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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라파즈 (2) _ 평화로운 하루의 마무리

7/8일 라파즈(볼리비아)

by 오현정

언덕의 앞, 뒤로 장관이 펼쳐졌다.

같은 색의 건물들 틈 사이로 길이 있었다.

어떻게 그곳을 운전해서 다니는 것인지 너무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풍경을 봤다면 좁다, 답답하다, 위험하다 등등의 부정적인 모습만 보였을 듯한데,

역시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고 어떤 상황도 아름답게 보여주는 힘이 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타고 El alto 전망대 도착했다.

사실 크게 볼 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을 안 오면 라파즈 인증샷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El Alto 4095m ㅎㅎ


그곳에서 밥을 먹을 생각도, 피곤해서 밖을 돌아다닐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서 가방에 있던 과자를 (비행기에서 준 간식) 먹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있었을까. 다시 내려가기로. 내려가는 텔레페리코를 탔다.


내려가는 길에는 또 다른 풍경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정말 빼곡해 보인다.


사람들의 주거 생활 사이에 있다는 공동묘지도 하늘에서 구경하기!

아빠가 미리 알고 계셨던 정보가 있어서 아빠에게 공동묘지 설명을 들었다.

(아빠 고마워 - 사진을 못 찍었다 ㅠ)


그리고 너무 신기했던 운동장!!

축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빼곡한 집들 사이에 넓은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빼곡한 집들 사이에 스탠드석까지 있는 축구장! 신기했다 ㅎㅎ


그런데... 우리 가족... 적당한 따뜻함과 햇살, 조용한 텔레페리코 안에서 ... 셋 다 졸았다.

꽤 오랜 시간 내려가는데 엄마, 아빠가 조는 것을 보고 나도 졸았다.


내려서 또 열심히 길을 걷는다.


아직도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았었다.

매연과 크랙슨,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헤치고 얼른 숙소를 가서 라운지에서라도 쉬기로 했다.


숙소 들어가기 전, 근처 터미널에서 환전을 하고 갔다.

워낙 치안이 안 좋다고 해서 나름 긴장을 하고 엄마와 이중으로 돈을 확인하고 나왔다.


터미널 앞 풍경 _ 멀리 보이는 언덕의 집, 조금은 노후된 차들


숙소에서 12시 체크인을 해줬다!

너무 고마웠다. 기뻤다.

엄마, 아빠가 피곤해 하셨는데 겨우 한시름 덜었다.

(일정을 무리하게 짠 내 탓이다.)


숙소를 정할 때 경치 하나 보고 예약을 했었다.

그래서 위치가 라파즈 주요 관광지인 마녀 시장과는 거리가 꽤 있었다.


저렴한 가격의 숙소로 기대가 없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간 숙소는 생각보다는 좋았다.

두 개의 넓은 침대, 큰 테이블, 볼일은 없지만 TV, 여분의 담요까지.


최고는 경치!

역시 경치 하나는 끝내줬다.


방에서 보이던 라파즈 언덕의 모습


엄마는 숙소에서 쉬고, 아빠와 둘이서 점심을 사러 나갔다.

나와 아빠의 유일하게 사이좋은 시간. 술 살 때, 마실 때.


숙소 근처에 포장마차처럼 보이는 허름한 곳에서 음식 포장을 했다.

아빠가 그림을 보고 메뉴를 골랐고, 나는 열심히 설명을 했다.


거의 9개월의 기간 동안 틈틈이 배워간 스페인어는 식당에서 가장 유용하게 써먹었다.


음식 포장 주문을 해 두고, 옆에 구멍가게 느낌의 슈퍼로 갔다.

아빠와 나의 평화로운 술 고르기 시간이다.

'저거, 저기 있다.'

아빠는 위스키 작은 것을 기어코 찾는다.


나는 열심히 설명해 얻어냈다.

맥주 두 캔, 물까지 구매 성공.


다시 음식점으로 가서 포장한 음식을 들고 호스텔로 들어갔다.


아빠가 방에서 먹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하는데 테이블이 떡하니 있는데 안될 이유가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사 온 음식을 펼치고 시원한 맥주를 깠다.

그냥 빨리 먹자!


조금은 부실한 점심과 라파즈의 모습


건조하고 추운 날씨로 편도가 계속 불편했다.

이렇게 목이 답답할 때는 아이스크림이 최고지만, 시원한 맥주도 잠시 목의 답답함을 해소시켜 준다.


크~ 비위생적이고 제대로 된 주방도 없는 곳에서 산 음식들이 다 너무 맛있었다.

사실 비위가 약한 편이신 엄마는 가게 상태를 못 보셔서 다행이었다.


고기도 부드러웠고, 엄마, 아빠는 국물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만족하셨다.

따로 챙겨준 소스도 매콤 새콤하니 맛있었다.

맛있는 찐 현지 음식과 맥주까지 완벽했다.

(심지어 메뉴 세 개 가격이 45볼리비아노 8000원 정도였다.)


간단하게 배만 채우신 엄마는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드셨다.

나는 아빠와 평화의 시간을 조금 더 가졌다.


어느 정도로 평화롭냐 하면, 창문으로 보이는 숙소 경치가 너무 좋아서 맥주를 들고 사진을 찍으니,

아빠가 얼른 맥주 옆에 위스키를 가져다 들었다.

재밌어 정말.

그렇게 둘이 한참을 먹으면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했을까?)


이것도 같이 찍어야지 _ 하며 냉큼 ㅎ


아빠와 나는 다 먹고 쓰레기를 봉지에 싹 싸서 냄새도 나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렇게 적당히 배를 채우고 아빠도 낮잠에 들었다.


'La Paz'는 스페인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그래서 도시가 주는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술 한 잔에 평화로워진 것인데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일정 없이 쉴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일까?

나도 편안하고 걱정 없이 낮잠에 들었다.


4시. 두 시간 정도 잤으려나.

아빠가 깨웠다.


깨고 나니 세상에 방이 너무 추웠다.

엄마는 옷을 껴입고 자고 있었고, 나는 팔짱을 끼고 꼼짝 않고 잠을 잔 것이었다.

방에 여분으로 있던 담요로도 부족했다.


아빠가 너무 춥다며 저녁도 먹을 겸 나가서 해지기 전에 걷고 오자고 했다.

일단 너무 졸렸다. 그래서 살짝 귀찮았다.


엄마도 너무 피곤해하는 듯했는데, 엄마가 일어나더니 나가자고... 휴.. 그럼 가야지.

일어나 옷을 입고 간신히 거리로 나갔다.


그냥 뭐.. 아까와 똑같은 거리였다.

많은 차와 매연, 엄청난 운전 스킬과 눈치로 길 건너기.


일단 대책 없이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웨딩 카도 보고 축하한다고 박수도 쳐줬다.


신랑하고 눈이 마주쳐 인사도 해줬다 ㅎㅎ


그렇게 한 바퀴 도는데 30분도 안 걸린듯하다.

다시 숙소 근처 길로 왔을 때, 저녁 먹을 곳을 찾아 헤맸다.

숙소 위치가 정말... 별로였다.

(다시 한번 더 _ 경치 하나 보고 예약한 곳)


마땅한 식당이 없었고, 혹시나 하고 터미널 안까지 가봤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결국 오믈렛을 파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믈렛이 안된 단다.

현지 음식 두 개를 시켰다.


소지 감자튀김과 밥, 고기, 계란이 있는 음식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 다행이지 정말 맛없었다.

(여행 기간 통틀어 가장 맛없는 음식! – 싸다 35볼리비아노 6500원)

술도 시키지 않고 정말 대~충 먹고 나왔다.


음.....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지만... 음.....


내일 아침 일찍 우유니행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하기 때문에 구멍가게에서 현지 빵을 샀다.

뻥튀기 과자도! 반가웠다.


목이 너무 좋지 않아서 엄마랑 현지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었다.

확실히 아이스크림이 목을 시원하게 해준다.


볼리비아 아이스크림과 뻥튀기! 쌀대롱이다!


그렇게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아빠가 방이 너무 춥다며 데스크에 얘기해 보라고 했다.

엄마, 아빠는 먼저 방으로 가고 나는 데스크로 갔다.


데스크에는 체크인을 하고 있던 외국인이 있었다.

옆에서 기다리는데 알바생이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했고, 나는 내 방이 너무 춥다고 말했다.


근데 왜 내 영어 못 알아들어...?

다시 말하려는 데 체크인하던 남자애가 말을 대신해 줬다.

(이 친구는 알아들었잖아!!)


알바생이 히터를 빌려줄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외국인이 알바생에게

'방이 추워? 너희는 왜 방 온도를 올리지 않아? 돈 아끼려고 하는 거야? 서비스가 좋지 않네. 이건 손님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야'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응???? 처음에는 '얘 왜 이래?' 싶었다.

그런데 이미 체크인을 하면서부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참 야무지게 잘도 따진다.

멋있어 보였다 순간.

나는 그냥 눈 마주치고 '네가 맞아'라는 듯 웃어줬다.

순간 나 스스로가 조금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외국인은 체크인을 위해 간단한 서류 작성을 시작했고, 그 사이 알바생이 나에게 히터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돈을 더 내라는 것이다.

뭐??? 돈을 더 내라고????

30솔 5500원? 정도로 비싸진 않았다.


몇 마디 하려는 찰나,

그 외국인이 '너는 이 돈을 받으면 안 된다. 너희는 이렇게 서비스하면 안 된다. 이것은 맞지 않다. 나는 너희 별 점 낮게 줄 것이다. 네가 직원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너는 사장에게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맙소사... 똑똑하게 또박또박 잘도 따진다.


나도 몇 마디 하려고 했지만,

'난 이곳이 한국이었어도, 한국말로도 저렇게 까진 못했을 텐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또 한 번 반함과 동시에 그만큼 따지지 못하는 내가 또 바보같이 느껴졌다.


난 외국인한테 '네가 맞아. 그렇지만 난 선택권이 없어, 난 부모님과 함께 왔고, 방은 너무 추워' 라고만 했다.

히터는 이후에 알바생이 방까지 가져다줬다.


외국인과 나는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고, 너무 멋있어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내가 먼저 물어봤다.

프랑스인이었다.

나에게도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한국인이라고 하자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나도 '메르시' 하고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방에 돌아가서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며 너무 멋있다고 했다.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세상에 너무 멋있다고.

이게 바로 해외여행이야!!!! 라고 말하면서 ㅎㅎ


그런데 언니가 괜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ㅎ

- 언니 이야기의 요점은 그게 아니고... 멋있었다고 저 친구


나도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 보니, 이 숙소는 원래 호스텔이라 다인실은 2만원도 안 되는 돈이다.

그 돈이면...... 가성비 대비 그냥 모든 걸 참아야 하는 것이 맞는 듯싶기도 했다.


히터를 가장 강하게 틀고 취침을 했다.

높은 지대, 추운 겨울.

이 호스텔은 너무나도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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