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날이 밝았다.
서둘러 쿠키로 아침을 때우고, 창고에서 지게를 가져와 초절임 통과 파우더가 담겨있는 용기들을 차곡차곡 쌓고, 행여 이동 중에 쏟아지지 않게 줄로 단단히 묶었다. 모아-놓으니, 무게가 제법 나간다.
- 얘들아, 가자!
오늘은 말썽 피우면 안 돼! 알았지?
아빠가 조금 바쁠 거야. 그-니까 아빠 곁에 얌전히 있어야-돼.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알았지? 카-토!
부지런히 예배당 언덕을 지나, 마을광장 모퉁이로 접어- 든다. 저 멀리 “Bon Appetit!”-라는 간판 글씨가 우리를 반긴다.
오늘 냉면을 만들어 이웃에게 대접할 장소-다.
도착해서 보니, 안쪽 주방에 설-리가 보인다.
그녀는 하얀 티셔츠에 멜빵이 달린 청바지를 입고, 주방에서 무언가 혼자서 열심히 하고 있다.
- 설-리 씨!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계세요?
- 그릇- 닦고 있었어요,
오늘 60인분 준비하신다고 말씀하신 게, 생각나서요.
- 아? 그건- 제가 할 건데,
무리하지 마세요, 힘쓰는 건, 제가 할-게요.
- 저도 힘-쎄요.
그녀가 가슴을 내밀고 뽀빠이 포-즈를 취하며, 나를 쳐다 -본다. 그녀의 유머가 음식에 대한 부담으로 살짝 긴장하고 있던, 나를 편하게 만든다.
그때 우-노가 곧 하늘을 날아오를-것 처럼, 그녀를 향해 마구 뛰어간다. 카-토는 자기부터 아는 척-하라고, 이미 그녀 앞에서 겅중겅중 뛰고 있다.
- 우-노! 카-토! 어제 봤는데도, 또 그렇게 반가워?
나도 반가워-.
나는 주방 안쪽에서 큰-솥을 가져와 아궁이에 올려 놓고 물을 가득 부어 끓이기 시작한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파우더 한 통을 솥에 다- 붓고, 물에 잘 녹아들도록 한 방향으로 계속 저어 준다. 그리고 아궁이에서 타고 있던 장작 몇 개를 밖으로 꺼내 불을 줄이고, 1시간을 더 졸여준다.
육수가 어느 정도 만들어 지면, 소금으로 간을 하고, 얼음의 양을 조절해서 넣어준다. 그러면 시원한 육수는 완성.
그리고 나는 초절임 통을 열어서 기미-해 본다. 새콤-달콤하게 숙성이 잘 됐다.
이제 이 초절임은 그대로 냉면 위에 올려주면 끝-이다.
메밀국수는 제면소로부터 이미 도착한 상태.
메밀면 삶을 솥을 준비하고, 그 옆에 면을 행-굴 커다란 대야에 차가운 물을 담아, 얼음을 띄워서 뜨거운 면이 계속 들어가도 물이 차가운 상태가 유지되도록 해준다.
그래야 면이 불-지 않는다.
준비한 것들을, 냉면을 완성하는 순서대로 위치를 배열해 본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분명히 내가 잊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뭐지-? 이 허전함은,
아! 고-추-냉-이!!
먹는 사람도 있고,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된다-하더라도 완벽하게 냉면을 즐기려는 사람에게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다.
나는 서둘러 마트로 달려간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마트에는 음식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식재료가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간절함 때문인지, 바로 보인다.
고추냉이!
과육이 단단하고 윤기 나는 것으로 몇 개를 골라, 식당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그리고 주방에서 눈물 콧물을 번갈아 쏟으며, 강판에 열심히 갈아서 대접에 담아, 배식구 끄트머리에 올려 놓는다.
설-리는 지금 솥 옆에서 육수를 식히느라, 열심히 부채질 하고 있다. 참 열심이다.
드디어 12시, 배식-시간.
국수는 내가, 육수는 알-로 아주머니, 초절임은 설-리가 맡기로 하고, 우리는 배식구 앞에 나란히 서-있다.
경기 시작 전, 긴장감으로 충만하다.
밖에는 이웃-들이 이미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괜히 이마에서 땀이 난다. 누군가 냉면에 거는 기대, 내지는 호기심을, 만족감으로 꼭 채워주고 싶다.
배식을 진행하기 전, 번호-표를 만들어 57번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줄-서는 이웃들에게 미리 알렸다.
벌써 아쉬워하는 분들 표정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분들을 그냥 보내기 정말 힘들지만, 오늘은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우리 몫으로 필요한 냉면 세-그릇을 지키려고, 망설이지 않고 마음이 아픈 것을 선택했다.
배식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배식구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타난다.
- 문도! 여기 있었군. 수고- 많아.
아무튼 잘- 먹겠네. 초대해-줘서 고마워!
- 오셨어요-?
다 드시고, 집에 가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 예-쓰! 그러지-
드디어, 배식이 무사히 끝났다,
배식하느라 식사를 못 한, 알-로 아주머니와 설-리 그리고 내 것까지, 마지막 3그릇을 정성스럽게 담아 자리가 비어 있는 식탁으로 가져간다.
잠시 후, 망설이던 두 사람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냉면을 먹기, 시작한다. 처음 먹어보는 냉면에 대한 첫인상이 어떨지-, 무척 궁금하다.
- 문도- 메밀 향도 살아있고-,
식감이 스파게티와는 다르게 독특하군요.
육수는 재료가 뭔지, 궁금할 정도로 감칠맛이 일품이에요,
초절임과 같이 먹으니, 전체적인 밸런스도 좋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해지는 느낌인-걸.
덕분에 잘 먹었어요.
- 천천히 시작했는데,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워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시 생각나서 먹고 싶은 그런 맛인 것, 같아요.
아무튼, 잘 먹었습니다.
- 두 분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은데요.
냉면 생각나실 땐, 언제든 말씀 하세요, 기꺼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주방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내 곁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건너편 파라솔이 있는 테이블 밑에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 조-이도 같이 있다,
누군가 번갈아 가며,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모자를 쓴 요나 사제다.
지난번과는 다른, 멋진 페도라-를 쓰고 있다.
굉장히 멋있다. 그래서 그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거기 없었다면, 그가 그인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거다.
카-토도 우-노도 그리고 조-이도 지난번 어질리티를 한, 그날 이후로 사제와 많이 친-해진 것 같다.
친해진다는 건, 좋은 거다.
아이들은 자기를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 그리고 언제든 마음을 열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인간과는 다르다.
인간은 언제든 마음을 닫을 준비를 하고, 사람을 만나지만 아이들은 항상 열고서 기다린다.
- 너희들 어디에 갔나 했더니, 여기서 뭘- 먹고 있-어?
- 아, 이거? 밤-과자야, 옆집 할머니가 만든,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네?
- 밤으로 만든 건, 뭐든-지 잘 먹어요.
참 이거.
나는 그를 위해 챙겨둔, 파우더 한 통을 그에게 내민다.
- 이게 그 비법의 파우던-가?
- 과찬-이세요. 냉면은 어떠셨어요?
- 설마 하고 왔는데, 설마가 이 정도-일 줄이야!
이제 냉면 생각나면 자네한테 바로 달려와야-겠어.
진짜로 나에겐 큰 위로가 됐네-.
- 그 정도였어요?
그럼-, 위로가 필요할 땐 언제든 오세요.
항상 환영-입니다.
그때 알-로 아주머니와 설-리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 아, 인사하세요.
저랑 미-드에서 함께 근무하시는 요나 사제님,
사제님! 이분은 조-이네 알로 아주머니, 그리고 최근에 우리 이웃이 된, 설-리 양 이에요.
서로 처음 만나서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다.
사실 나는 이웃에게 요나 사제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었다. 주어진 임무가 무겁고 회색-빛 나는, 일 뿐이라. 굳-이 먼저 나서서 얘기하지 않았다. 우리 일을 숨기려 한 게, 아니라, 다만 하고-싶지 않았을 뿐이다.
사제가 알-로 아주머니에게 초면에 호감을 보인다.
평소에 사제답지 않게 매우 적극적이다.
왠지 사수가 알로 아주머니 때문에 자주 우리 마을로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우리는 광장 모퉁이에 있는 커피 볶는-가게로 자리를 옮겨,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고 있다.
아이들도 행복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카페에 앉아 있는, 이 순간도 머리 위로 별똥별이 무리를 지어 긴-꼬리를 흔들며 어둠 속으로 마구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