 했다.

 



간식이 흔치 않던 때라서 그랬을까. 그때의 튀밥 맛이 아직도 혓바닥 끝에 생생하다. 어린 나를 데리고 하루 종일 시장을 누빈 탓에 지쳤을 텐데도 얼굴 찌푸린 기억 하나 남기지 않은 할머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뻥튀기 한 봉지에도 몇 날 며칠을 행복하던 기억.

쌀 튀밥 사이에 숨겨진 떡 뻥을 찾아내던 소소한 재미.

그립고 그립다.

고작 튀밥 하나에도 그때 그 시절이 이만큼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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