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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Jul 06. 2020

엄마, 피해!

마스크 쓰지 않고 산책했습니다.

두 아이를 등원 보내고 나서 막내와 아파트 한 바퀴를 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막내는 이것저것 보는 것마다 다 만져보고 싶고 맛보고 싶어 한다. 말려보지만 아이의 호기심은 왕성하다. 어쩔 수 없이 늘 물티슈와 소독제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의 손을 수시로 닦는다.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느라 바쁜지 오전의 놀이터는 한가하다. 어떨 때는 아파트를 몇 바퀴 돌도록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을 때도 있다. 나도 모르게 오전 산책의 마스크 단속이 느슨해졌다.


어제도 평소와 다름없이 막내와 산책을 했다. 오전 10시도 되지 않았는데도 공기가 후텁지근 더웠다.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고, 마주치더라도 말을 섞는 것은 아니니 괜찮겠지 싶어 마스크를 벗어 손목에 끼웠다.

'아이도 괜찮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도 덥겠지 싶어 마스크를 벗겨 주었다. 아이는 더 신나게 걷고 뛰었다.


놀이터 입구에 들어서자  한 여자아이와 엄마가 보였다. 그 아이는 나를 보고는 뭐라 뭐라 소리치며 제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아서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저 내 아이 뒤꽁무니 따라다니기 급급했다. 여자아이 근처에 왔을 때 그 아이는 울상이 되어 엄마에게 매달리며 소리쳤다.


"엄마, 피해야 해! 마스크 안 쓴 사람이 왔다고!!"


아, 이런.

나는 당혹감에 얼른 손목에 끼운 마스크를 빼서 쓰고 막내에게도 마스크를 씌웠다. 그리고는 여자아이와 엄마를 향해 "미안해, 죄송합니다." 인사했다. 여자아이는 여전히 나를 경계했고, 그 엄마는 무표정한 눈꼬리로 나를 훑었다. 어쩐지 나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졸지에 바이러스 유포자가 된 것 같아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미끄럼틀에 오르려는 막내를 들쳐 안고 서둘러 놀이터를 빠져나갔다.


요즘 같은 때에 마스크를 벗은 내 잘못이었다. 명백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남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래야 했다.


그래도 속상했다. 서글펐다.


언제쯤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언제쯤 이 경계심이 허물어질까.


마스크 끼지 않았던 적이 언제인지,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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