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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편의점 Jun 26. 2022

친근한 일상 속 떫은 맛, 영화 <더 스퀘어>

친군한 첫 맛, 곧 찾아오는 현실의 떫음, 그리고 은은하게 남는 여운


MD의 테이스팅 노트#03

친근한 일상 속 떫은 맛, 영화 <더 스퀘어>


1. 오늘의 와인: 영화 <더 스퀘어>  

줄거리 누구보다 완벽을 추구하는 스톡홀롬 현대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 ‘더 스퀘어'라는 새로운 전시를 앞둔 그에게 예측불허, 기상천외한 트러블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출근길, 도심 한복판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이후부터 완벽했던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한 순간에 ‘뭘 해도 안 풀리는' 삶을 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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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와이너리 소개: 예술 더스퀘어와 모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2관왕의 쾌거!

지난달 29일 폐막한 제 75회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슬픔의 삼각형'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거머쥐었어요. 지난 2017년에도 <더 스퀘어>로 같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5년 만에 두 번째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번 와이너리 콘텐츠는 제 7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더 스퀘어>입니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2015년, 스웨덴 베르나모 지역의 반달로룸 디자인 미술관 광장에서 ‘더 스퀘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미를 갖는' 정사각형 공간을 제작한 프로젝트로, 실제로 유럽 내에서 큰 호응을 얻었죠. 영화 <더 스퀘어>는 앞선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예술가와 지식인을 비롯한 사람들의 위선과 허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예술, 그 아이러니한 범주에 대하여…

영화는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과 기자의 인터뷰로 시작됩니다. 기자는 크리스티안에게 미술관 홈페이지의 문구가 어렵다며, ‘전시와 비전시, 장소와 비장소'의 의미 즉, 예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죠. 크리스티안은 질문에 대해 이해하지 못 한 듯 얼버무리다가, 기자에게 역으로 질문해요.

“미술관에 뭔가를 놓으면 그 물건은 저절로 미술 작품이 되나요? 가령 기자분의 가방을 여기에 둔다고 치죠. 그러면 가방은 미술 작품이 되나요?”

예술의 본질을 관통하는, 어쩌면 영원한 논쟁거리가 될 만한 질문을 활용하여 불리한 상황에서 빠져 나가는 큐레이터의 모습입니다. 홈페이지의 전시 소개글 조차도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 수석 큐레이터의 모습 뒤로는 “YOU HAVE NOTHING(너에겐 아무것도 없다)”이라고 적힌 네온 사인이 그의 지적 허영심을 조롱하듯 빛나고 있습니다.

한편, 크리스티안이 기자에게 역으로 질문한 내용 즉, 예술의 범주는 사실상 정해진 바가 없죠.

소변기를 오브제로 활용한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샘을 비롯하여 뱅크시의 파쇄 퍼포먼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등은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으로 현대 미술계를 뒤흔든 작품들입니다. 경매 낙찰 직후 자체적으로 파쇄 된 작품의 가치가 20배나 뛰고, 누구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이는 것만으로도 1억 4천만원에 달하는 가치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현대 미술의 범주는 누구도 알 수 없죠. 이렇듯 아이러니한 현대 미술 시장 자체에 대한 비판이 위 작품들, 그리고 <더 스퀘어>의 이면에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스퀘어, 그리고 일상의 모순

직장에서 중요한 회의를 하는 직원들,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는 한 직원. 자연스럽게 지나가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복지국가로 유명한 스웨덴답게, 직장에서도 아기를 돌보며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유럽의 높은 복지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인데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긍정적 복지 제도가 있는가 하면, 그 이면엔 다른 모습도 존재합니다.


'더 스퀘어’는 신뢰와 돌봄의 성역으로, 이 안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더 스퀘어>라는 전시의 내용이자,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영화 중간에는 길에서 구걸을 하는 노숙자를 무시한 채 이웃의 생명을 구하자며 전단지를 돌리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길거리의 빈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생명을 구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여성, 그런 여성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 굉장히 일상적이지만 폭력적이기도 한 사회의 이면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이 길가에서 생활하는 난민, 빈민들의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게 노출 되기도 하는데요. 복지 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스웨덴을 대표하는 고급스러운 현대 미술관의 모습이 길거리 노숙자의 모습과 굉장히 대조적으로 비춰지죠. <더 스퀘어>의 주제는 계속해서 언급되지만, 그 어떤 등장인물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비단 스웨덴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 더 나아가 현대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즉, 현대인들의 위선과 이중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상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꼬집는 부분이죠. 



위선과 허상,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행위 예술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에요. 유명인사와 미술관 후원자들을 위한 만찬 자리에서 행위 예술가 ‘올렉'이 야생 원숭이를 연기하며 선을 넘는 행동들을 하죠.

사람들은 흥미로워 하다가도, 야생 원숭이의 먹잇감이 될까 두려운 듯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퍼포먼스는 점점 더 과격해지고, 끝내 한 여성을 추행하려고 하자 그제서야 하나 둘 달려들어 그 행동을 저지합니다.

분명 사회적 관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퍼포먼스라는 예술로 포장된 행위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위선에 대한 비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올렉’의 행위는 야만적인 현대 사회의 모습 혹은 폭력적인 현실을 비유적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도 있어요. 더불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관중을 통해 익명성이 보장 될수록 심화되는 방관자 효과도 엿볼 수 있죠. 현대 사회의 이면과 마주한 우리 인간의 무책임한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개인에 대한 확신은 늘어나는 반면,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줄어들고 있다. 더 스퀘어는 사회적 책임과 신뢰, 부유함과 가난함, 힘 있는 자들과 힘없는 자들에 관한 주제를 넘나 들며 인간과 사회, 미디어의 양면성을 꼬집는다. 루벤 외스틀룬드


<더 스퀘어>는 예술의 의미, 정치적 올바름, 현대 사회의 크고작은 문제 등 일상의 모순을 풍자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불편한 상황을 끊임 없이 제시함으로써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간사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다 보면 문득,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하는 생각이 들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모순 가득한 현실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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