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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Jun 29. 2020

실패에 대한 쌉소리

의식의 흐름대로 썼습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견하기까지 2천 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한다. 한 기자가 에디슨에게 그처럼 수많은 실패를 겪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에디슨은 "난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소. 전구가 왜 빛을 내지 않는지에 대한 2천 가지의 원리를 알아냈을 뿐이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처음에는 '와우, 역시 에디슨!' 했다가 좀 지나니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니, 그러니까 기분이 어땠냐고요. 그 2천 가지의 원리를 알아낼 동안 기분 말이에요, 기분.




'실패'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것을 꺼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디슨의 발명에 견줄 일인가 싶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나름 큰 허들인 대입, 입사, 결혼 같은 것들의  말이다. '좌절과 눈물과 극복'이라는 삼단 콤보 세트가 이어져야만 제대로 된 실패라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베스트셀러 저자 강연을 들어도 뭔가 인생의 굵직한 스크레치가 하나씩은 있고,  사회적으로 이름 날린 사람들의 자서전을 봐도 나 같으면 한방에 훅 갔을 법한 실패에도 다시 강건히 일어선 경험이 있다. 마치 그 정도 성공하려면 그만큼의 좌절과 실패에도 굴하면 안 된다는 듯이. 그만큼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듯이.


그래서 내가 지금껏 틈틈이 느낀 실패의 감정들은 사실은 실패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작은 실수의 범벅이라거나 그로 인한 애교 있는 투정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했다.  

하지만 나는 진짜 자주, 어쩌면 가를 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매번 실패를 경험한다. 시험관 시술에 실패했을 때도 있었고, 수능시험을 망쳐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써보지도 못했을 때도 그랬다. 사소하게는 갓 돌이 지난 아이의 울음을 제대로 해석하는데 실패해서 30분 넘게 진땀 빼기도 하고, 김밥 하나 제대로 마는데 실패해서 옆구리 다 터진 채 그릇에 담기도 한다. 아이를 낮잠 재우고 자유시간을 가져보겠다는 계획에 실패해서 피곤과 짜증이 배가 되기도 하고, 남편의 부재에도 호기롭게 가구를 옮겨보겠다는 계획에 실패해서 옮기다 만 가구가 거실 한가운데에 며칠 동안 방치되기도 한다.


'내가 또 실패했구나.' 하는 깨달음은 대개 '아,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과 자조로 시작된다.  다시 바로잡기 위해 애써보지만 진만 빠질 뿐, 이미 망친 일들은 쉬이 제자리로 되돌리지 못한다. 그리곤 나름의 교훈을 얻는다. '다음번엔 김밥 속재료를 좀 적게 넣어야지." 따위의.


꼭 거창할 필요 있나.

실패마저 남들보다 크고 남다를 필요 있나.

내 나름의 실패.

그 과정에서 내 나름의 교훈.

내 나름의 성장.

그거면 됐지. 그거면 충분하지.




그나저나 에디슨 님,

1999번째 실패했을 때 "아, 이것도 안되네!! 또 실패야!! 제길!!" 따위의 욕 했어요 안 했어요?

머리 쥐어 싸매고 "이런 똥멍청이!!!" 했어요 안 했어요?

아,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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