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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편의점 Aug 11. 2022

화려한 포장 속 진실의 맛,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

맛있다. 적당하다. 그러나 문득 드는 생각은 과연 이 맛은 건강한 맛일까

MD의 테이스팅 노트#05

화려한 포장 속 진실의 맛,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


1. 오늘의 와인: <애나 만들기>  

줄거리 '애나 만들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애나 소로킨. 그녀는 스스로에게 애나 델비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 채 뉴욕 사교계에 혜성처럼 등장한다. 애나는 '독일 출신 상속녀'라 자신을 소개하며 뉴욕 상류층을 하나 둘 사로잡는데...


2. 와이너리 소개: #리플리 #샘의 아들 법 #자기과시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쿠팡플레이 <안나>

지난 24일 공개되어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 이름, 가족, 학력, 과거까지 모든 것을 속이고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인데요. 이 이야기는 사소한 거짓말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고, 결국 주인공 안나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죠.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

여기 비슷한 듯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 2월 공개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입니다. 주인공 애나는 자신을 '독일 출신 상속녀'라 속이며, 뉴욕 상류층을 상대로 환심을 사고 끊임없는 사기 행각을 벌입니다.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이 일로 법정에 서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애나 만들기> 역시 <안나>와 마찬가지로 시작은 사소한 거짓말입니다. 처음에는 이름, 출신 정도를 속이는 정도였을 겁니다. 그러나 거짓은 거짓을 낳았고 애나는 결국 절도, 사기, 사칭을 아우르는 중범죄를 저지릅니다. '나에게는 수십억에 이르는 신탁 자금이 있으며 곧 25살이 되면 그 재산을 모두 물려받을 것'이라는 레퍼토리로 애나는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습니다. 

사교 파티에 참여하여 인맥을 쌓았고,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잔뜩 사고, 값 비싼 여행을 다니며 이를 인스타그램에 과시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애나는 과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에도 아주 능숙했습니다. 상류층 인사들에게는 화려한 언변, 인맥, 지식을 활용해 다가갔으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선물이나 돈을 마구 베풀며 그녀가 '애나 델비'임을 믿도록 했습니다. 특히 호텔 직원들에게는 100달러(한화 약 13만원)를 끊임없이 팁으로 줬는데, 이는 훗날 애나가 꽤나 장기간 숙박비를 지불하지 않고도 호텔측의 의심을 피해가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법정에 선 실제 '애나 소로킨'

한편 애나의 뻔뻔함은 '리플리 증후군'을 떠올리게 합니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인격 장애"를 의미합니다. 사실 리플리 증후군은 정식 진단명은 아니며 문학에서 유래된 표현이기는 하나, 공상적 허언은 반사회성 인격 장애의 몇 가지 실제 특징 중 하나라고 합니다. 

애나는 리플리 증후군일까요? 실제 애나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있자면, 그녀는 정말 자신이 '애나 델비'라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뻔뻔하고 당당합니다. 변호사나 기자를 만날 때도 끝까지 자신이 '애나 델비'인 것처럼 행동하고 진술했다고 하네요. 물론 진실은 애나 본인만이 알고 있겠죠. 그러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결국 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되었단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샘의 아들 법(Son of Sam Law), 돈이 되는 범죄자의 이야기?

<애나 만들기>는 발표 전부터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인데요. 미국에서 애나의 이야기는 뉴욕의 한 잡지에 실리며 큰 유명세를 탔습니다. 애나는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녀는 재판에 출석할 때 유명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여 명품 옷을 잔뜩 입고 나왔으며, 실제로 그녀의 법정 패션은 언론 및 SNS 상에서 매번 크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넷플릭스는 애나 델비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제작한다는 조건으로 애나에게 32만 달러(약 4억원)를 지불했는데요. 그렇다면 여기서 과연 범죄자가 범죄 이야기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드실 겁니다. 다행히 샘의 아들 법(Son of Sam Law)이 이를 방지하고 있습니다.

샘의 아들 법은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로 생긴 대중적 인지도를 이용하여 수익을 챙기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이 법은 1976년 총격 사건으로 악명 높았던 연쇄 살인범 버코위츠가 자신의 범행 일대기를 출간 계약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뉴욕주의회는 범죄자의 이야기를 구입하는 측은 범죄자 본인 대신 범죄피해자위원회(Crime Victims Board)에 돈을 지불하게 했습니다. 뉴욕 검찰측은 샘의 아들 법을 근거로 애나가 수익을 올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고, 이는 받아들여져 애나가 자신의 이야기로 큰 이득을 취하는 것은 어려워졌습니다. 

뮤지컬 <시카고>

한편 '유명한 범죄자'라 하니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된 <시카고>가 떠오르네요. 1920년대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는 '범죄와 유명세'라는 측면에서 <애나 만들기>와 공통점을 갖습니다. 당시 언론은 사건보다는 '이야기'와 범죄자의 '외모'에 관심을 가졌으며, 주인공 뷸라나 벨마는 범죄로 얻은 유명세를 이용해 더 큰 인기와 부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범죄를 통해 유명세를 얻고, 그 이야기를 가공해 2차, 3차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을지는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자기과시의 굴레

<애나 만들기>가 실화라는 사실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랍니다. 어떻게 그 깐깐하고 콧대 높은 뉴욕의 상류층을 감쪽같이 속였는지 말이죠. 애나가 대단히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사람인 것일까요? 물론 애나가 실제로 언변과 임기응변에 능한 그 이유도 있겠지만, '자기과시'로부터 비롯된 여러 병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더 큽니다.

사람들은 내면보다는 외면에 집중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타인에게 스스로를 과시하고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매일같이 화려한 파티가 열리는 뉴욕 사교계라고 달랐을까요? 애나는 SNS와 명품 옷을 이용해 쉬지 않고 뻔뻔하게 자기 자신을 과시했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겉만 보는 사교계의 고질적인 습관이 애나를 '애나 델비'로서 꽤 오랜 시간 버티도록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테이스팅 후기

맛있다. 적당하다. 그러나 문득 드는 생각은 과연 이 맛은 건강한 맛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은 아닙니다. 한 기자가 법정에 선 애나의 실체를 파헤치며, 애나의 지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드라마가 진행되거든요. 그럼에도 꽤 흡입력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맛있지만, 이게 '건강한 맛'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음식을 먹을 때 오감을 이용해서 먹으라는 말이 있듯, 콘텐츠를 소비할 때는 외부와 내부의 여러 측면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은 테이스팅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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