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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Jun 15. 2020

고양이를 파양하라고요?

어른 둘, 아이 셋, 고양이 둘.

24평의 집에 7톤이 넘는 짐.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는 숫자.


남편은 새벽같이 출근해서 매일 야근을 한다.

주말에도 토요일 오전과 일요일 오후는 출근을 한다.

5살 쌍둥이와 이제 돌을 갓 지난 막내까지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상이라, 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남편의 임무로 타협했는데 남편의 일과에는 고양이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결국 어느 일부분은 나의 몫이다.


처음 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 데려오기로 했던 때는 내가 시댁에 살고 있을 때였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남편은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시부모님은 결혼한 여자가 혼자 자취를 할 수는 없다며 합가 하자고 하셨다.


남편 없는 시댁 살이.


나중에 시어머님은 본인도 며느리살이를 하셨노라고 말씀하셨지만,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는 며느리가 시부모님과 시누이와 함께 사는 날들이 편했을 리 없다.

어느 날은 신경성 위염이 도져 밤새 아픈 배를 쥐고 방을 데굴데굴 구르며 괴로워하면서도 잠든 시부모님을 깨우지 못해 참고 참았다. 이러다 119 부르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 새벽 6시쯤에 기다시피 방을 나가 안방 앞에서 모기만 한 목소리로 "어머님, 어머님.." 하고 부르며 깨실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만큼 미련했고, 그만큼 어려웠다.


그런 시댁살이가 3년을 채워갈 때 즈음, 더 이상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남편도 없는 집에서 나 혼자 남 같은 가족과 뭐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점잖고 좋은 시부모님이지만 집이 집 같지 않았다.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티브이를 볼 수도 없고. 먹기 싫을 때 건너뛸 수 없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말해야 하는 것들이 버거웠다. 무엇보다 내 편이 없다는 생각이 컸다. 함께 사는 시누이를 통해 보게 되는 은근한 차이, 내 감정과 생각을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내 성격이 한몫했다. 그때 나는 '고양이'를 떠올렸다. '날 기다리는 '고양이'라도 있어야 이 집에 들어오고 싶겠다' 했다. 이미 강아지를 기르고 계신 시부모님과 마찰이 있었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의견을 꺾지 않았다. 기를 쓰고 우겼다. 그렇게 첫째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내 전부였다. 퇴근해서는 내 방에 틀어박혀 내내 고양이와 종알종알거리고 사진 찍고 안고 뒹굴었다. 마냥 좋았다. 내가 아끼는 연필을 잘근잘근 씹어놓아도, 과제해야 하는데 노트북 자판에 앉아 골골 송을 부르고 있어도 다 괜찮고 좋았다.


하지만 고양이가 시부모님과 시누이와의 갈등까지 해결해준 것은 아니었다. 설상가상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미움까지 겹쳐 나는 도망치듯 원룸을 구해 분가했다. 시댁 살이 4년 만이었다.


원룸에서 혼자 사는 삶은 편하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퇴근이 늦는 날이 잦은 만큼 혼자 있는 고양이가 걱정되고 안쓰러웠다. 고민 끝에 둘째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고양이 두 마리와 알콩달콩하면서도 집사 노릇하느라 정신없는 일상 속에 남편과의 관계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지쳐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바로 섰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부부는 난임이었다. 누구에게도 문제가 없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수차례 검사도 해보고 병원도 바꿔보고 한의원에도 가보고 했지만 아예 임신조차 되지 않았다. 씁쓸했지만 고양이 두 마리가 있으니 이제는 괜찮다 했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방법을 찾아보자 했고, 최후의 방법으로 결혼 9년 만에 쌍둥이를 만났다.


9년 만에 만난 손주의 의미는 그 무게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들은 귀한 손주 코 끝이나 입가에 고양이 털이 앉아 있는 꼴을 견디지 못했다. 나 역시 씻어 말려놓은 젖병 위로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며 털을 날리는 것이 못마땅했다. 육아와 살림으로 내 피곤이 쌓여갈수록 내 사랑이었던 고양이는 미운털이 박혔다. 집사 역할까지는 아무래도 무리수였다.


고양이를 더 잘 돌보아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찾으라는 부모님의 압박은 쌍둥이들이 아토피 진단을 받고 나서 정점을 찍었다. 아이들은 사포처럼 건조한 몸 때문에 괴로워했고, 부모님들은 그 원인을 고양이 탓으로 돌렸다. 아니라고 반박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고양이들의 거처를 베란다로 한정지 었다. 캣타워를 베란다로 옮기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수없이 되뇌었다. 고양이들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집 안에 들어앉아 초록 눈을 반짝이며 무심히 지켜볼 뿐이었다.


 남편이 지방 발령받으면 남편이 데려가서 숙소에서 키웠고 합가 하게 되면 베란다에 짐을 풀었다. 그러는 동안 쌍둥이들은 5살이 되었고, 또 한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막내 역시 아토피 당첨이다. 이번에는 쌍둥이보다 심해서 팔과 다리, 배와 엉덩이에는 피딱지가 가실 날 없고 아이는 긁느라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


주위에서는 고양이 알러지 검사를 해보라고 한다. 혹자는 고양이도 아이도 고생이니 고양이를 파양하라고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입을 다문다.


고양이 알러지일까 봐 검사하지 않았다. 정말로 고양이 알러지가 맞다면,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아토피로 괴로운 것이라면 정말로 고양이를 파양 하고 싶을까 봐 두렵다.


아토피인 아이도, 베란다로 내몰린 고양이도 고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도 내 가족이다.  여러 명인 아이들 중 어느 한 둘이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고 아프게 한다 해서 그 한 둘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고양이가 동물이라고 해서 그럴 수는 없다. 내가 마음이 외로웠던 때에 유일한 위로를 건넸던 고양이들을 내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버리거나 떠나보낼 수 없다.


내 욕심일 수도 있다.

미련한 것일 수도 있다.

나보다 더 잘 돌보아 줄 수 있는 다른 가족을 찾아주는 것이 고양이들에게도 더 좋을 수도 있다.

의견을 물을 수 있다면 진심으로 고양이에게 묻고 싶다. 이대로 함께 사는 것이 좋은지, 다른 가족에게 가고 싶은지.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최대한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더 자주 고양이 털 치우기.

더 더지기 전에 방 안에 고양이 공간 마련하기.

집 물건을 줄여 청소하기 쉽게 만들기.

아토피 개선을 위해 식습관 바꾸기.

연고와 로션 구비해두기.

고양이도 아이들도 더 청결하게 하기.


나의 미련한 욕심이 아니길.

나와 함께 하는 삶이 고양이, 너희들에게도 행복한 시간이길.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이 나와 나의 가족들에게도 따듯한 시간이길.


나의 위로이자 쉼이었던 나의 고양이들.

버거워했던 나를 용서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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