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우리는 S-시 수도원 기도실로 파송됐다.
이른 점심시간, S-시에 오면 사수가 즐겨 찾는 평양냉면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장 주변 골목들도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식사하려는 사람들로 점점 붐비기 시작했다.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때,
한 남자가 양손에 목발을 짚고 불편한 걸음으로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노란 선 앞까지 나와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옷은 심한 얼룩으로 번들거리고 다양하고 복잡한 냄새와 악취가 그에게서 났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도 그 사람 주위에 서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하얀 백발에 작업모를 깊게 눌러쓴 몸이 불편한 노인-이었다.
그가 혼자 힘으로 건너기에는 건널목이 너무 넓어 보였다.
파란 신호가 켜져 있는 동안, 그가 서둔다고 해도 건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이 순간에도 신호등을 바라보며 갈등하고 있는 눈치다.
갈지 말지를 곧- 결정해야 한다.
그때 왜소한 체격의 한 노신사가 노인 앞으로 나와 허리를 낮추고 등에 업히라고 노인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노신사는 옆에 서-있던 한 청년에게 그 노인의 목발을 잠시 들어-줄 것을 부탁하고 신호가 바뀌자, 그의 뻣뻣한 다리가 땅에 끌리지 않도록 허리를 최대한 숙이고 잰-걸음으로 비틀거리며 바쁘게 걸어 간신히 건너편에 도착했다.
노신사는 그가 목발을 다시 잡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야 눈에 띌 만큼 무거워진 걸음으로 맞은편 버스 정류장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사수가 물끄러미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시장으로 들어가 냉면 집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뜨거운 면수를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는 그때 사수가 내게 말했다.
- 천사를 보내-주셨군.
- 아! 그 노신사요?
- 아니-.
- 그럼, 그 목발을 들어준 청년-이요?
- 아니-,
- 그럼-, 대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 목발 짚은 그 노인-. 그 사람이 천사야,
그가 노신사에게 업혀 있을 때, 그의 환한 미소를 보지 못한 게로군?
그가 노신사를 위해 보내준 천-사였네.
아마 노신사는 조만간 삶을 정리하게 될 걸세.
천국은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나 기회 주길 원하지-.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작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회를 계속 공급하는 거지.
결국 천국에 대한 소망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말이지.
오늘 자네는 그 일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보게 된 거라네.
물론 자네와 나도 이와 비슷한 일이 지난 생에 있었겠지.
아니면 누군가를 통해 그분을 만났거나,
지금 자네나 내가 할 수 있는 기억은 선택적으로 남아있는 기억 외에는 리-부팅이 되어 있어서 기억이 나지는 않겠지만, 말일세.
그때, 회수된 상자를 스-올로 보내기 위해 셔틀로 가는 통로 입구에 걸려있던 플래카드 글귀가 생각났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잠시 후, 시원한 물냉면 하나는 보통 하나는 곱빼기 그리고 찐만두 한 접시가 나왔다.
우리는 곧 냉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냉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 천국에도 없는 맛이라 그런지 더 맛있는 것 같아-.
왜? 스파게티는 되고 냉면은 안 되는 걸까?
- 저도 생각해 봤는데요,
스파게티는 당연히 모든 식재료가 천국이 맛있으니, 맛있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이 집 냉면은 육수를 만드는데, 북어를 사용-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집에서 생선-맛 나는 열매를 가져다 갈아서도 해-보고, 끓여서도 넣어 보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다, 비슷한 방법을 찾긴 찾았는데-,
그게- 아직은 완성도가 떨어져서요.
- 어 그래, 문도 자네가 요리에 그렇게 진심인 줄은 정말 몰랐는걸, 그래 찾았다는 그 방법이 뭔가?
궁금해서 그러네.
- 피쉬-코코넛 열매를 말려서 사용하는 거예요.
그런데 건조하면서 맛이 깊어져야 하는데, 그러려고 하면 아무래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얼마 전, 열매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실에 꿰어, 바람 부는 숲에 말리려고 걸어 놨었는데,누군가 그새 다- 먹어버려서-, 해-보지도 못하고 끝났지 뭡니까.
곰이 먹은 것 같은데, 뭐- 할 수 없죠, 다시 해야죠.
아무튼, 육수가 준비-되는 대로 냉면을 먹어 본 경험이 없는 이웃에게 대접해 보려고요.
사제님도 준비되면 그때 오세요.
- 그으래?
자네 덕분에 곧 천국에서도 냉면을 맛볼 수 있겠 -구만, 그리고 준비되면 나도 좀 나눠 주-게.
국이나 스튜 만들 때, 한번 써먹어 보게.
오후 늦은 시각, 우리는 강남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강남역-사거리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4층 건물 전체를 병원으로 사용하는 제법 큰 규모의 산부인과 병원이 있었다.
이곳은 젊은이들 사이에 꽤 유명한 병원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이 병원에서는 아무도 방문자들에게 이곳을 방문한 목적이나 나이, 이름 등 자세한 인적 사항을 묻지 않아서였다.
다만 수술에 필요한 몇 가지 검사를 받고 수술 일정을 알려줬다. 그리고 모든 결제는 현찰로 이루어지며 추후, 환자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한 사람이 몇 번을 해도 이 병원에서는 돈만 내면 다 해-줬다.
이곳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그 생명을 지우는 곳이었다.
우리는 크로노스 보드를 1시간 빠르게 작동시키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저녁-시간인데도 병원 안은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특히 미성년자로 보이는 10대들이 주위에 시선을 피해 이 시간대에 많이 오는 듯했다.
수술실 앞, 긴-의자에 대기자들이 앉아 있고 만약을 위해 간호사 복장을 한 여성이 수술 동의서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복도를 지나, 곧장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 안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로망스가 스피커를 통해 작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사는 수술의자에 앉아 능숙한 손놀림으로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열심히 빠른 속도로 지우고 있었다.
그에게선 한-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하고-있는 수술을 빨리 마무리하고 바로 다음 수술로 들어가야 한다는 느낌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반대편 수술의자에 다른 여자아이가 수술 가운을 입고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그리고 다른 의사가 여자아이를 마취시키는 동안 의사는 수술 중인 환자의 수술을 마치고 일어나, 구석으로 가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 어 난데, 어떻게 부-킹은 됐어?
그래-?, 잘- 하셨네,
모레 아침 6시, 나 데리러 오는 거 잊지 말-고,
너 또 지난번처럼 늦지 마라!
이번 아가씨들 내가 힘들게 어레인-지 한 거야.
처음부터 매너 있게 보여야지-, 막갈 때 가더라도.
그-럼! 끝까지 가야지.
내가 들인 돈하고 시간이 얼만-데, 안 그럴 거면, 아예 시작도 안 했어, 이 사람아!
어- 그려, 그럼, 수요일에 보자-구!
그래, 잘 입고 와, 미리 연습장에 가서 연습도 좀 하고, 필드에서 망신당하면 서로 곤란-되니까. 그러지 않아도 싱글이라고, 내가 썰- 을 쫙 풀어놨는데-,
어- 그래? 근데 지금 나 좀 비-지다!
바쁘다고-, 그래.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그래-.
그는 통화를 끝내고 자리를 옮겨 다른 수술 의자에 앉아 마취하고 대기-중이던 새로운 어린 환자의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수술을 마치고 자기 사무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쉬고 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병원 사무장이 현금 가방과 장부를 가지고 들어왔다.
- 마감이 늦었네-?
- 예. 조금 전에야 정산이 끝나서요,
오늘 매출이 많아서 정리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 그렇군-. 어쩐지 나도 많이 피곤하더라-고, 그러고 보니 오늘 수술이 좀 많았네.
자- 이리 가져와 봐-, 다 맞지?
다시 안-봐도 되겠지?
그가 장부를 건성으로 훑어보고 사무장에게 얘기한다.
- 네, 확인하고, 보고 드리는 겁니다.
그는 장부와 현금을 사무실 대형 금고에 집어넣고, 바로 잠근다.
- 수요일에 골프 약속 있어서 자리 비울거니까.
사무장님이 좀 더 신경 써 주시고, 김 선생이 메-인으로 수술해야 하니까, 수술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 네, 알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
오늘, 원장님이 올해에도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위촉되셨다고 구청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오전에 구청장님 집무실에서 임명장 수여식이 있다고, 꼭 참석하셔야 된-다고 해서, 그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어- 당연히 해야지, 하는 게, 모든 면에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니까.
자! 수고했어, 우리도 이만- 퇴근합시다.
그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나와 지금 강남역 사거리 뒷-블록 빌딩 지하에 있는 철저히 회원제로 운영되는 고급 룸-살롱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도 병원을 나와 보드를 다시 원위치로 돌리고 거리를 두고 그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술집으로 들어가는 그를 더 이상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그가 거기서 무슨 짓을 하든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다.
내일이면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없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그의 주변에 머물면서 그가 가장 편한 시간에 그의 영혼을 회수하면 끝이다.
이게 우리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우리는 그가 들어간 건물 지하, 룸-살롱 입구가 바로 보이는 골목 끄트머리에 자리한 허름한 길거리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뜨끈한 멸칫국물에 어묵과 유부가 적당히 들어 있고 쑥갓과 계란지단을 고명으로 얹은 푸짐한 잔치국수에서 김이 분화구처럼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 문도, 복귀하면 먹을 수 있는 게, 마땅치 않을 걸세, 그러니 여기서 먹고 가자고?
- 마침, 국물이 그리웠는데, 그러시죠. -
할머니- 국수 두 그릇 말아주세요.
이미 포장마차 안에는 주변 주점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더 늦기 전에 식사하러 왔는지, 긴 의자에 걸터앉아 진한 화장을 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국수를 기다리고 있거나 먹고 있었다.
우리도 포장마차 입구를 피해 포장이 처진 한쪽 모서리에 서서 국수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포장마차 건너편 주차장에서 커다란 고함-소리와 사람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하지만 포장마차 할머니와 아가씨들은 이러한 일이 일상인 듯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요나 사제가 그 소리에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할머니가 그를 막았다.
- 가지 마! 그냥 여기 있으랑-께.
저놈들은 으른이고 아이고 읎어라.
괜히 나서다 봉변-당허지 말고 여기 있다가 국수나 먹고 가던 길이나 가소.
경찰이 와도, 저것들은 어쩌질 못-한 당께.
이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요나 사제는 이미 주차장으로 들 어가고 있었다. 그때 도마 장로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의 일에는 개입하면 안 된다는-.
- 사제님! 저기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말이 입안에서 맴돌 뿐, 나오지 않았다.
사수는 항상 터질 준비가 돼 있는 시한폭탄 같은 분이니 조심하라고 한 전임자의 말이 생각났다.
임무 수행 중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일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임무 수행중, 이스카리투스나 그 세력들과의 불가피한 충돌이 생기는 경우에도 우리에게는 단지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만 사용하도록 허용되어 있었다.
방어한다는 핑계로 누군가의 영혼을 우리가 임의로 회수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주차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 살펴보니 벌어진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와 아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보이는 왜소한 체격의 두 노인이 차가 운 바닥에 쪼그라든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덩치가 산-만한 크고 험상궂게 생긴 한 남자가 솥-뚜껑 만한 손으로 가느다란 여자아이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 두 분이 패거리의 두목으로 보이는 한 사내 앞에 무릎 꿇고 맨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 사내가 두 노인을 향해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 내가 전에 말-했잖아,
원금하고 이자 정한 날짜에 따-박 따-박 가져오라고, 했어? 안-했어?
못 갚으면 당신 손녀, 우리가 데려간다고, 했지?
왜? 대답이 없어?이 노인네가-
내 구역에서 불쌍해서 장사하게 해-줬더니, 그간 베풀어준 은혜도 모르고 말이지.
내 돈 띠어-먹고 야반도주하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지?
- 뭐가 있어야, 자릿세를 드리지요,
제가 형편 되는 대로 갚을 테니. 손녀만은 그냥 보내주십시오. 부모 없이 자란 불쌍한 아-입니다.
그러니 제발- 이번만은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 씨-발! 이 노인네가 산에 묻혀-봐야, 정신 차리지, 말로 하면 안 되겠-구만-.
그때 요나 사제가 덩치 큰 사내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얘기한다.
- 형제님-, 그 손 좀 치우시고 나랑 얘기합시다.
- 내가 왜? 네 형제야 이 새끼야!
네가 나랑 뭔 상관-인데!
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가 소녀를 잡고 있던 솥뚜껑 만한 큰 손으로 요나 사제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긴다.
사제는 그 충격으로 서 있던 위치에서 서-너 걸음 뒷-걸음 질 치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지탱한다.
순간 요나 사제의 입에서 뜻 모를 미소가 스친다.
사제는 의도적으로 덩치 큰 사내가 자신을 때리도록 도발한 거였다.
그의 폭행으로 사제는 이 시점부터 자신의 방어권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제부터 일어나는 그의 행위는 정당했다. 그들 중 누군가를 죽이지만 않는다면,
나는 그들이 사제에게 시선을 돌린 틈을 타, 소녀와 노 부부를 사제와 남자가 대치하고 있는 동선 밖으로 피신시 켰다.
순간, 요나 사제의 입에서 짧고 단호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어느새 호두나무 바통이 들려 있었다.
- 알레그레토!
이 말은 크로노스 보드를 반-박자 빠르기로 작동시킨다. 는 신호였다. 같은 공간에서 사제의 움직임이 상대의 움직임보다 반-박자 빠르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했다.
누군가 빠르게 사제를 공격한다, 해도 요나 사제의 주먹이 반-박자 빠르게 그의 얼굴에 꽂히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빠른 발차기로 공격하더라도 요나 사제의 팔꿈치가 반-박자 앞서 그의 명치를 타격하고 발차기로 턱을 가격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 그의 타격이 사제보다 반-박자 느리니, 그들이 사 제를 공격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했다.
이들 중 두목으로 보이는 남자와 덩치 큰 사내가 거의 동시에 사제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작은 사내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토막처럼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덩치 큰 사내도 목젖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조금 전까지 사납던 기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덩치 큰 사내가 바닥에서 일어나 놀란 두 눈을 하고 어둠 속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곧 건물과 연결된 지하 통로에서. 병정개미들이 개미굴 밖으로 쏟아져 나오듯 그의 부하들로 보이는 사내들이 앞다투어 각자의 손에 무언가를 들고 마구 튀어나 왔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 “죽여!”라고 외치자, 동시에 여럿이 사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사제의 바통이 허공을 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빠른 비트로 호두까기 인형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탱고를 추듯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때로는 발레 하듯 우아하게 그는 그들 사이를 물 흐르듯 누비며 움직이고 있었다.
곧 넓은 주차장 통로가 쓰러진 개미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 가운데 두목 같은 사내가 어느새 사제 앞에 무릎 꿇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사제가 허리를 숙여 그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얘기하고는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소녀와 두 노인을 주차장 밖으로 배웅하고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무 일 없었 다는 듯 현장을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제가 산책하고 막 돌아온 사람처럼 약간 상기된 얼굴로 포장마차에 들어섰다.
아무도 그런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주인 할머니가 양은 냄비가 넘치도록 국수를 말아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우린 국수를 받자마자,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그때 기다리고 있던 원장 모습이 술집 입구에 나타났다.
지금 마담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그를 배웅하고 있었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성장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를 졸업한 강남 엘리트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강남을 벗어난 적 없는 그리고 대치동 학원가가 배출한 우수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배경을 항상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어떠한 것에도 감사하는 경우가 없었다.
가난은 범죄라 여기며 가난한 이웃을 멸시하고 세상은 돈을 가진 자가 지배한다는 극단적 자본주의에 빠져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바라봤다.
그는 오로지 부를 더 쌓기 위해 의사로서 그에게 맡겨진 의무를 저버리고 신이 부여한 소중한 생명을 쉽게 포기하 도록 만들고, 생명이 탄생하는 모든 과정을 폄훼하고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근거로 아이를 지우도록 유도하거나 강요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죽이는 일만 했다. 아주 쉽게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의 이러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하늘에 계신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만하고 소중한 생명을 하찮은 욕망의 결과물로 만들었다.
결국 12 장로회는 그를 완전히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물질의 신, 마몬의 숭배자였고 돈에 미혹된 영혼이었다.
크로노스 보드를 조정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샤워를 마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재로 들어가고 있었다.
곧 가운을 걸치고 골프-백에서 아이언 하나를 꺼내 전신거울 앞에서 어드레스 자세를 취해본다.
뭔가 자세가 어색-하다.
순간, 내일은 연습장에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서재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한-참을 지나서야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미 잠들어 있는 아내 옆에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다.
사망 시간 “밤 12시 15분,” 사인은 부정맥으로 인한 심정지.”
우리는 그의 영혼을 회수하고, 그의 집을 빠져나왔다.
그는 3일 후, 벽제-에서 화장될, 예정이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오늘 우리가 돌아가는 즉시, 스-올에서 완전히 소각될 거다. 흔적도 없이.
그리고 그의 아내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남편의 흔적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거리낌 없이 그간 불륜 관계였던 병원 사무장과 그가 남긴 유산으로 더 성대하게 식을 치 를 거다.
그리고 그와 같이 라운딩 하려던 그의 친구도 그 결혼식에 갈 것이 틀림없다.
그의 친구는 그만 모르는 아내의 전-남자 친구였다.
지금도 가끔 만나는 그리고 남편의 불륜에 대해 정보를 수시로 그녀에게 전달해-주는 그런 좋은 친구라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면 그를 알고 지냈던 모든 사람이 그의 존재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될 거다.
우리는 미-드로 돌아와, 그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보내고 숙소로 향했다.
- 사제님, 주차장에서 그 남자에게 뭐라고 하셨어요?
뭐라고 하셨길래, 다들 조용히 물러난 건지-, 궁금해서요.
-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자네가 반드시 찾아와 평생 무릎으로 기어 다니게 만들어-줄 거라고 했지. 나보다 훨씬 잔인하다고, 그리고 오늘 운 좋은 줄 알라고-
- 정말 그러셨어요?
- 그럼, 진짜지- 가짜겠나?,
그랬더니, 곁눈질로 자네를 슬금슬금 쳐다보면서, 굉장히- 두려워하더군.
나쁜 놈들은 물고기도 아닌 것들이 항상 떼-지어 다녀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
문도! 이번 일은 자네와 나만 아는 것으로 하-세,
내가 자네 무지하게 좋아하는 거, 알고 있지?
-.......
아침 일찍 일어나 대예배실로 향했다.
오늘은 사제들이 모두 모여 함께 기도하고 고해성사하는 날.
나는 고해실로 들어가기 전, 어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할까? 순간 망설였다.
가림-막 너머 장로님이 내게 고백-할 게 있느냐고, 다시 물으셨다.
나는 망설이다가 없다고 했다.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고해성사를 마치고 만찬장에 모여 다른 사제들과 음식도 나누고 포도주도 마셨다, 그리고 서로에게 축복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예배 후 자료실로 바로 갔다.
어제 우리가 벌인 일이 혹시 외부에 알려졌는지, 궁금했다. 자료실에서는 전날 일어난 모든 사건-기록을 원하면 찾아볼 수 있었다.
어젯밤 사건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보도자료는 다행히 찾을 수 없었다.
오늘은 목요일, 2시면 퇴근이다.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으니, 마음이 벌써-부터 분주해진다.
카-토와 밤도 주우러 가야-하고 로-지 아주머니 가게에서 빵 반죽 하는 일도 도와야 한다. 그리고 미치코 아주머니 집에 책장 설치하는 일도 돕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벤 아저씨 목공 방에서 그간 틈틈이 시간 내서 만들던 의자도 마무리해야 한다.
이곳 천국에는 화폐가 없다. 그래서 은행도 금고도 심지어 지갑도 필요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것이 있으면 물물교환을 하거나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래서 무언가 남아서 버리는 일도, 모자라는 경우도 이곳에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욕심이 없었다.
지난주에는 로-지 아주머니 빵집에서 맛있는 무화과 빵과 바게트를 가져왔다. 그 대신 이번 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전에 빵 반죽하는 일과 굽는 일을 돕기로 했다.
굳이 도와드리지 않아도 아주머니는 내게 기꺼이 빵을 나눠 주시겠지만, 나는 그 보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거다.
미-드에서 돌아오자마자, 카-토를 데리러 조-이가 있는 알로 아주머니 집으로 갔다.
카-토가 나를 보자마자 반긴다. 꼬리가 떨어-질듯 흔든다. 조금 있으면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조-이는 요조숙녀처럼 점잖은 걸음으로 조용히 나와 내 주위를 빙빙 돌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나를 아는-척 한다.
알로 아주머니가 카-토가 좋아하는 파란 양배추를 작은 바구니에 가득 담아 마당으로 나오시며 나와 카-토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 카-토는 아빠가 와서 좋겠네? 어서 와요. 문도.
이웃 사람 대부분은 나를 문도라고 불렀다. 오스-문도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카-토가 저 없는 동안, 말썽-피우지 않았나요?
- 그럼-, 말도 잘 듣고 밭도 망치지 않고, 조-이랑 사이좋게 지냈지요-.
아이가 너-무 점잖아서.
- 밤 주우러 가는데, 조-이도 함께 가도 되죠?
- 그-럼, 오히려 안 데려가면 서운해-할걸.
조-이가 더 가고 싶은 표정인데?
조-이가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흔들며 짓는다.
카-토도 내 앞에서 겅중겅중 내 허리춤까지 뛰어오르며 우렁차게 짖으며 나를 닦달한다.
나는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와, 밤을 주우러 갈 채비를 했다. 장화를 신고 기다란 집게와 장갑을 챙기고 밤이 혹여 머리로 떨어질 것을 우려해 대나무를 엮어 만든 모자도 준비했다.
지금 우리는 마을 앞, 개울 건너 언덕 위에 있는 밤나무 숲을 향해 가고 있다.
아직 해가 3시를 가리키고 있다.
해가 천천히 기우는 탓에 밤 주울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술래잡기도 하고 공 던지기도 하면서 놀며-놀며 가고 있다.
나에게 카-토와 있는 이 시간은 항상 마음이 벅-차다.
예전에는 도시에서 바쁘게 사느라, 카-토에게 해준 게, 너-무 없었다,
카-토를 먼저 천국에 보내고 나서야, 내가 못 해준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은 후회로 많이 아파했었다.
지금은 같이 있을 때면, 매 순간-마다 카-토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같이 뛰고 같이 걷는다. 그리고 비비고, 만지고, 또 바라본다.
숲에는 아주 커다란 밤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먹-기 충분한 양의 맛있는 밤을 매해 선물로 받았다.
땅을 보니 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밤이 너무 커서 도저히 한 손으로 짚기가 힘들다.
처음 이곳에 와서 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났다.
밤 하나의 단위가 한 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서다.
밤 하나가 오렌지 두 개를 합쳐 놓은 정도다.
이곳에는 포도 한 알 크기가 작은 사과만-한 품종도 있다. 그래서 수확할 시기가 되면 알이 많이 달린 포도는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들기에도 버거웠다.
천국에서 내가 만난 과일 대부분은 대체로 크고 달콤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져 줍던 것을 멈추고 서 있다.
- 그런데 몇 개를 가져가지?
아주머니께 물어-볼 걸 그랬네.
네 개는 많은 것 같고-, 그래, 세 개 하자.
조-이는 한 개, 우리는 두 개.
대나무 모자를 벗어 밤 세-개를 골라 주워 담았다.
밤들은 어느새 더 색이 짙어지고 윤기가 더 깊어져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먹음직스럽게 잘 여물어 있었다.
우리는 오는 길에 조-이 집에 잠시 들러 알로 아주머니께 가장 큰 밤으로 한 알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카-토가 좋아하는 밤으로 만든 케이크다.
밤 케이크 만들기.
1. 딱딱한 겉껍질을 벗기고 커다란 냄비에 끓인다.
2. 속껍질이 불어서 부드러운 상태가 되면 냄비에서 꺼내, 식힌 다음 껍질을 말끔하게 벗겨낸다.
3. 익히기 좋은 크기로 밤을 잘라 냄비에 천을 깔고 떡을 찌듯 푹- 찌어낸다.
4. 잘 익은 밤을 나무절구로 잘 으깬 다음, 메이플 시럽 두 스-픈을 넣고 골고루 잘 섞는다.
5. 납작하고 동그란 틀에 얇은 밀가루 시트를 깔고, 그 위에 밤을 채운 다음 팬에 올려 올리브유를 적당히 두르고, 그 위에 밀가루를 골고루 얇게 뿌린다.
그리고 버터 두 조각을 그 위에 올리고 뚜껑을 닫고 기다린다.
6. 그리고 고소하게, 밤이 타는 냄새가 나면, 팬을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식힌다.
밤이 타는 냄새가 나자, 카-토가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웅얼대기 시작한다. 카-토는 누구보다 케이크를 꺼내야 하는 타이밍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케이크를 식탁으로 가져가 먹기 좋게 자르고 각 자의 접시에 덜어 행복한 한끼 식사를 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컵에 쟈스민꽃-잎을 몇 개 떨구어 스토브 위에서 소리 내며 끓고 있던 주둥이가 긴- 포트를 가져다가 물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따른다.
그러자 쟈스민꽃-향기가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꽃으로 활-짝 피어-난다.
집 안이 봄 향기로 가득하다.
우리는 화로 옆 소파에 앉아서 서로에게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순간, 편안하게 휘-하고 쉬어지는 긴- 숨소리가 카-토의 입과 코에서 기분 좋게 흘러나온다.
과거, 카-토는 죽기 이-삼 일 전부터 짧고 가쁜 숨을 반복적으로 죽는 순간까지 고통스럽게 쉬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카-토를 안고 안타까워하고 그 옆에서 기다려 주는 것 외에는.
지금 카-토는 내 침대로 자리를 옮겨 가장 편안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코를 골며 내 옆구리에 딱 붙어 배를 하늘로 까고 규칙적으로 편안하게 숨을 쉬며 자고 있다.
나는 카-토의 볼록한 배를 쓰다듬으며 오래전 잠자리에서 카-토에게 불러주던 노래를 다시 불러본다.
- 카-토 배는 똥-배. 아빠 손은 약-손.
그러자 카-토가 팔과 다리를 쭉-펴고 기지개를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