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사제

by 차섭


설-리와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다.

눈이 떠져서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옷을 걸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아침 안개가 계곡 끝에서 정상으로 서서히 피어-올라 오고 있었다.

상쾌한 아침-.
심호흡을 깊-게 해-본다.
봄-내음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리고 향긋하고 쌉쌀한, 진한-향기가 입안을 한-참 맴돌다가 이내 사라진다.

나는 다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씻을 접시들을 챙겨 다시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고 돌아서는 그때, 누군가 내 다리를 벅벅 긁-는다,

보지도 않고 카-토인 것을 안다.
우리는 물이 흐르는 낮은-계곡으로 갔다.
접시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주워 문질러서 닦는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거품을 이용해 기름기를 닦아내고 흐르는 시냇물에 잘 헹군다.

물은 차갑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촉이 매끄럽다.

카-토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고 있다.


나는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와, 스토브에서 재-를 수거해, 정해진 장소에 버리고, 카-토와 오두막 주변을 다니며 다음 방문자를 위해, 나무들을 모아다가 땔감을 채워 놓고, 서둘러 식사-준비를 했다.

배낭에서 버-너를 꺼내, 불을 붙여, 포트에 물을 끓이고, 집에서 미리 볶아서 준비한 커피를 베로 만든 여과용 천에 올리고, 물을 조심스럽게 부어가며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

커피가 물을 만나 거품을 만든다. 그리고 뽀글-거리던 거품이 방울로 변하고, 방울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더-는 못 버티고 팍-하고 터-진다.

그 순간, 커피의 고소한 향기가 오두막을 가-득 채우고 잠들어 있던, 그녀를 깨우고-야 만다.


- 어, 커피?
자느라, 일어나신 줄도 모르고. 아-함, 저도 커피요.


그녀가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하품 하고 두 팔을 깍지-껴서 위로 밀어 올리며, 알아 들을 수 없는 억양으로 커피를 달라고 내게 요구-한다.
나는 즉시 커피를 따라서 그녀에게 건넨다.


- 음, 이 향기- 끝내주네요.

그때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품 하고, 그녀를 바라보며 각자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활 처럼 구부리고 기지개를 켠다.


- 어구어구- 아가들 잘 잤어?


달-이는 자리에 엎드려 있는 상태로 꼬리를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우-노는 손으로 눈-꼽을 떼느라, 열심히 비비고 있다.


- 너희는 두유하고 쿠키가 오늘 아침-이야.


나는 볶은 콩과 곡물을 갈아 만든, 가루에 따뜻한 물을 부어 아이들 그릇에 담아 수저로 잘 젓어서 내어준다.

영양 만점인 두유와 콩과 밀가루를 같이 반죽해서 만든, 쿠키는 아이들에게도 참 좋은 영양식이다.

집에서 날이 춥-거나 비 오는 날이면, 가끔 두유로 아이들에게 멍-푸치노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지금 아이들은 두유에 쿠키, 우리는 커피에 쿠키를 맛있게 먹고 있다.

오늘은 “가을”이 머무는 능선까지 오르기로 했다.

우리는 짐을 꾸려 다시 길을 나섰다.


“여름”이 시작 되는 경계로 접어들자, 녹음이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약간-더운 정도다. 그리고 숲이 우거져서 그늘이 많-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아직은 견딜만-하다.

아이들도 어제와는 다르게 잘 따라온다,

적응이 된 것 같다.

우리는 계곡에서 잠시 쉬다 가기로 했다.


계곡을 내려오자마자, 설-리가 신발을 벗고 바위에 걸터 앉아, 물에 발을 담그며 좋아한다.


- 문-도씨도 들어와요.

어구 시원해, 얘들아! 들어와!


달-이는 벌써 낮은 물웅덩이로 들어가, 시원하다는 표현을 얼굴로 하고 앉아 있다.

달-이가 웅덩이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에 카- 토와 우-노도 용기 내서 성큼성큼 개울로 들어간다.

그리고 달이 하나만으로도 비좁은 웅덩이에 나란히 딱 붙어 앉아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긴다.

그때 아이들이 앉아 있는 웅덩이 너머로 낯-익은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온다.

-밖에 횡-재다.

가까이서 보니, 장날 본 적 있는 아담한 크기의 산-수박이 넝쿨 아래 여기저기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나는 그-, 잘 익은 것으로 두 개를, 꼭지를 살짝 비틀어 따서 가져온다.


- 그 열매는 뭐-예요?
- 산에서 나는 수박이요. 그래서 산-수박 이라고 부르죠.

크기는 작아도, 맛은 꿀-이에요.
아이들에게도 좋고요.
특히 더운 여름날 수분을 보충-하기에는 아주 좋은 과일이죠.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배낭에서 칼을 꺼내 사과-깍듯, 돌려서 깎는다.

수분을 머금은 빨간 속살이 먹음직-스럽다.
특히 개울에 발을 담그고 먹는, 수박은 여름에 그 시원함을 비교할 대상이 딱히 없다.

한 조각을 잘라, 설-리에게 먼저 건넨다.

그녀가 수박을 입에 넣고, 말을 잇지 못한다.


- 그냥 꿀이네요. 꿀!

그녀를 보고 알아챘는지, 아이들이 내 앞에서 서로 먼저 달라고 아우성-이다.
나는 달-이부터 차례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특히 달-이가 너-무 좋아한다. 눈에서 하트를 계속 나에게 발사하며 더 달라고 얘기-한다.
나는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하나를 더 가져와, 아이들에게 나눠서 먹인다. 물론 당연히 달-이가 덩치가 큰 만큼 많- 먹는다.

우-노와 카-토의 입 주변이 붉은색으로 보기 좋게 물들어 있다. 나는 두 아이를 번갈아 씻기고 수건을 꺼내, 물기를 닦고 털은 대충 말린다. 볕이 있고, 바람이 선선히 불어서-인지 잠깐 사이에 털이 다 말라 있다.

즐거운 여름, 개울에서의 짧은 피서를 끝내고, 우리는 "가을" 로 다시 출발했다.


한참을 오르니, 청청한 숲이 점점 줄어들고 갈대-숲이 우리 눈앞에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가을”이 있는 높이에 거의 다다른-듯 보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즐겁게 잘 따라오고 있다.

모두 에너지가 넘친다.

특히 달-이는 산행을 하면서 우리들과 더욱 친해-진 느낌이다. 지금은 선두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달-이가 가니, 카-토도 우-노도 그 짧은 다리로 달-이를 쫓아 열심히 씩씩하게 걷고 있다.


드디어 숲이 끝나고 갈대가 무성한 광활한 평원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났다. 우거진 갈대 사이로 나무 계단이 정상을 향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더 높은 곳에 오르자, 우측에 산양과 염소 무리가 벌판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멈춰서 우리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가던 길로 계속 움직인다.


부지런히 계단을 오른다,

우리가 지칠 때쯤 다시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단풍이 곱게 물든 활엽수와 침엽수들이 사이좋게 함께 군락을 이루고 있다. 상수리나무와 밤나무도 보인다. 심지어 밤나무에는 카-토와 우-노가 좋아하는 커다란 밤이 입을 쩍- 벌리고 주렁주렁 달려 있다.


- 본 김에 밤 몇 알 주워 갈까 봐요?
- 저녁은 밤으로 맛있는 뭔-가 만들어-먹을 수 있겠네요.


나는 밤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설-리와 아이들을 있게 하고,-만 밤나무 근처로 움직였다.

혹시 바람에 밤이 떨어져서 찔릴까-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나무 위를 쳐다보며 밤나무로 접근했다. 최대한 빨리 주워서 나와야 한다,

나무 주변에 잘 여문 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나는 적당한 크기에 색깔이 진하고, 윤기가 흐르는 것으로 두 개를 얼른 집어서 뛰어나왔다.

성공이다.

나는 예상치 못한 횡재에 신이 나서 밤을 배낭에 얼른 집어 넣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언덕 너머에 작은 연못이 보인다.

그 연못 주변에 코스모스가 떼-로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로, 구절초로 보이는 엄청나게 큰 꽃들이 일렁이는 바람에 우리를 마중 나와,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연못 너머 양지바른 언덕에 A자 형태로 지어진, 내가 지금 사는 집과 흡사한 형태의 작은 로그하우스 여러 채가 거리를 두고 흩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예상보다 일찍 쉼터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그리고 지금 로그하우스 외부 데-크에 앉아, 석양을 바라 보며 단풍으로 가득한 가을 산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석양의 꼬리가 거의 다 사라질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안-으로 들어왔다.

주운 밤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손질하기가 쉽지 않다.

집이라면 커다란 냄비가 있어서 겉껍질만 벗기고 그대로 삶-을 수 있을 텐데, 이곳에는 큰 냄비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칼로 속껍질을 벗기기에는 찐-이 너무 많아서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겉껍질만 벗겨서 스토브 안에 집어 넣고 속껍질을 태우거나 그을려서 껍질을 제거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우리가 예상한 대로 밤을 불에 그을려서 속껍질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리가 이 밤으로 스튜를 만들기로 했다.


지금 우리는 그녀가 만들어-준, 밤-스튜를 맛있게 먹고 난로-가에 앉아 있다.

설-리는 로그-하우스 구석에 누군가 세워 놓은, 통기타를 꺼내, 기-타의 줄을 조율하고 있다. 그녀는 못-다루는 악기가 없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그녀가 기타를 조율하는 모습을 조용히 엎드려서 바라보고 있다.

조율이 끝나자, 그녀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귀에 많이 익-은 곡이다.
I feel Love, 영화 벤-지의 주제가-다.
그녀가 신나는 비트에 경쾌한 리듬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그녀의 외모 만큼이나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나는 비트에 맞춰 박-수만 열심히 치고-있었다.
잠시 후,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가만히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던, 달-이가 그녀의 노래에 맞춰 하울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녀와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 힘든 멋진 듀-엣 공연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 도련님들은 아빠 처럼 관객석을 굳건히 지키고 앉아, 시종일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역시 아이들은 아빠를 닮는다.


달-이가 노래를 했다. 그녀와 다시 만나,

천국에서-


나는 순간 울컥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로 달-이를 꼭 안아줬다.

달-이도 그녀와 함께했던, 그 순간을 기억 속에 사진 처럼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엄마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겨졌던 그-날, 엄마와 함께 노래-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많-이 그리워 했었나 보다.


지금은 설-리가 달-이의 목을 부둥켜 안고, 기쁨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드디어 내일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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