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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May 25. 2020

하얀 쌀밥, 김에 싸서, 간장 콕

짭조름한 간장을 좁다란 종지에 가득 따르고 참기름 한 방울, 고소한 통깨 듬뿍 뿌려 상에 올린다. 그 옆에는 가스레인지의 퍼런 불에 슥슥 구워 파릇해진 김을 손바닥만 하게 잘라서 놓는다. 막 지은 하얀 밥을 한 숟갈 크게 떠서 김에 척 올리고 돌돌 말아 간장에 콕 찍어 먹으면 그야말로 짭짤 고소, 밥도둑의 원조이다.



어렸을 때는 밥 먹는 게 참 귀찮았다. 세상에는 밥 말고도 재미있고 좋은 것들이 널려 있었다. 특히 할머니 집은 더 그랬다. 어두컴컴 널찍한 광에도, 먼지 소복한 다락 서랍에도, 메주 냄새 폴폴 나는 끝방에도 신기한 물건은 넘쳐났다. 아빠가 학생 때 받아온 상장, 엄마가 시집와서 무언가를 만들다 남은 뜨개 실과 바늘, 이미 말라서 층이 분리되기 시작한 싸구려 매니큐어까지도 흥미진진한 놀잇감이 되어 주었다.


그런 것들과 노느라 정신이 팔린 내 입에 밥 한 술 넣는 것이 쉬웠을 리 없다. 할머니는 밥을 김에 싸서 밥상 가장자리를 따라 놓았고, 나는 놀다가 그것들을 하나씩 집어 간장에 콕 찍어 먹었다. 이 때다 싶어 할머니는 반찬 가득 한 숟갈 떠서 내 입 앞에 가져다주었고, 밥도둑에 이미 입안을 뺏긴 나는 할머니가 떠주는 반찬에 제비 새끼마냥 입이 벌어지곤 했다. 그 입이 야무지고 이쁘다며 할머니의 입도 귀에 걸렸고, ‘내 새끼, 잘 먹네.’하며 내 엉덩이를 연신 두드리는 할머니 손바닥 박자에 맞춰 밥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할머니 집에서 밥상은 늘 내가 중심이었다. 할머니가 결혼해서 어렵고도 늦게 낳은 큰 아들의 첫째 딸. 장군이 되어 집안을 일으킬 사주를 타고 난 첫 손주. 넉넉하지 않은 형편 탓에 먹고 싶다는 것을 푸짐하게 차려내지는 못했지만 참기름이 간장만큼 둘러진 간장 종지는 늘 밥상에, 그것도 내 밥그릇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간장 종지 위에 소복하게 뿌려진 참깨를 숟가락으로 삭 긁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처음에는 짰다가 씹을수록 넉넉하게 퍼지는 고소함. 참으로 별미였다. 나는 그것을 좋아했고, 그렇게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당연하게 여겨졌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참깨뿐만 아니라 밥상 위의 반찬을 모두 털어 먹어도 복스럽다 칭찬할 뿐이었다.


친가에서는 내가 첫 손주였지만, 외가에서는 거의 막내였다. 엄마는 6남매 중 막내였다. 엄마의 바로 위 언니, 그러니까 나에게는 막내 이모네 식구는 자그마치 일곱이었다. 읍내에서 양복점을 하던 이모부와 이모, 아들을 낳기 위해 줄줄이 낳은 딸이 넷, 그리고 나보다 어린 막내아들까지. 외가에서 나와 가장 나이가 비슷했던 사촌언니들은 나와 곧잘 놓아주었다. 이모네 집에서 놀다가 하룻밤 자게 된 다음 날 아침, 그 집 밥상에도 간장과 참기름이 가득 담긴 종지가 올랐다. 나는 늘 그래 왔듯 첫 술 반찬으로 간장 종지 위의 누런 참깨를 숟가락 가득 떠서 입에 넣었다. 언제 먹어도 밥을 부르는 짭조름하고 고소한 그 맛. 흡족한 미소와 함께 두 번째 숟가락이 참깨를 향했을 때였다.
“탁!”
누군가가 젓가락으로 막 간장 종지에 닿으려는 내 숟가락을 쳐냈다. 깜짝 놀라 내 숟가락을 쳐낸 젓가락을 따라가 보니, 이모부가 잔뜩 미간을 구긴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 건지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이모부가 간장 종지를 끌어다가 사촌 동생 앞에 두었다. 이모부의 막내아들, 위에 누나 넷을 둔 그 집의 독자는 뿌듯한 표정으로 간장을 한 숟갈 떠서 밥에 슥슥 비벼 한 입 크게 떠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조금 서러웠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갈 곳 잃은 나의 숟가락은 흰 밥만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었고, 식사를 마친 이모부는 내 밥이 남아 있는데도 아침상을 물렸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한 집안의 독자와 처제의 딸의 입은 간장 한 숟갈에도 우선순위가 갈렸다. 조금은 서럽기도, 민망하기도 했던 그 날의 아침은, 늘 귀한 대접받던 내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날로 남았다.


십수 년이 지나서야 그 날의 기억을 들은 엄마는 이모부가 그렇게 속좁게 굴었냐며 성을 내었지만, 나도 내 새끼를 키우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모부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 내 아이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 일이 그 누구보다, 그리고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한 상 가득 찬을 차려 놓고도 아이 앞에서는 기미 상궁이 된 것 마냥 아이의 입만 보고 있기 일쑤이고, 아이들이 밥을 잘 먹어주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잘 먹지 않으면 씹다 뱉은 껌 마냥 쭈그러들기까지 하니까 이해하다 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모부가 간장 한 숟가락도 나눠먹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작은 간장 종지 위에 뿌려진 참깨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넉넉함을 가졌더라면 더 좋았을 테고 말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그 후로 남들이 다 먹고 싶어 하는 반찬은 참깨 한 알이라도 나눠먹어야 한다는 '밥상 눈치'가 생겼으니 그것만으로도 귀한 배움이다. 불판 위에 하나 남은 마지막 고기 한 점도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사회적 미덕도 갖추게 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뿐이랴. 나는 내가 우리 집에서만 귀하고 남다를 뿐, 밖에서는 남들과 똑같은, 어떨 때는 누군가에게 남보다 못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오늘따라 밥을 먹지 않겠다 버티는 아이들에게 식탁 가장자리를 따라 김에 싼 밥을 올려놓았다. 참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참깨를 소복하게 올린 간장 종지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그 냄새를 따라 식탁 앞에 모인 아이들의 입에 마른 김에 싼 밥을 간장에 찍어 한 입씩 넣어주며 생각해 본다.


집에서 귀한 대접받고 자라는 만큼 밖에서도 귀한 대접받았으면, 동시에 다른 이들도 귀한 대접할 줄 아는 그릇을 가진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간장 종지를 앞에 두고도 넉넉할 수 있는 마음은 덤으로 가졌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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