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함께하고 있는 대기업 건설사가 있습니다.
이제는 현장에 도착하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제안의 핵심은 컨소시엄 구성이었습니다.
당사와 경쟁사의 장단점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는 구조였고,
덕분에 컨셉을 잡는 과정은 오히려 명확했습니다.
무엇을 꾸밀지보다, 무엇을 분명히 보여줘야 할지가 중요했던 제안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제안서는 이미 제출된 상태였고, 문서를 읽어보면 내용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왜 이 컨소시엄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도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안서를 다시 쓸 수는 없는 상황.
이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담당자분은 발표 경험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몇 마디만 나눠봐도 발표에 익숙하신 분이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식적인 발표 기술보다는
설득을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지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적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아집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발표를 유려하게 잘하는 이미지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특히 입찰 발표는 평가위원 각자가 서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누군가는 구조를 보고, 누군가는 리스크를 보고, 누군가는 태도를 봅니다.
그래서 말의 흐름보다, 내용의 본질이 더 중요해집니다.
이미 제안서가 제출된 시점에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합니다.
컨셉과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제안서를 발표 멘트로 최대한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잘 들리는 발표는 분명히 존재하고,
평가위원의 집중을 끌어오는 문장과 타이밍도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은 컨셉이 분명히 드러나는 오프닝과 클로징을 중심으로
설득의 흐름을 정리해 20분짜리 발표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다만 이 멘트를 그대로 발표자에게 전달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멘트라도 발표자에게 맞지 않으면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다듬습니다.
발표자분의 언어로, 발표자분의 호흡으로, 실제로 말할 수 있는 옷으로 고쳐 입히는 과정입니다.
그 결과, 쉬는 시간 없이 3시간을 통으로 발표 멘트 작성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에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더해지면 설득의 완성도는 한 단계 더 올라가게 되는 것이죠!
제안서를 처음부터 함께 만들어가는 일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한계 안에서 그 이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언제나 짜릿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현장이 좋습니다.