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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추픽추 (2) _ 버킷리스트 달성의 감격

7/7일 아구아칼리엔떼스(페루) - 마추픽추

by 오현정

출구를 나가면 입장 전 갔던 화장실 옆쪽으로 나오는데 그 앞쪽에 바로 주저앉아버렸다.

그러고는 아빠한테 짜증 짜증 짜증 짜증을..... 하....


다행?스럽게도 2시간 정도 되는 시간이라 구경은 다 하고 나온, 그냥 평범한 마추픽추 관람 시간이었다.

아니!!!!!!!!!!!!!!!!!!!!아니야!!!!!!!!!!!!!!!!!!!!!!!!!!!!!!!!

나는 부족하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변 외국인들이 조금 쳐다보았다.

개의치 않고 한숨, 짜증, 원망, 실망의 표현을 하고, 눈물을 조금 흘렸다.


화면 캡처 2024-03-02 203411.png 하....... 나... 나 진짜 정말 .. 아빠!!!!!!!!!!!!!!!!!!!!!!!!!!!!


아빠는 어찌나 민망하고 할 말이 없었을까

카메라 렌즈캡 달아 놓은 고리가 떨어졌다며 나에게 내밀었다.

끼워보라고, 아빠 손가락 두꺼워서 안 들어간다고.


나도 아빠의 민망함, 미안함이 느껴져서 해주기는 했다.

느끼기만 할 거야!!!!!!!!!!!!!!!

내 마추픽추!!!!!!!!!!!!


(내 일기에는 더 심하게 적혀 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엄마, 아빠가 이제 그만 내려가는 버스 타자고 했다.

'다음 거 탈 거야!!!!!!!!!!!!!!!!!!!!!!!!!' 하고 계속 앉아 있었다.


이후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일어나 버스 줄을 서는데 엄마가 바지를 털어줬다.

그리고 나는 아빠 등 뒤에서 이를 악물고 '짜증나 내가 아니라고 했지 못 돌아온다고 했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 있던 꼬마가 하는 말을 분명하게 들었다.

‘저 여자 미친 것 같아’ 나보고 한말 맞니?

ㅎㅎ 아줌마 영어 다 알아들어 ㅎㅎㅎ


하.... 다시 생각해도.. 아빠!!

내려가는 버스에서는 엄마랑 둘이 앉아서 아빠 쳐다보지도 않고 둘이 사진을 찍었다.


화면 캡처 2024-03-04 145156.png 내려오는 버스에서 본 마추픽추 모습 ㅠ.ㅠ 안녕


다시 마을에 도착했다.

어제 그 중국집 음식을 엄마가 너무 괜찮아하셔서 그곳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일단 갈증이 너무 난다며 맥주 한잔 하러 가자고 했다.


그때 바로 옆에 건물 2층에 괜찮은 식당이 보였고 pub이라고 적혀 있길래 그곳으로 향했다.


나는 이쪽으로 가면 입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 아빠가 다리 위로 올라가서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다.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었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향했다.


응, 역시나 내가 맞았다.

물론 아빠가 말한 길로도 갈 수 있었지만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곳에 메뉴판을 세워 둔 것이 보였다.

아무 말 없이 메뉴판 보고 직원에게 술만 마셔도 되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OK.


엄마는 이미 내 옆에 있었고, 아빠는 멀찍이 보고 있다가 따라 들어오셨다.

밖이 잘 보이는 테라스 쪽에 앉아서 나는 Pisco shower, 아빠는 맥주, 엄마는 모히또를 시켰다.


화면 캡처 2024-03-04 155643.png 기분 좋게 짠~


갑자기 엄마가 울컥한다.

'나는 여기 이제 못 오잖아' 나도 울컥한다.

아빠도 울컥한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또 다 잊었다.


역시 여행은 이런 거지, 싸우고 화해하고.


술이 나와서 짠~ 아빠와의 유일한 평화는 술뿐이다.

아쉬움은 금방 잊히고 금세 내가 마추픽추를 다녀왔다는 뿌듯함에 취했다.


맛있는 Pisco shower에 취했다. (두 잔 마시고 올걸)

경치도 좋은 테라스 쪽에 앉아 꽤 오랜 시간 동안 아구아 깔리엔테스의 다리와 계곡과 산의 경치에 취했다.


화면 캡처 2024-03-02 204811.png 날씨도 좋고 기분도 ㅎㅎ .. 더 좋을 수 있었는데
화면 캡처 2024-03-02 204341.png 폅의 바로 아래가 마추픽추행버스 기다리는 곳이었다.

** 마추픽추는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통 날씨가 오후에 밝게 개여서 많은 사람들이 오후에 가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마을로 다시 내려왔을 때,

이미 2시가 넘었었는데 이때도 많은 사람들이 버스 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 올라갔다가 천천히 보고 내려와서 아구아 깔리엔테스에서 자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일정을 오전에 마추픽추 관람을 하고 내려와서 바로 기차 이동을 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우리 가족의 남미 여행은 마추픽추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기념품을 사자고 했다.

그래서 아구아 깔리엔테스 역 앞에 있는 시장에서 쇼핑을 했다.


짧은 스페인어가 또 빛을 발했다.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것들을 한 아주머니께 모두 사버렸다.

한곳에서 다 사고 흥정하기!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화면 캡처 2024-03-02 205101.png 깊숙한 곳에서 물건을 찾아주시고, 다른 색들도 추천해 주시던 친절하셨던 아주머니 ㅎㅎ


술의 영향인가? 그렇게 야무지게 기념품까지 사고 어제저녁을 먹었던 식당으로 갔다.

엄마, 아빠는 국수를 또 시키고, 나는 다른 테이블을 보고 생선 튀김을 시켰다.

이 집 정말 맛집이다. (여기서도 Pisco shower 마셨어야 했는데!)


화면 캡처 2024-03-02 210022.png 무슨 생선일까 그냥 맛있었다.
화면 캡처 2024-03-04 150800.png 있었구나 맛집 사진!! 직원들도 일 잘해서 좋았당 ㅎ


배부르게 먹고 짐을 맡겨 두었던 숙소로 가서 짐을 찾았다.

숙소 관리자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니 짐을 보관하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는 많은 가방들이 있었다.


아구아 깔리엔테스에서 숙소에 짐을 맡기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쇼핑한 것들을 캐리어 이곳저곳에 잘 정리해 넣었다.

아빠가 ㅎㅎ

그러고는 캐리어 튼튼하게 잠근다고 벨트 묶는데 힘들어하셨다.

엄마랑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런 아빠를 구경했다.

'엄마 저거 저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 하면서

뭔가 그냥 재밌길래 영상을 찍었는데

거의 2분 동안 벨트와 싸움을 하셨다.


KakaoTalk_20240304_151042052.jpg 아빠 화이팅 튼튼하게 잠가줘 ㅎㅎ


화면 캡처 2024-03-04 155821.png 아구아 깔리엔테스의 계곡 _ 그냥 너무 예쁘잖아


짐 정리를 마친 우리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잠시 가지고 쿠스코행 기차에 올라탔다.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기차 이동을 했다.

(아구아 깔리엔테스 -> 오얀타이탐보)


그리고 오얀타이탐보 역에서 밴으로 환승 후, 두 시간 정도의 이동 끝에 쿠스코에 다시 도착했다.

14시 출발 - 18시 30분 도착.


** 기차 표 값에 밴 환승 가격이 포함되어 있다.

오얀타이탐보역 대기실 옆에 주차장이 있는데 밴마다 번호가 적혀 있어서 찾아가면 된다.

환승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사님들이 승객들을 충분히 기다려 준다.


쿠스코로 넘어오는 밴에서 엄마의 고산증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고산 지대에서 편하지 않은 차로 좋지 않은 길을 장시간 이동하는 것은 무리였다.


엄마의 상태가 점점 신경이 쓰였다.

엄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저녁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밴 내리는 장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한식당을 발견했다.

무조건 이곳이다.


화면 캡처 2024-03-02 205614.png 제 등에는 주황색 배낭 / 앞에는 보조 가방 있었어요.


엄마를 쉬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 밴에서 내리자마자 식당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덕이 나왔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그리 높지도 않고, 길지도 않았을 거리였다.

하지만, 고산병 증세가 있던 엄마에겐 천리길 같이 느껴졌을까?


이때 아빠가 막~ 올라갔다.

혼자서.

'왜 저래 진짜!!!!'

라고 말했다.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다.

중간중간 잠시 멈춰 서서 숨만 고를 뿐.


나중에 아빠한테 왜 그렇게 혼자 가냐고 말하니까,

본인의 고산병이 어느 정도 심한 것인지 테스트 하고 싶으셨단다.


분노 게이지 상승.......................................

말이라도 하던가!!!!!!!!!!!!!!!!!!!!!!!!!!!!!!!!!!!!!!!

식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안 보일 정도로 사라지면 어떡해!!!!!


엄마는 몇 번을 쉬어가며, 간신히 언덕의 끝에 도착했다.


한식당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라면 두 개와 김밥 두 개.

고산병 증세로 조금 힘들던 엄마는 양껏 드시지 못하셨다.


반면 아빠가 너무 잘 드셨다.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잘 드셨으니 만족이다.

응, 아빠 라면 좋아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는 고산병 없는 것이 확실하다.


화면 캡처 2024-03-02 210322.png 쿠스코 한식!! 최고 ㅎㅎ


바로 공항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너무 일정이 빠듯하고 피곤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일정과 비행기 시간 때문에 조금 무리하게 잡았다.)

엄마의 상태를 보니 너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산병의 증세를 말로만 들었고, 경험해 보지도 못했으니 생각이 깊지 못했던 것이다.

** 고산병이 있으신 분들은 꼭 여유 있게 계획 세워가시길 ㅠ.ㅠ


하지만 이미 비행기를 예매했고 다음 일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공항으로 향했다.


보딩 시간까지 4시간이 넘게 남아있었고, 페루를 떠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이 와중에 Pisco shower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란 년... ㅠ.ㅠ 에라이 효년아, 방금까지 그렇게 엄마 걱정해놓고?)


결국 걷다가 들어간 식당에서 아빠랑 나랑 Pisco shower 한 잔씩 더 마셨다.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Pisco shower를 마시고 택시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화면 캡처 2024-03-04 152549.png 이 와중에도 마시고 싶다. ㅠ.ㅠ


공항에서의 긴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다.

엄마는 긴 의자에 그냥 누워 버리셨다. 엄마 노숙을 하게 만들었다.

미안해 엄마.


화면 캡처 2024-03-02 210509.png 장거리 비행을 걱정하며 챙겼던 목베개와 안대가 톡톡히 몫을 해냈다.

아빠는 그래도 버티셨다.

나도 자면 안 된다는 생각에 버티려 했지만 조금 졸았다.

아마 이때 아빠도 같이 좀 졸았던 듯하다.


둘이 비슷하게 잠에서 깨서 커피 한잔 나눠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

아마도 둘 다 책임감이었을까? 그냥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일까?


참지 못하고 몇 번 마셨지만, 낮에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음...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으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

엄마, 아빠를 안전하게 한국까지 모셔야 한다는 것.

(나는 남고 싶었고 ㅎㅎ)

그런 마음? 책임감이겠지, 나름의 압박감?이 있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렇게 리마행 비행기를 탔다.


남미 여행의 가장 큰 목적. 첫 번째 목적지.

마추픽추를 너무나도 기분 좋게 성공했다.


부모님은 아마도 이번 마추픽추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한 번 더 같이 올 수 있다면 기적일까?

이미 갔다 온 것도 기적 같지만... ㅎㅎ


나는 꼭 다음에 다시 올 것이다.

쿠스코에서 일주일을 머물 것이고, 마추픽추도 트래킹 코스로 두 번 갔다 와야지.

그리고 Pisco shower 하루 3잔씩 마셔야겠다.


결론이.. ㅎㅎㅎ 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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