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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Jun 02. 2020

뜨끈한 시래기 된장국 한 사발, 엄마 생각 조금.

두 번째 임신인데도 입덧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물건이 냄새를 풍기는 것만 같았다. 냉장고만 쳐다 보아도 김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속이 울렁거리고, 내 입 속의 침 냄새마저 토할 것 같았다. 혼자 소주를 병나발 불기라도 한 다음날처럼 메스꺼운 기분은 뭐라도 입에 넣고 있어야 조금 진정되었다. 사탕이나 비스킷, 콜라 따위의 것들이었다. 배 속 아기에게 미안하면서도 이거라도 먹어야 제정신으로 일을 하겠다 싶어서 거의 온종일 입을 비우지 않고 쑤셔 넣었다. 회의를 하면서도 양해를 구하고 사탕을 물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러지 않으면 옆사람 컵에서 나는 물 냄새에도 토악질을 할 판이었다.


남들은 임신하면 먹고 싶은 것이 넘쳐난다는데, 나는 그런 것도 없었다. 엄마 음식을 떠올려 봐도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없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 입덧으로 신경은 예민해져 있고 뱃속 아기 신경 쓰랴, 첫째, 둘째 쌍둥이 돌보랴, 출근해서 일하랴, 나는 지쳐 있었다. 그 와중에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작정 쉬고 싶었다. 타지에서 근무하는 남편도 오지 않는 명절에 시댁에 가서 기름 냄새 맡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시부모님은 친정에 가겠다는 나를 이해해 주셨다.


미아방지 끈이 달린 가방을 멘 아이들 둘과 임산부 하나. 불룩한 배 양쪽으로 크로스로 맨 짐 가방. 친정까지 약 4시간. 기차에서 지겹다며 온몸을 비트는 아이들을 달래며 정신 나가기 직전에 겨우 도착했건만 집안 가득한 생선 말리는 냄새에 당장 다시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아빠는 입덧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는 딸을 위해 평소에 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구이를 해주고 싶어서 직접 낚시를 다녀오셨고, 엄마는 그 고기를 직접 손질해서 생선구이를 해 주시려고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고 감사하기도 하지만, 나는 정말 집에 앉아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멀리하는 것마냥 얼굴이 허옇게 질려 코를 틀어막고 입으로 숨 쉬는 나를 보고 엄마가 생선을 부랴부랴 치웠지만 이미 코 끝에 냄새가 배었는지 숨 쉴 때마다 속이 뒤집어지려고 했다.


곤욕이었다. 쉬고 싶어 왔건만, 아이들은 신이 나서, 나는 신선한 공기를 찾아서 동네를 걷고 또 걸었다. 나는 못 먹어도 아이들은 밥을 먹여야 하니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 근처에서부터 음식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된장국을 끓였다. 제발 아무것도 요리하지 말아 달라 부탁했건만, 된장국이라니! 나는 문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짜증을 냈다.


“생선에 이어 이번에는 된장국이야? 숨도 못 쉬겠다니까!”
“이리 와서 앉아봐 봐. 시래기 된장국이야. 청양고추 넣어서 매콤하게 맛있어. 먹어 봐.”
“애들도 먹어야 하는데 무슨 청양고추까지 넣었어. 나 안 먹는다니까 엄마도 진짜!”


오만상을 찌푸리고 투덜거리는 나를 식탁에 끌어와 앉힌 엄마는 하얀 쌀밥과 시래기 된장국을 한가득 퍼서 상에 올려주었다. 보초 서듯 내 앞에 서서 내 숟가락과 입만 보고 있는 엄마 눈초리에 심호흡 한번 하며 깨작, 숟가락을 들었다. 입술만 살짝 적셔서 혓바닥으로 날름 핥아 보았더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번에는 한 숟가락 포옥 떠서 호록 마셔 보았다. 입 안에 구수한 맛이 퍼지더니 끝 맛은 알싸했다. 입맛이 확 돌았다. 얼마 만에 도는 식욕이었는지 모른다. 앉은자리에서 밥 한 그릇과 시래기 된장국 한 사발을 남김없이 퍼먹었다.


“와, 엄마, 대박. 더 먹어도 돼? 밥 더 있어?”
“있지 그럼. 그렇게 잘 먹어야지, 안 그럼 뱃속 아기한테 영양분 다 뺏기고 너 뼛물 빠진다. 먹을 수 있는 걸 찾으려는 노력도 안 하고 그럼 못 써. 사탕이나 콜라 이런 게 뭐 좋다고…..”
엄마는 안도감이 가득한 얼굴로 머슴밥과 뜨끈한 된장국을 내왔고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반찬 삼아 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엄마는 그 날부터 내가 갈 때까지 사골 우려내는 냄비 가득 시래기 된장국을 끓였다. 아빠가 이제는 된장국 냄새만 맡아도 지겨워서 속이 안 좋다고 할 정도였다.
집에 돌아가기 전날 엄마는 시래기를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 한 주먹 되는 양만큼 비닐팩에 담아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다. 내가 돌아가면 바로 먹을 수 있게 미리 택배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부엌에 붙박이마냥 서서 저녁 내 시래기와 씨름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콧등이 시큰했다.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릴 때 엄마는 저런 뒷모습을 하고 있구나.
누구보다 가깝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40년이 가깝게 엄마를 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생소한 모습이 있다니 미안했다. 그런 마음이 들었는데도 감사하다는 말 대신 ‘뭘 이렇게 많이 만들어, 엄마 힘들게.’라고 툴툴거린 무뚝뚝한 딸이라서 죄송했다.
 
집에 돌아온 다음날, 엄마가 부친 택배가 도착했다. 열어 보니, 시래기뿐만이 아니었다. 곡물 과자와 사탕, 고무장갑에 스킨과 로션까지 한 상자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택배 잘 받았다고 연락하니 또 한바탕 엄마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몸에 좋은 것 먹어라, 얼굴에 뭐라도 좀 발라라,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해라, 애들만 보지 말고 너를 좀 아껴라 등등 잔소리는 쉬이 끝나질 않았다.

엄마가 정성스레 무친 시래기에 물을 한 컵 붓고 팔팔 끓였다. 기분 좋은 된장 냄새가 집안을 채웠다. 뜨끈한 밥을 국에 말아 후루룩 먹었다. 2% 부족한 맛이다. 물만 부어 끓였는데도 엄마가 끓인 된장국 맛이 아니었다. 엄마만의 비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같이 밥을 먹던 아이가 계란 후라이를 먹으며 말했다.
“엄마가 해준 게 제일 맛있어. 엄마 최고!”
겨우 계란 후라이인데, 내가 한 거라곤 기름 두르고 소금 친 것뿐인데, 남들이 한 계란 후라이보다 맛있다 없다 할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아이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생각났다. “니 새끼 귀하 듯, 나는 내 새끼가 젤로 귀하다.”는 엄마의 말이.


내 자식이 잘 먹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뿍 담는 것. 그것이 바로 엄마들의, 엄마만의 요리 비법일 테지.
엄마가 금세, 매번, 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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