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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추픽추 (1) _ 신성한 광장에서의 고수레

7/7일 아구아칼리엔떼스(페루) - 마추픽추

by 오현정

드디어 대망의 날이다.

우리 가족에게 남미 여행 = 마추픽추였다.


새벽 내내 마추픽추를 위한 축제로 아빠는 잠을 못 주무셨다고 했다.

내 가방에 있던 귀마개를 용케 찾아내어 잠을 청하려던 흔적이 있었다.


눈 뜨자마자 창가로 가서 날씨 확인을 했다.

진작에 날씨 확인을 마친 아빠는 날씨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다.


잠기지 않는 창문을 통해 산과 계곡이 예쁘게 보였다.

그리고 날씨가 정말 화창했다.

구름이 아주 조금 있었지만 오히려 저런 구름은 사진을 예쁘게 나오게 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화면 캡처 2024-02-29 150533.png 창문 너 너.. 넌.... 꽉 잠기지도 않고.... 활짝 열리지도 않았지


준비하고 기분 좋게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10가지도 되지 않는 음식이었지만 깔끔하고 맛도 좋았다.

방 컨디션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화면 캡처 2024-02-29 150251.png 저 빵이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남미는 커피가 다 맛있다!!


기분 좋게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나오면서 짐은 숙소에 맡겼다.

아구아 깔리안테스의 모든 숙소에서는 마추픽추 여행자들을 위해 짐을 맡아준다. 무료로!


어제 비싸게 끊어 두었던 마추픽추행 버스를 타러 갔다.

어디서 버스를 타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가니 이미 긴 줄이 있었다.


화면 캡처 2024-02-29 150345.png 경쾌한 아빠의 발걸음 _ 귀여운 가방 ㅎㅎ


화면 캡처 2024-02-29 150412.png 마추픽추행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중


버스는 자주 있어서 생각보다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서 시간이 금방 갔을까?


이곳에 줄을 서서 버스 티켓뿐만 아니라 마추픽추 입장 표까지 확인을 했다.


** 마추픽추는 1일 입장 제한을 하고 있어서 티켓을 미리 구매하고 가야 한다.

나는 한국에서 예매를 하고 프린트까지 완료해서 준비를 마쳤다.

화면 캡처 2024-02-29 151003.png 왼쪽이 마추픽추 입장 표! 오른쪽은 잉카 레일 티켓!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버스 안내를 도와주는 사람이 3명인 팀 있냐고 물어봐서 먼저 버스를 탑승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버스를 탑승했기에 엄마, 아빠랑 떨어져 앉았다.


내 옆에는 혼자 앉은 아저씨였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꽤나 시간이 걸렸고 (30~40분 정도) 생각보다 높게 올라갔다.


이동 중에 옆에 앉은 아저씨가 마추픽추 관련 책을 꺼내 들었다.

처음에는 혼자 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관광객인 줄 알았다.

책을 슬쩍 쳐다보니 마추픽추에 있는 동식물 관련 책인 듯했다.

나는 무엇이냐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화면 캡처 2024-02-29 151357.png 이 새는 마추픽추 부근에서만 사는 새라고 했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먼저 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기분이 너무 좋았나 보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나의 마추픽추 방문기에 날씨 다음으로 최고의 행운이었다.


그 아저씨는 마추픽추 가이드였다.

'어디서 왔냐, 오늘 날씨 좋다, 이 꽃은 마추픽추에서만 볼 수 있다. 이 새는 여기만 사는 새인데 오늘 아침에 처음 봤다' 등등 나에게 많은 설명을 해 주었다.

역시, 내가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가장 맘에 들었던 설명은 마추픽추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당연!)

물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물은 마셔도 괜찮지?'라고 하니 꿀 팁을 주었다.


물을 마시기 전에 뚜껑에 조금 따라 바닥에 한번 버리고 마시라는 거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수레랑 비슷하다!!!!!

(고수레 : 민간신앙 행위 - 음식을 먹기 전 자신의 소망을 돌아보면서 신성한 존재에게 소망을 기원하는 의미와 함께 음식을 제물로 올리는 행위 _ 지식백과 설명 ㅎㅎ)

이 꿀 팁을 알고 행한 한국인 관광객, 아니 전 세계 관광객이 얼마나 있을까?


나에겐 엄청난 꿀 팁이었다.

신성한 마추픽추에서의 고수레라니!!!!!!


가이드에게 엄청난 고마움을 표했다.

(마추픽추를 도착한 후에는 버스에 내려서 엄마, 아빠에게 박하사탕을 받아 가이드를 다시 찾아 전달해 주었다. 너무 고맙고 마추픽추 여행의 정말 큰 행운이었다. 마치 남은 남미 여행에도, 인생에서도 행운만이 가득할 듯한 기분이었다.)


모두 지키는 기본이지만, 가이드가 말해주었던 화장실을 꼭 다녀가라는 팁도 지켰다.

여자 화장실은 역시 줄이 길다.

살짝 기다렸다가 돈을 내고 (1인 2 솔) 다녀왔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마추픽추 입장!!!


그런데 아빠가 또... 또... 하... 서둘러 막 가자는 것이다.

사람들 많으니 얼른 올라가 한적한 곳에서 보자고.


화면 캡처 2024-02-29 151914.png 앞서가는 아빠와 조금 힘들어하셨던 엄마 _ 아빠!!!!!!


나는 분명히 설명했다.

- 이곳은 코스가 나뉘어 있고 사람들이 많아서 한 방향으로만 구경을 해야 한다.

그곳을 지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 -

이 설명은 여행 전부터 말했었다.


그렇게 나와 아빠는 시작부터 다퉜다.


산길을 올라가는데 어찌나 날씨가 좋던지 땀이 났다.

약간의 트레킹 느낌이 있었다.

배낭여행처럼 오는 사람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마을에서부터 트레킹 코스로 올라왔다.

그 안에서도 마추픽추 산의 신비로운 길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마추픽추를 또 올 것이라고 다짐했고, 그땐 트레킹 코스로 올라올 것이다.


화면 캡처 2024-02-29 152205.png 눈앞에 나타난 마추픽추!!!!


마추픽추가 딱 보이는 순간, 감격의 눈물이 나올 뻔했다.

버스에서부터 울컥했었다.


그렇지만... 곧바로 이어진 아빠와의 말다툼으로 싹 사라졌다.


이번엔 사진이 문제다.

아빠는 본인이 강력하게 원하는 사진 구도가 있었다.


나는 아빠가 원하는 대로 맞춰 찍어 주곤 하는데,

아빠는 '그게 사진이냐, 어디다 써먹냐' 등의 말을 하며 내가 찍어달라고 하는 것은 무시를 했다.

으아!!!!!!!!!!!!!!!!!!!!!! 제발!!!!!!!!!!!!!!!!!!!!!!!!!! 프사 건져야 한다고!!!!!!!!!!!!!!!!!!!!!!!!!


화면 캡처 2024-02-29 152404.png 아빠 서약서 내용인데... 문신을 새겨 갔어야 했다. 물론 나도.


마추픽추에서는 포기할 수 없기에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나 좀 이쪽에 나오게 뒤에 배경도 이렇게 나오게 찍어 달라고, 그게 장애물이 아니고 배경의 한 부분이라고! 이건 마추픽추 아니냐고!' 소리를 쳤다.

결국 싸워 이기니 만족한 결과물이 나왔다.


옆에서 보던 엄마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셨다.

엄마는 정말 고마워 ㅠ.ㅠ


그 장엄한 마추픽추를 보며 아빠와 다투다니, 그렇지만 모두 기분이 좋으니 또 함께 사진을 찍는다.

서로 ‘여기 서 봐, 저기 서 봐’ 하며 더 나은 장소에서 나은 배경에서 찍어주기 위해 노력을 했다.


화면 캡처 2024-02-29 152929.png 감동 ㅠ.ㅠ 내가 직접 찍다니


드디어 물 마실 시간!!! 신성한 광장에서 마시기로 택했다.

사실 이전에는 구경하고 사진 찍느라 다들 목마른 줄도 몰랐다.


다른 관광객들이 있는데 광장 중앙에서 물을 마시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했다.

약간 벗어난 자리에서 일단 물병을 꺼냈다.


마추픽추는 관광객을 관리하기 위해 곳곳에 관리자들이 있다.

옷을 맞춰 입고, 명찰도 하고 있어 누가 봐도 관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근처에 서있는 관리자 아저씨를 향해 물 뚜껑에 물을 조금 따라서 바닥에 버리려는 시늉을 했다.

혹시 모르니깐... ㅎㅎ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는 영상을 찍고 아빠, 엄마 순서로 고수레를 하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터벅터벅 오셨다!!!!!!!!!!!!

그리고 물 뚜껑을 가져 가시더니, 열심히 몸으로 말해요 - 버전으로,


'여기 물 버리면 다른 사람이 와서 밟는다.',

'버리기 전에 하늘을 향해 한번 들어라',

'물은 성벽 아래쪽에 버리고 마셔라'를 알려주셨다.


세상에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렸다.

진짜 크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우리 가족이 즐거워하자 아저씨도 활짝 웃으며 쿨하게 자리로 돌아가셨다.

나는 눈 한번 마주쳤을 뿐인데 ㅠ.ㅠ 감동

그분 입장에서는 어설프게 알고 있는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으셨나 보다.


그렇게 신성한 광장에서 우리 가족은 신성하게 물을 마셨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이 기운 그대로 좋은 일만 가득하길!

화면 캡처 2024-02-29 153243.png 자 이렇게 하늘에 인사하고 - 성벽 아래쪽에 물을 버려야 사람들이 안 밟지
화면 캡처 2024-02-29 154023.png ㅎㅎ 고수레!!!!! _ 행운이 가득하길

그런데 이때 나는 엄마, 아빠의 영상을 의식부터 마시는 장면까지 모두 담았는데,

아빠? 나는 물 마시는 장면이 없다?? ㅎㅎㅎㅎㅎㅎ 영상에 나는 물만 버리고 끝나더라 ㅎㅎㅎㅎ


신성한 광장에서의 신성한 시음 이후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신께 예의를 지켜 인사를 드린 기분이랄까. ㅎㅎ


엄마, 아빠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고산 증세도 기분 덕분인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마추픽추에서 하트 구름까지 보았다!


화면 캡처 2024-02-29 154416.png 무튼 하트 맞음


버킷 리스트를 이루고 있다는 기분에 나는 마추픽추를 오래도록 즐기고 싶었다.

천천히 하나하나 둘러 가며.


그렇지만 아빠는 ‘이쪽이다, 저쪽이다.’를 계속해서 말했다.

나도 확실하지 않으니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해, 천천히 좀 가봐, 눈치 좀 보게'라고 말하고 중간중간 관리자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아빠는 '이쪽으로 가서 올라갔다가 저쪽으로 내려가서 나가는 거라니깐'라고 말했다.

왜??? 왜?????? 처음 오는데 어디서 그런 확신이 자꾸만 나오는 걸까.

아빠가 너무 확신을 가지고 얘기하고, 나는 확신이 없으니 따라갔다.


그렇게 출구가 나와 버렸다.

!!!!!!!!!!!!!!!!!!! 으아으ㅏ으아ㅡ아어ㅏㅏㅡ라어ㅏ으


그때의 기분은 정말..... 출구가 보이자 갑자기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눈물이 차오르면서 ‘발로 다 차버리고 싶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다시 못 돌아간다고 했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칭얼칭얼.

엄마가 웃으면서 '엄마가 말해 줄게 다시 돌아가'라고 했다.


꽤 있던 사람들이 출구 앞쪽에만 없더라....


아빠도 말이 없어졌다.

당황하셨겠지. 출구가 나와버렸으니.


나는 마추픽추를 본 감격에도 꾹 참았던 눈물이 났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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