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우리는 출근하자마자,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U-시 대학병원으로 갔다.
그가 입원한 병실은 13층, 비뇨기과 병동 복도 제일 끝에 있는 1인실이다. 경찰관 두 명이 병실 앞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오전 회진 시간에 맞춰 그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미동도 없이 천정에 시선을 고정한 채, 베-드에 누워-있었다. 지금 의사가 그의 상처 부위를 살피며, 직접 드레싱하고 있는 중-이다.
- 붓-기가 지난번 봤을 때 보다 많이 빠진-걸 보니, 다행히 잘 아물고 있네요.
의사가 담당 간호사에게 지난밤 그의 소변-양을 확인하고 차-트를 보며, 다른 Staff-에게 염증 관련, 처방을 지시 한다. 그리고 그에게 고개를 돌려 약간 짜증 섞인 목소 리로 이야기한다.
-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누워-만 계시지 마시고 다소 걷기 불편-하더라도 조금씩 움직이세요.
식사 거부하고 링거에 의존해서 이렇게 누워만 계시면, 회복에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입맛 없더라도 식사는 제시간에 꼭 하도록 하세요.
그의 그곳은 거의 절단된 상태에서 봉합-하느라, 꿰맨 자국들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부기가 심해서 더 처참했다.
그는 시종일관 의사 말에 반응이 없다.
- 나중에 수술을 몇 차례 더 받아야 하겠지만, 형태는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고, 치료 잘 받으세요. 아셨죠?
대답이 없다. 아니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의사들과 담당 간호사가 나가고, 우리는 병실에 남아 그를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잠시 후, 홀로 남겨진, 그가 울기 시작한다.
소리 없는 흐느낌으로 시작된, 울음이 지금은 복받쳐서 꺽꺽대고 있다. 그는 이 순간, 분명히 좌절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얼마 전, 교도소 안에서 마주했던 그의 당당함은 모두 사라지고, 어느새, 한순간 완전히 늙어버린 왜소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몸을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그의 옆에서 감정 없는 사람처럼 그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좌절의 그늘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고통, 좌절, 그리고 다음은 죽음.
그에게는 아직 죽음이 남아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병실을 나와 비상계단을 내려오면서 보드를 원-위치로 되돌리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갑자기 매운 음식이 당-긴다.
- 사제님, 식사는?
- 그 인간 상처를 보니, 밥 생각이 전혀 나질 않는-구만,
그래도 먹어야-겠지?
사제가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하-품 한다.
- 그럼 부대찌개 어떠세요?
- 좋은 생각이야. 자 가지-
우리는 지난번 갔던, 부대찌개 집으로 갔다.
나는 라면-사리 하나와 밥을 추가하고, 얼-큰하게 먹기-위해 다진 청양고추를 따로 달라고 말씀드렸다.
잠시 후, 식사가 나오자, 사제는 입-맛이 없다는, 말과는 다르게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밥 위에 라면과 햄을 얹고, 수저로 밥을 퍼서 입으로 부지런히 나른다.
입맛 없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나도 정신 차리고 식사에 집중한다.
청양고추의 아린 맛이 기분 좋게 입안을 맴돌아 목으로 넘어간다,
마주 앉은 사제의 얼굴과 대머리에서 땀이 마구 샘 솟듯 넘쳐나고 있다.
지금, 그는 부지런히 한 손으로 땀을 닦으며,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폭풍 같은 식사가 끝나고, 둘 다- 만족한 모습으로 식당을 나와 미-드로 돌아왔다.
- 내방에서 차나 한잔할까?
- 예, 그러시죠.
사제의 방에서 함께 차를 마신다.
- 문도, 이제는 더 이상 그에게 안 가도 될 것 같군.
- 예? 아직, 일이 끝난 게, 아닌데,
그래도 될까요?
- 그는 수일 내에 스스로 결정하게 될 걸세-.
가장 소중한 게 사라졌으니, 세상에 어느 것도 그를 다시 살게 할 수는 없을 거야.
극단적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놈이라서, 결국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되겠지-.
- 그걸 어떻게 아세요?
- 그의 눈이 내게 말해-주더군.
당분간은 미-드에 머물면서, 그의 죽음만 확인하면 될 것 같구만. 그러니 일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그만- 끝내-지.
- 네-
우리는 당분간 미-드에서 대기하면서, 그의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 사제님- 여쭤볼 게 하나 있는데요.
- 뭔가? 말해보게.
- 혹시 “겨울이 있는 산”에 가보신 적 있으세요?
이번 휴가 때, 아이들하고 갔으면 하는데, 정보가 부족 해서요? 제 주변에는 다녀오신 분이 안 계셔서요.
지난번 장터에서 누군가 정상 부근이 매우 춥다고, 말씀 해-주셔서 아이들 스웨터를 짜 놓기는 했는데-.
- 스웨터?
푸 하 하-.
사제가 어이 없다는 듯 머리를 젖히고, 크게 웃는다.
그의 이런 태도에 갑자기 민망-해진다.
- 누가 그런 소리를 자네에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정보 같-구만. 잘못 전달된 내용 이거나-.
그 산에 겨울이 있기는 하네만, 아이들에게 스웨터를 입힐 만큼 그렇게 춥지는 않은데-
휴가 때마다 그 산을 갔지만, 한 번도 그렇게 춥다고 느낀 적은 없었거든.
- 아, 그러셨군요.
그럼, 제가 헛수고를 했네요?
그러시면,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좀 알려주세요.
- 자네는 왜? “겨울이 있는 산”이라고 하는지 아나?
- 아니요.
- 그 산에는 아래서부터 순서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네.
이곳 대부분 산은 가을까지 있는 게, 일반인데,
그 산은 정상 부근에 겨울이 있기-때문에 붙여진 이름 이라네,
그 산에 가면, 봄부터 겨울까지 한번에 다 경험해 볼 수 있지. 그런데 “겨울이 있는 산”은 아이들하고 같이 가기에는 꽤 높을 텐데, 아이들이 괜찮을까?
- 제가 산을 좋아하는-건 아니고요.
예전에 카-토랑 우-노가 겨울에 눈 오는 날이면 밖에서 눈 맞고 노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데려가면 좋아할 것 같아서, 이번에 한번 가보려고요. 무리하지 않게 일정을 잡아서,
- 아, 그래.
그렇다면 가보는 게, 좋겠군.
높이가 약 2,000미터부터 겨울이 시작되니까.
무리한 일정만 아니라면, 쉬엄쉬엄 올라가면 되겠군. 중간, 중간에 쉼터도 잘 꾸며져 있으니까.
그리고 장비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고, 자네는 애들하고 같이 덮을 목화솜이 들어간 침-낭이나 이불을 준비하면 되겠군. 셋이 사용하기에 조금 넉넉한 크기로,
- 어-휴, 감사합니다. 언제 그 많-은 장비를 준비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단번에 해결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진즉에 얘기했으면, 헛수고 하지도 않았을 텐데, 남자가 무슨 뜨개질이나 하고 말이지.
- 그런데 이번 휴가 때는 산에 안 가세요?
- 자네가 간다는데, 내가 양보-해야지.
- 같이 가셔도 되는데, 혹시 텐트가 작아서?
- 아니야,
텐트는 자네 같은 사람 셋이 누워도 남을 만큼 충분할-걸세.
그간 틈만 나면 산에 너무 자주 가서, 이번 휴가 때는 이곳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시설 보수하는 일에 지원-했네.
- 아! 그러셨군요.
나는 엄지를 치켜세운다.
요나 사제는 우락부락한 외모에 성격은 다혈질이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여리고 속이 깊은 그런 남자였다.
- 저 말인데. 아- 아닐세.
그가 무언가, 내게 말하려다가 그만 망설인다.
- 말씀하세요.
사제님-답지 않게-, 말하다 말고, 뭘- 망설 이세요?
- 아, 아니야!
- 궁금하게, 그러지 마시고, 왜? 그러시는지, 말씀해-보세요. 제가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제 고민도 해결해 주셨는데, 뭘 망설이 세요?
- 다름이 아니고, 그 알-로 아주머니 말이야, 조-이네.
그분, 평소에 뭘 좋아하시는-지, 자네- 혹시 아나?
나는 순간, 당황하고 많이 놀란다.
놀란 표정을 숨길 수가 없다. 그는 나의 이런 표정에 변명하듯 얘기한다.
- 아니-, 그냥- 뭐-
말-벗하기 좋은-분 같아서-.
언젠가 또 기회가 되면......
.사제가 우물쭈물하며 내 앞에서 말끝을 흐린다.
- 좋은 누님 같은 분이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꽃 사랑이 남달라서 자기 집 정원 뿐-아니라. 남의 집 정원에 핀 화초까지 돌보는, 그리고 무엇이든 자신이 아는-게, 있으면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쓰는, 그리고 이웃과 자신이 가진-것을, 나눌 줄도 알고 이웃에게 부족 한 게 있으면 보탤 줄 아는, 그런 분-이세요.
항상 짓는 미소는 보는-이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해주죠. 그리고 팬-케이크를 유난히 좋아해서 만드시는 모습을 자주 보는 것 같아요.
이게 제가 아는 전-분데, 도움이 될-까요?
- 아-,그래?
- 첫눈에 반하셨군요?
- 반하긴- 무슨, 괜한, 오해하지 말게.
그저, 대화가 통하는 좋은 말벗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머- 그런 거지, 음-
순간 얼굴이 빨개지더니 대머리까지 꽃이 핀 줄도 모르고, 내게 짐-짓 아닌-척하느라, 눈동자가 갈-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 좋은 감정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건 좋은-거래요.
- 자네, 날 놀리는-구만.
아주 기회를 잡았어?
어른 놀리는 거 아니야. 이 사람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여유 넘치던 사제가 당황하고 있는 이 모습이 왠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풍성해진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좋아하는 형태가 우정이든, 짝-사랑 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가 분위기가 어색한 듯 화제를 “겨울이 있는 산”으로 돌린다.
산에 올라가면, 각 계절이 머무는 경계마다 쉼터가 잘 꾸 며져 있어서 산을 찾는 방문객들이 항상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눈이 내리는 정상에는 이런 쉼터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눈이 오는 정상을 방문하는 등산객 대부분은 눈 내리는 겨울에 잠시 머물다가 가을 지역으로 다시 내려가 쉼터에서 숙박한다고 한다.
그러나 눈이 있는 풍경 속에서 밤을 보내려는 등산객은 자기처럼 가져간, 텐트에서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눈 내리는 밤, 홀로 모닥불에 끓여 먹는 커피는 오직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전혀 알 수 없는 천국의 맛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에 벌써-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 사제님, 제가 산에 가 있는 동안,
저희-집에 머무시면서 알로 아주머니와 친해지는 건, 어떠세요?
자원봉사는 출-퇴근 하시면 되지 않나요?
나의 이 제안에 그는 급-밝아진 표정으로 갑자기 박치기 라도 할 듯, 급하게 내게 머리를 들이대며 묻는다.
-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그리 해도 되겠나?
- 아- 그럼요, 전혀 부담-갖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없는 동안, 마당에 심은 콩에 물도 주시고-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좋지요.
- 그래? 좋-구만, 좋아! 고마-우이,
우린 어느새 친구가 되어,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대화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사제 방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 아이들과 눈-덮인 산에서 뛰어다니는 상상을 해-봤다. 그리고 저 멀리서 설-리가 웃으며 아이들을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