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미작가 Jul 27. 2020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

출산휴가를 앞두고 사업부가 문을 닫기로 결정된 후로 진로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입사가 결정되고 진짜 입사할 때까지 약 2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 회사의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업무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된 후였고, 내가 맡기로 되어 있었던 일도 당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의 갈림길에서 지금의 회사를 선택한 것은 나의 결정이었지만, 오래도록 찾아 헤맨 나의 일을 회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은 회사를 다니는 내내 마음 한편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했다.


처음에는 새롭게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이 시간이 갔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어찌 되었든 목에 사원증을 매달았으니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니라고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몇 해가 흐른 뒤에는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해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촘촘하게 짜이지 못한 사업 계획을 채워가느라 매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화장실에 가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일을 했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했고 우리 부서는 늘 질책을 받았다. 당장 그해 연말에 부서가 해체되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여러 해동안 이어지다 보니 일할 맛이 나지 않았다.
스스로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탓도 있었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성과 중심의 일을 하다 보니 개인적인 역량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회사 시스템에 맞추려다 보니 이해되지 않은 채로 진행되는 일도 있었다. 부서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 관성대로 일하는 내 탓 같기도 했고, 그럼에도 이 곳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현재는 사업부가 정리 수순을 밟는 중이고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한 발짝 떨어져 있다 보니 복직을 해야 하는지, 할 수는 있는지, 한다면 어느 부서로 배치될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매일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뒤엉켰다.
하지만 두 번의 육아휴직으로 중간중간 단절된 경력과 돌아갈 회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자꾸 나를 작아지게 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지금 내 수준과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 나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일보다는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게 했다. 씁쓸하고 내키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현실적인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찾은 방향으로는 쉬이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한 걸음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슴이 전혀 뛰지 않는 일, 말 그대로 생계를 위한 일, 어찌 되었든 ‘일을 한다’는 타이틀만을 위한 일이었다. 깜냥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방향이 맞는지 틀린지도 알 수 없는 길목에서 고민만 하느라 아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결국은, 나를 찾아야 했다. 남의 눈에 인정받고 싶은 내면 아이 말고, 어른으로, 독립된 나로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서서 나를 들여다봐야 했다. 혼자서는 어려웠다. 온라인 상에서 많은 자기 분석 툴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가도 막상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로막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조차 모르겠는 막막함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전혀 즐겁지도, 에너지 넘치지도 않는 시간이 이어졌고, '그때는 좋았는데..'라며 풀 죽기 일쑤였다.


지난 나의 시간 동안 가장 가슴 뛰고 즐겁게 일했던 기억을 꼽으라면 늘 첫 번째로 꼽는 일이 있다. 수많은 논문을 읽고 하나의 스토리로 꿰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 일을 다시 하면서 그때의 가슴 벅참을 느껴보고 싶지만, 과거 그 일을 하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갈 길에 그때의 가슴 벅찼던 일을 더할 순 없을까. 지금으로서는 명확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일'이어야겠다. 내가 갈 길에 그 일을 얹을 수 없다면, 그 일을 하면서 내가 갈 길을 만들어봐도 되지 않을까.

어떤 길이 될지, 길이라는 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일단은 내가 하고 싶은 그 일 중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 한다. 그동안은 ‘그걸 해서 뭐해.’ 하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관련 글을 읽지 않고 공부를 멀리 했다.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일이 아니라서 등등의 많고 많은 부정적 시그널을 일단은 고이 접어 날려 보내려 한다. 그 일을 하면서 즐겁고 기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테니.


뭐가 되었든 시작해보자 생각하니 웬 걸. 다시 가슴이 뛴다. 오랜만에 생기가 돈다. ‘그래, 이게 나지!’ 근거 없는 자신감도 마음 밑바닥에서 빼꼼 고개를 든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은, 결국, 아무 대가 없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 아닐까.


이제 나만의 길에 점찍으러 출발이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하신다니, 부럽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