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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Aug 10. 2020

엄마가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명과 뇌정맥

엄마의 이명이 점점 더 심해져서 이제는 한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고, 같은 쪽 시력도 급격하게 나빠졌다. MRI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 선생님은 뇌정맥의 한 가닥이 샛길을 만들었고, 그 샛길이 지금은 8차선 도로만큼 넓어졌다고 했단다. 본인 의사 생활 중 3번째로 보는 사진이라며 아직은 연구 중인 부분으로 딱히 치료방법이 없다고도 했단다. 부모님이 다녀와서 전해준 얘기를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MRI 찍으면서 관찰해야 할까요?”
“아니오. 이제 오지 마세요. 병원에 와봤자 도와드릴 것이 없어요. 혈관이 터지지 않도록 생활에 유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혈관이 터지면.. 요?”
“그때는 손 쓸 방법이 없는 거죠.”


얼굴빛이 납 색깔이 된 엄마, 아빠에게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였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았는데 뭐 별 일이야 있겠어요?”




병원에 다녀온 엄마는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를 담담하게 전했지만 내 속에서는 천불이 일었다. 아무리 방법이 없다손 치더라도 환자를 앞에 두고 그리도 싹바가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뇌혈관 기형인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무슨 방도가 있진 않을까 싶어 그 분야의 명의를 수소문해 진료를 예약하고 몇 달을 기다렸다가 만난 의사였다. 시골에서 새벽부터 KTX를 타고 올라가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도착한 병원에서 정작 5분도 걸리지 않은 의사와의 면담이 저 지경이라니, 기가 차고 황당했다. 무엇보다도 그 의사가 지껄인 배려 없는 몇 마디로 엄마의 지푸라기 같던 희망이 뿌리째 뽑혀나갔다는 것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뭐 이명 가지고 그래. 나도 가끔 귀에서 삐 소리 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장담컨대 그런 이명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도 아이를 낳고 나서 잠깐 이명에 시달렸다. 귀에서는 하루 종일 수영장에서 징을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댔다. 주변이 조용한 시간이면 귓속의 징소리는 더 크게 울렸다. 이명 때문에 소리가 잘 안 들리는 불편함보다도 이제 나에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하고 고요한 시간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불안과 슬픔이 더 나를 힘들게 했다. 단 한순간도 조용하지 않은 세상.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괴롭고 서글펐다. 내가 경험한 것은 출산 후 약 두 달 정도였지만, 엄마는 벌써 십 년이 넘었고 그 소리도 한여름날의 매미 울음소리보다 크다니, 엄마의 고통을 미뤄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기형적으로 넓어진 뇌정맥으로 피가 흐르는 소리라고 했다. 넓어진 만큼 소리도 큰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이명 잡자고 뇌수술을 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제 예순이다. 혈관이 터지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기에도, 앞으로도 수년을 매일같이 귀가 아프도록 울리는 이명과 함께 하기에도 너무 젊다. 누구라도 가능하다고만 하면 수술이든 뭐든 해보고 싶은 마음인데 엄마는 이미 마음이 쪼그라들었나 보다.


“엄마도 갈 때가 다 되었나 봐.”
“사람 가는 데 순서가 있겠냐.”


병원에 다녀온 후로 엄마는 부쩍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그럴 때마다 말문이 막힌다.
“엄마, 이제 예순이야. 무슨 그런 말을 해.”
위로도, 걱정도 아닌 말들만 겨우 던져놓고 전화를 끊으면 불안함이 엄습한다. '엄마가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 혈관이 터져서 쓰러지면? 바로 출발해도 4시간 넘게 걸리는데?' 따위의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고 만다.


며칠 전에는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길게 통화를 했다. 아빠에게 서운했던 일을 나에게 털어놓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동생 걱정, 며느리 칭찬, 내 걱정을 돌아 엄마 건강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최근 급성비염이 와서 평소 먹던 약에 비염약이 추가되어 이제는 약만 한 접시라는 이야기,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우리 가족 여행 가자는 이야기, 이제는 이도 저도 다 귀찮아서 편하고 즐겁게 살다 가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듣다가 나는 이내 슬퍼졌다.
“엄마, 엄마는 왜 자꾸 죽는 얘기를 해, 딸 앞에서. 듣는 딸 슬프게.”
“사람이 때 되면 다 가는 거지, 뭘 슬퍼.”
덤덤한 엄마의 말에 목이 꽉 막혀서 쥐어짜듯 내뱉었다.
“엄마는 일찍 죽고 싶어?”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냐.
...... 엄마도 살고 싶다.”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너무 통화가 길었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와중에도 막둥이 젖 좀 끊으라고, 단백질과 철분 챙겨 먹으라고, 애들 잘 때 자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의 끝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나는 전화를 끊고, 잠든 막둥이 옆에서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이라는 것이 있을까.
인간이라면 결국 죽는다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현실의 무게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대상이 내 엄마라서 엄마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샘이 터진다.


엄마, 나의 엄마.

엄마의 부재에도 나는 안녕할 수 있을까.
벌써 이렇게 두렵고 슬픈데, 나는, 그럼에도 내 삶을 살아낼 나는 어째야 하나.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지금처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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