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무자비한 폭격에 가까운 친구의 카톡을 받아내다 어젯밤에는 진심으로 고민에 빠졌다.
남편과 냉전 중인 친구는 외로워했고, 그 마음을 나에게 풀어내는 중이었다. 먹는 것들, 하는 일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새롭게 시작한 취미생활과 운동 등 사소한 하루를 나에게 보고하듯 전달했다. 그런데 친구가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받고 수십만 원짜리 구두와 그보다 더 비싼 가방과 클러치를 선물로 받았으며 그제야 마음이 확 풀렸다는 얘기에 기운이 쭉 빠졌다. 심지어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나쁠 건 또 뭐람.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왜일까.
친구는 기분이 풀렸다는데 나는 왜 기분이 나쁠까.
그동안 나는 최대한 친구의 연락을 실시간으로 받아내려 노력했고 마음이 풀리기를 기다렸다. 친구가 외롭거나 속상할 때면 매번 그래 왔다. 나도 누군가의 사소한 한 마디가 그립고 필요할 때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니까.
그럼에도 친구의 말들이 거슬릴 때가 있다. 알아서 걸러 들으라며 마음 상하는 말들을 쏟아낼 때가 그렇다. 예를 들면, ‘너네 엄마가 배운 사람은 아니잖아’라든가, ‘너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남편이랑 미리 재산 분리해 놔야 해’라는 식의 말들. 팩트 체크하자면 사실이면서, 동시에 사실이 아닌 말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달랠 때에도 내 마음은 괴롭다. 뭔가를 자꾸 사고 소비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내가 지향하는 바와 완전 다르다. 나는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문제를 해결하거나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나의 문제를 규정지어 보려 노력한다. 미쳐 날뛰고 때로는 화병으로 죽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해서 상담을 다니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내가 보는 친구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답답하다. 일시적인 감정의 전환일 뿐, 해결책이 아니다. 뭔가 더 생산적으로 대처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좋겠는데,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신 집이나 자신을 치장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려 하는 것이 아쉽다.
물론 나의 이런 바람이 친구의 말대로 ‘금전적인 부족에서 오는 부러움'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손이 덜덜 떨려 못 살 물건이라도, 돈이 많은 친구에게는 기분 전환하기 딱 좋을 만큼의 물건일 수도 있다. 손에 쥔 물건으로 진짜 힐링이 될 수도 있을게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 방법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친구의 목소리는 진짜로 특유의 쾌활함을 되찾았으니까 그걸로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돈으로 기분을 사는’ 행위로 마음이 풀렸음을 말할 때면 씁쓸하고 그동안 내가 건넨 위로와 조언들이 쓸모없는 것 같기도 해서 좀생이스러운 마음이 들어 어쩐지 기분이 나빠진다.
이런저런 문제를 다 차치하더라도 친구가 매번 비슷한 문제로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 자주 나의 조언을 구하지만 들어주는 것 외에는 내가 딱히 도울 수 있는 것이 없고, 조언을 해도 닿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될수록 친구의 풀 죽은 목소리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걱정이 되다가도 ‘이번에도 똑같겠지'하는 체념이 들 때면, 내가 이 아이와 진정한 친구가 맞긴 한 건지 내 마음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되어 슬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같잖은 조언 따위 없어도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이라는 걸. 사랑하는 친구라고 해서 모든 모습을 좋아할 수는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매번 같은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그것으로 행복하다면 충분하다는 걸 말이다.
가끔 에너지 뱀파이어가 되는 너를 사랑한다.
불완전한 모습마저 부끄러워하지 않고 보여주는 용기 있는 너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